[토요이슈]한국 4500원, 러선 1250원… 담뱃값 뛰자 밀수 들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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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 이런 일도

면세담배를 파는 제주공항 면세점 입구에서 항공기 탑승객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담뱃값이 인상된 올 1월부터 비흡연자의 담배 구입 등으로 면세점 담배 매출이 늘고 있다. 제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면세담배를 파는 제주공항 면세점 입구에서 항공기 탑승객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담뱃값이 인상된 올 1월부터 비흡연자의 담배 구입 등으로 면세점 담배 매출이 늘고 있다. 제주=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국의 담뱃값 인상 파동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번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담배 밀수 루트가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선진국에 비해 담뱃값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한국에선 국산 담배가 일본 등으로 밀수출됐다. 하지만 담배 가격이 치솟은 올해부터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생산된 값싼 담배가 한국으로 밀수입되고 있다. 한국보다 일찍 담뱃값을 올린 선진국에선 담배 한 개비 피우려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국도 이 같은 ‘선진국형’ 흡연 문화를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2.5배 이상 가격 차에, 밀수 루트도 변화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애연가 김모 씨(37)는 올 초부터 모스크바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한국 담배 에쎄를 한 보루(10갑) 이상씩 사온다. 모스크바에서 이 담배 한 보루는 700루블(1만2550원)에 살 수 있다. 한국(4만5000원)에 비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김 씨는 “한국에서 담뱃값이 오른 뒤부터 러시아에서 담배를 구해오는 한국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일부 한국인은 러시아에서 다량으로 구입한 담배를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되팔아 쏠쏠한 수익도 올리고 있다.

반면 일본을 오가던 이모 씨(29)의 담배 비즈니스는 시들해졌다. 그는 “종전에는 한국 담배가 일본 판매가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 일본으로 가져가 봤자 몇 푼 남기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와 이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담뱃값의 급격한 인상에 따라 밀수 루트가 종전 한국→일본에서 러시아→한국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한국 루트도 들썩인다. 지난해까지 에쎄는 한국에서 2500원, 중국에서 13위안(약 2300원)으로 엇비슷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같은 브랜드에서 가격 차가 배가량 나면서 중국 시장에서 팔리는 에쎄가 한국에 밀수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산 저가 ‘짝퉁’ 담배가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같은 조짐은 한국 담배 가격 인상이 예고된 지난해 말부터 일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따르면 한 사람당 한 보루인 면세 한도를 초과해 담배를 들여오다 적발된 사례가 지난해 상반기(1∼6월) 1731건에서 하반기 2484건으로 43.5% 늘었다. 특히 정부가 담뱃값 인상 정책을 발표한 지난해 9월에는 444건으로 8월의 359건보다 약 23.7% 늘었다. 그 후 10월 430건, 11월 451건, 12월 554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담뱃값 인상 직후인 올해 1월 적발 건수는 2868건으로, 전년도 같은 달(716건)과 비교하면 4배로 늘었다.

국내 공항 면세점에서는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도 담배를 구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에쎄 한 보루는 면세점에서 종전과 동일한 18달러(약 1만9800원)에 판매된다. 시중보다 절반 이상 싸다. 인천공항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올 들어 비흡연자들도 선물용 국산 담배를 많이 사간다”며 “1, 2월 국산 면세 담배 매출이 전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는데, 이는 출국 승객 증가율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담배 밀수 시장이 요동치자 한국 세관도 밀반입 담배 단속에 비상이 걸렸다. 인천세관은 지난달부터 담배 밀수 단속 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면세 담배의 시중 불법 유통 단속은 물론이고 정상 수입 화물을 가장한 담배 밀수를 차단하기 위해 컨테이너 검색을 강화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여행자 휴대품 검사도 더 꼼꼼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담뱃값 먼저 올린 선진국도 밀매 여전

한국보다 일찍 담뱃값을 크게 올린 선진국에선 담배 밀수가 줄었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영국 런던 유학생들이 애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사고팔기’ 코너에는 ‘말버러 두 보루를 70파운드에 팝니다’ ‘한국 담배 에쎄 구입합니다’ 등의 글들로 도배돼 있다.

영국 시내에서는 말버러가 한 보루에 87.7파운드(약 15만 원)에 팔린다. 런던의 한 민박촌에서는 하루 숙박비로 말버러 한 보루를 받기도 한다. 이 담배 한 보루는 한국 면세점에서 2만 원에 살 수 있다. 가격 차가 6배가 넘는다. 런던의 민박집 숙박비는 평균 하루 30파운드(약 5만1300원) 안팎. 한국에서 구입한 담배로 숙박비를 계산하면 객실 손님과 주인이 모두 이익을 본다. 민박집에서는 숙박비로 담배를 받을 뿐 아니라 담배를 더 가져오면 보루당 30∼35파운드(약 5만∼6만 원)의 현금으로 바꿔 주기도 한다.

영국 세관에서 담배 구입은 1인당 한 보루로 제한돼 있지만 영국으로 향하는 배낭여행객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두세 보루씩 사가는 경우가 많다. 용돈이 부족한 유럽의 유학생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배낭여행객들에게서 담배를 구입하거나, 해외 배송 업체를 통해 운송료를 주고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 세관이나 경찰 당국에 걸리면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젊은이들 중에서는 값이 좀 더 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담배를 이용하기도 하고, 전자담배를 피우는 층도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영국의 흡연 문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밀수 담배 추적 제도가 도입된 이후 흡연율이 뚝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담배 가격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0% 올랐다. 그런데도 20% 후반이던 성인 흡연율은 1999년까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밀수 담배 추적 제도 도입과 함께 형벌이 강화된 2000년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2010년 영국의 성인 흡연율은 20%로 내려갔다.

담배 휴대도 죄짓는 심정, 비참한 흡연

이달 18일 호주 출장길에 오른 애연가 박모 씨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에쎄 한 보루를 산 뒤 고민에 빠졌다. 면세점 직원에게서 “호주에선 담배 반입량이 2012년 9월 1일부터 250개비(12갑 반)에서 50개비(2갑 반)로 대폭 줄었다. 짐 가방에 넣어도 세관에 다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항공기에 오르기 전 담배 포장을 뜯어 동료와 승객들에게 “두세 갑씩 가져갔다가 호주에 도착한 뒤 돌려 달라”고 일일이 부탁했다. 22일 인천으로 돌아온 그는 “호주 담뱃값이 워낙 비싸 분담을 부탁했지만 마치 죄를 짓고 봐 달라며 비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소동은 담뱃값이 비싼 나라로 갈 때 흔하게 벌어진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담뱃값을 올린 나라에서 흡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 해외여행 정보 사이트에는 뉴욕으로 가는 흡연자가 ‘맨해튼에선 어디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대답은 ‘길가 모퉁이(street corners)’이다. 실제로 건물 밖 구석진 곳에서 비싸게 구입한 담배를 서둘러 피우는 ‘비참한’ 흡연자가 자주 보인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실내에서 담배 피울 곳이 사실상 없다. 타임스스퀘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 공원이나 해변 등은 야외 흡연도 금지돼 있다. 허가 받은 ‘담배 바(bar)’에서는 흡연이 가능한데, 반드시 그 가게에서 담배를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정부의 금연 정책에 민간 기업도 호흡을 척척 맞춘다. 의약용품과 잡화를 파는 대표적인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CVS는 지난해 10월부터 매출에 관계없이 미 전역에서 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실내 흡연과 ‘골초’에 관대한 일본

선진국 중에서도 흡연율이 높은 일본은 실내 흡연에 관대한 반면 실외 흡연을 금지하는 추세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흡연을 할 수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별로 흡연 및 금연에 대한 규칙을 정해 놓고 있다. 도쿄(東京) 도의 경우 식당들은 대부분 흡연 구역을 두고 있다. 아예 전체 공간을 터 놓고 흡연 가능한 좌석을 지정해 둔 곳도 많다. 이 때문에 어린이를 데리고 식당을 찾는 부모들이 가급적 흡연 좌석에서 멀리 떨어진 좌석을 부탁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식당 밖으로 나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부분 지자체가 ‘노상(路上) 흡연 금지 조례’를 만들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했다. 다만 일부 흡연 가능한 구역을 만들고 재떨이를 비치해 뒀다. 한국 관광객들은 “시내 거리 곳곳에 흡연 구역이 많아 담배를 피우고 싶어질 때쯤 되면 어김없이 흡연 구역이 보인다”며 감탄한다.

도쿄 도는 노상 흡연 금지에 대해선 각 구에 맡겨 뒀다. 이 때문에 지요다 구에선 노상 흡연 시 과태료를 내지만 인접한 미나토(港) 구에선 구청 직원의 주의를 받는 데 그친다.

일본 성인 흡연자들은 흡연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부터 의료진으로부터 금연하라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는다. 금연 상담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초가 줄지 않자 요즘에는 초기 흡연자들만 중점 관리 대상자가 되기도 한다.

“담배는 사교의 수단”, 흡연자 천국 중국

담뱃값을 크게 올리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 등에선 담배를 구하거나 피우기도 쉽다.

최근 베이징(北京)의 한인촌인 왕징(望京)에서 H사우나를 찾은 김모 씨는 한 중국인이 탕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아 한 손을 높이 들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욕탕 벽에 붙어 있는 ‘흡연 금지’ 경고문을 보고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손님이 피우는 데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말 그대로 ‘흡연자 천국’이었다.

중국의 흡연 인구는 약 3억5000만 명으로 전 세계 흡연자 약 11억 명의 31.8%를 차지한다. ‘흡연 대국’답게 담배를 권하는 것이 사교의 수단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일부 외국 사업가는 중국인들과 만나 담배를 사양했다가 “그래서 무슨 사업을 하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중국 담배에는 경고 문구도 없고, 담배를 사는 연령에 제한을 두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과 여성 흡연이 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식당 내 금연을 추진하려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식당에 흡연 구역을 지정해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이 정책은 조용히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발표돼 올해부터 시행되는 ‘실내 공공장소 금연법’도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가 관심거리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뉴욕=부형권 / 도쿄=박형준 특파원 
#담뱃값#면세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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