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 빠진 풍경, 흔치 않은 앵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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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나-배병우 사진전

마이클 케나의 ‘Homage to HCB’(1993년). 선배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촬영한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이다. 공근혜갤러리 제공
마이클 케나의 ‘Homage to HCB’(1993년). 선배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촬영한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이다. 공근혜갤러리 제공
프랑스 쇼제 군도에서 별빛과 달빛을 촬영한 마이클 케나의 ‘Full oonrise’(2007년·위 사진)와 경주 남산 소나무를 찍은 배병우의 ‘SNMIA-20311’. 공근혜갤러리 제공
프랑스 쇼제 군도에서 별빛과 달빛을 촬영한 마이클 케나의 ‘Full oonrise’(2007년·위 사진)와 경주 남산 소나무를 찍은 배병우의 ‘SNMIA-20311’. 공근혜갤러리 제공
‘흔해빠진.’

전시 제목에 이런 형용사를 내걸고 싶어 하는 작가가 있을까. 3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흔해빠진 풍경사진’전은 사진 저작권과 관련해 최근 내려진 법원 판결에 대한 ‘디스(diss·비난)’를 품은 전시다.

참여 작가는 마이클 케나(영국)와 배병우 씨. 케나는 2007년 강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서 소나무로 촘촘히 덮인 작은 섬을 촬영했다. 다른 이가 유사한 구도로 찍은 이 ‘솔섬’ 사진을 2011년 대한항공이 TV 광고에 사용하자 케나 작품의 국내 저작권자인 공근혜갤러리가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해 말 서울고등법원은 “독창적 노력으로 발견한 독특한 장소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자연물이나 풍경을 촬영한 행위로 인한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소송 결과에 대한 판단에 상관없이 이 전시는 시간 들여 찾아가볼 가치가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솔섬’을 검색하면 그 섬을 피사체로 삼은 사진이 우르르 쏟아진다. 그 수많은 이미지를 인화해 죽 걸어놓고 자기가 찍은 것을 찾으라 하면 제꺼덕 골라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케나의 사진이 그 나열에서 도드라질 것이 틀림없는 까닭은 언어로 시시콜콜 집어내 설명할 수 없다. 흔해빠진 대상을 흔해빠진 이미지가 아닌 어떤 것으로 빚어낸 작업의 가치를, 다가가 눈으로 확인하면 그저 느껴 알 수 있다.

케나는 2007년과 2011년 촬영한 두 점의 솔섬 사진 외에 미국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해변, 알래스카, 프랑스 파리, 니스 해변, 보르도의 포도밭, 일본 홋카이도, 뉴질랜드와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의 자연을 찍은 사진 30점을 내놓았다. 소재는 평범하고 구도는 헐겁다. 에펠탑, 달, 별, 나무, 흙, 물.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흔한 대상물이다. 고성능 카메라만 손에 넣으면 누구든 별과 나무를 이렇게 담아낼 수 있을까. 최신형 컴퓨터로 자판을 두드리며 낯선 단어를 동원해 매끄럽게 조합한 문장을 뽑는 것으로 아무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배병우 작가는 경주 남산 소나무를 촬영한 사진 3점을 선보인다. 가로 260cm, 세로 135cm의 프린트 속에 나무 몸통의 음영이 숲 속을 배회하듯 박혀 있다. 누구라도 그곳에 가면 쉬이 찍을 수 있는 나무 사진이다. ‘우리보고 흔해빠졌대.’ 비스듬히 허리 굽힌 나무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마이클 케나#배병우#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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