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요르단 국왕의 군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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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군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겨냥한 대테러 전쟁의 선봉에 나서 폭격을 진두지휘하는 압둘라 이븐 후세인 2세 요르단 국왕 얘기다. IS가 요르단 공군 조종사 무아스 유세프 알 카사스베흐 중위를 잔혹하게 불태워 죽이자 그는 군복을 입고 단호한 대응에 나섰다. 약 3년 전인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만났을 때 접했던 온화한 미소를 IS가 모두 앗아간 듯했다.

그는 당시 장남인 후세인 왕세자, 여동생인 라이야 빈트 후세인 공주와 함께 한국의 발전상을 체험할 청년수행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중동의 청년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재능을 키우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평화가 선결돼야 한다”던 그였다. 그는 국가의 미래와 젊은이들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동에서 보기 드문 지도자이다. 인터뷰를 했다는 인연으로 연말이면 가족사진에 서명해서 보내주던 친밀감도 빼놓을 수 없다.

압둘라 2세 국왕은 메카에 있는 무슬림 성지 관리자이던 명문 하심가(家)의 후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한 영국 장교들과 함께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대항해 아랍 민족의 독립운동을 일으킨 후세인 이븐 알리의 후손이다.

그런 그의 변신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석유가 나지 않아 대외의존도가 높은 요르단이 IS와의 전선에 뛰어들면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反)왕정 활동으로 정권을 위협하는 무슬림형제단을 극단주의자 범주에 묶어 단속할 명분도 생긴다. 군사작전을 진두지휘함으로써 명문가의 위상을 되찾을 수도 있다. 중동의 군주들은 예컨대 “알리 장군, 싸우고 돌아오시오”라는 명령 대신 스스로 전장의 한가운데 서는 것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과거의 결정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IS의 등장은 제1차 세계대전의 흔적이고, 가깝게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에 따른 결과이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맺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면서 인종과 종파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국경선을 그어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사담 후세인’ 타도에 매몰돼 중동 재건, 풀뿌리 시민사회 움직임을 챙기지 못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불만을 이끌어냈다.

고위급 인사마저 서슴지 않고 자살폭탄 테러에 나서는 IS의 행태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국익이라는 국가 단위의 의사결정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IS의 행보는 현재의 국제정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국제사회의 도전이기도 하다.

과거의 결정이 하심가의 압둘라 2세 국왕을 오늘날의 ‘전사 국왕(Warrior King)’으로 만들었듯 지금의 결정은 내일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각도를 바꿔보면 우리 사회가 보인다. 북한, 통일 문제, 남북대화…. 한반도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많은 현재의 결정이 과연 미래의 한국 사회 모습을 충분히 고민한 결과물일까. 또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어떤 생각에서 남북 대화에 나오는 대신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일까.

광복 및 분단 7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유달리 통일의 당위성이 강조되는 한 해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는 대신 성급한 통일지상주의로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북한과의 섣부른 합의 도출은 통일 과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내용 없는 창의적’ 대북정책이나 거창한 통일 구호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장·단기적인 전략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요르단#IS#이라크 전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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