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88만 원짜리 경제공부는 안 하는 게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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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 쓴 자칭 C급 학자 우석훈, 새정치연합 경제교사로
‘사회적 경제’ 강조하지만 죽을 때까지 인정 못 받은 사회주의자 칼 폴라니 떠받들어
프랑스 이탈리아도 하는 구조개혁 “나라 망해도 반대하라” 가르칠판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지난주 모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나왔다. ‘문-정-김(문재인 정세균 김한길) 계파초월 경제공부 모임’ ‘계파수장들 단체로 경제과외 받는다’ ‘대선 이기려면 결국 경제…야 거물들 뭉쳤다’.

야당의 아킬레스건이 종북과 경제라고 여겨온 나는 눈 비비고 다시 봤다. ‘부자 감세 철회’ 주장만으로는 중도층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경제적으로 유능한 정당이 돼야 한다, 그래서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당내 거물들에게 경제 과외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니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안 그래도 박근혜 정부의 ‘제2의 경제부흥’ 약속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23일 동아일보 사설은 ‘내년 4대 구조개혁 방안, 정권 걸고 완수할 결기 있는가’ 따져 물었지만 그런 결기는 없다는 게 하루 만에 드러났다. 공공개혁의 한 축으로 발표한 군인·사학연금 개혁에 대해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표 떨어진다고 발끈하자 기획재정부가 황급히 “검토 안 한다”고 뒤집은 것이다.

대통령의 경제공약을 만든 국가미래연구원은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구조개혁이 지체될수록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처럼 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핵심은 ‘구조개혁 성패가 정책 당국의 의지에 달렸다’는 대목이다. 그런데 표가 흔들리면, 이익집단이 들고일어나면, 개혁의지는 얼마든지 꺾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관련 기사를 샅샅이 찾아 읽은 뒤 새정연을 말리러 나선 심경은 착잡하다. 이 공부를 주도하는 사람이 저서 ‘88만 원 세대’에서 “짱돌을 들라”고 주장했던 우석훈 전 성공회대 외래교수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우석훈이 새정연에서 만들어갈 새 경제이론이 ‘성숙 자본주의’라고 했다. 그가 트위터에서 밝힌 두 번째 칼럼집 제목과 같은 걸 보면 다른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해도 결국은 우석훈식 경제 처방이 나올 게 뻔하다. 더구나 그의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학 출신이라 경제 공부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우석훈의 경제학을 진짜로 성숙한 경제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생태경제학이라는 얘기를 들고 지난 15년 동안 그야말로 철저하게 마이너로 살았다”고 블로그에서 자신을 말했다. 메이저 정당이 하필 마이너 경제학자를 당 싱크탱크의 부원장으로 모신 것도 박수칠 일은 아니지만,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뒤 “이제 폴라니의 시대가 온다”고 줄기차게 외쳐온 자칭 C급 경제학자에게 대통령을 꿈꾸는 중진들이 뭘 배우겠다는 건지 답답하다.

케인스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하이에크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에게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영감을 주었다면 칼 폴라니는 1964년 죽을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주류 경제학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회주의자다. ‘시장경제는 유토피아에 불과’하고 ‘사회가 국가와 시장보다 우위에 서서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옛 민노당의 강령과도 비슷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反)자유시장 경제관에 영감을 줬다”고 미국 애틀랜틱지(誌)가 비꼬았을 정도다.

폴라니가 상징하고 우석훈이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는 노조와 생활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호혜와 연대의 가치로 굴러가는 경제를 의미한다. 그러니 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박근혜 5년, 나라 망하겠냐, 그런 안이한 생각을 나도 좀 했었다. 요즘 노동방식 개편하는 거 보면서, 정말로 완전히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가 트위터를 날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석훈이 ‘미쳤다’고 보는 구조개혁은 좌파가 집권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맹렬히 추진 중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아베노믹스가 세 번째 화살(구조개혁)에 성공할 때 주변국들은 일본의 경제 붐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석훈이 곧 망할 것처럼 비판했던 미국이 지금 홀로 호황인 것도 끊임없는 구조개혁이 있어 가능했다.

“내 인생에 단 하나의 소망을 물어보면 좋은 지도자를 만나 다음 대선에 이기는 것”이라고 우석훈은 트위터에서 고백했다. 이렇게 비루하게 평생을 살 순 없다고도 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경제선생을 만나야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고 비루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집권 뒤 배운 대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잃지 말아야겠지만.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88만#경제#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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