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기흥]박근혜의 대박 vs 김정은의 大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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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흥 논설위원
한기흥 논설위원
어제가 북한 장성택의 1주기였다. 그를 ‘만고역적’으로 몰아 김정은이 그렇게 참혹히 숙청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급변사태가 우려됐고 한국과 미국은 군사대비책까지 긴급 점검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일 뒤 새해 신년사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힘차게 싸워나가자”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아버지 때처럼 확고부동한 1인 체제를 구축한 것 같다.

1년이 지난 지금 북에선 피의 숙청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동계훈련이 하늘과 땅, 바다에서 펼쳐지고 있다. 참가한 특수부대의 인원, 장비만 예년의 20배다. 김정은이 내년을 ‘통일대전의 해’로 공언하고 전면전 준비를 다그치고 있다. 경제난 때문에 군사훈련도 제대로 못한다더니 정부의 판단이 또 빗나갔다.

‘통일대박’을 내건 정부도 나름 바쁘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는 17일 워크숍을 열어 올해 사업을 평가하고 내년 계획을 검토한다. 통일방안 등을 담은 통일헌장 시안이 빠르면 이날 논의될 수 있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9년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역대 정부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이름을 바꿔 계승했다. 화해협력과 남북연합을 거쳐 통일에 이르는 구상이다. 하지만 25년이 흐르면서 북의 핵실험 등으로 상황이 바뀌었고 북의 변화를 촉구할 필요성도 생겼다. 단계적, 점진적인 통일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보완이 필요하다. 400∼500단어의 통일헌장이 완성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광복절에 발표할 것인지, 국회에서 공식화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광복 70주년인 새해는 분단 극복의 전기가 돼야 마땅하지만 통일대박과 통일대전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아스라하다. 북의 통일이 적화통일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우리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통일을 지향한다. 정부와 통준위가 논의하는 통일헌법, 통일 후 북 금융시스템 개편 방안, 남북 경제 격차 해소방안 등은 모두 우리 주도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지만 포장이 어떻든 북으로선 흡수통일이다.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이 이끈 박근혜 정부의 1기 외교안보팀은 ‘조금만 더 압박하면 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함께 일한 사람들의 평이다). 문제는 설령 그런 사태가 오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통일로 순조롭게 이어질지, 정부와 군이 급변상황을 통제, 관리할 역량이 있는지 미덥지 않은 점이다(세월호 사고를 돌아보라). 국제 정세가 우호적일 것이란 보장도 없다.

대혼란을 감당하기 어렵거든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일지라도 남북이 접촉의 확대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해가면서 공생을 모색해가는 접변(接變·접촉을 통한 변화)이 급변보다 낫다. 영어 engage의 사전적 정의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접촉하는 것’(옥스퍼드 사전)이 있다. 약혼을 engagement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다. 외교에선 이를 개입 또는 포용으로 번역한다. 남북도 지지고 볶으면서 앞날을 함께 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통일 비전을 제시했지만 당장은 군사 충돌을 확고히 억제하면서 남북 교류의 폭만 넓혀도 그 기반을 닦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모르고 하는 결혼보다 더 큰 환상이다. 10월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통일을 서두르기보다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가 72.9%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급변사태는 정부가 소리 소문 없이 알아서 대비하면 될 일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장성택#김정은#통일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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