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투명하게 바뀌어야”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할 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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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부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조한 것은 여러 각도에서 곱씹어볼 만한 소재를 제공한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부정부패를 예방하기 위해선 먼저 정부 내 업무 시스템이 더욱 투명하게 바뀌어야 한다”며 “국민이 정부에서 하는 일들을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어제가 유엔이 정한 ‘세계 반(反)부패의 날’이어서 한 말이겠지만 요즘 ‘정윤회 문건’ 파문을 지켜보며 국민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바로 대통령이 했다.

박 대통령이 정부 투명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청와대부터, 인사 시스템부터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 세계은행은 사적(私的) 이익을 위해 공직을 남용하는 것을 좁은 의미의 부패로, 공공정책의 사유화를 넓은 의미의 부패로 규정한다. 뇌물을 받는 것만 부패가 아니다. 공조직에 혈연 지연 학연을 앉히는 정실인사(cronyism)도 부패다. 정윤회 문건에서 비롯된 비선실세 의혹도 따지고 보면, 이 정부 들어 전혀 엉뚱한 인물과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심스러운 인사들이 주요 직책에 오르는 일이 거듭된 끝에 불거졌다.

특히 총리와 부총리, 장관과 수석비서관들도 대통령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박 대통령은 귀담아듣기 바란다. 필요한 경우엔 대통령이 장관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고 전화통화도 한다고 청와대는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문고리권력 3인방’이 지금처럼 위세를 떨칠 리 없다. 친박(친박근혜)이라는 의원들조차 인사뿐 아니라 어떤 결정도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중요한 정책과 관련해 대통령이 누구의 보고를 받고 어떤 사람들과 논의해서 판단을 내리는지 알 수 없으니 비선의 존재가 정설(定說)처럼 된 것이다.

대통령이 선호한다는 ‘보고서’ 역시 시스템을 통해 활용되지 못하면 찌라시 노릇밖에 할 수 없음을 정윤회 문서 파동이 보여줬다. 문고리권력이 전달하는 보고서만 봐서는 대통령이 현자(賢者)의 고언(苦言)도, 민심도 들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인 기자회견 질의응답을 단 한 차례 했을 뿐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초·재선 모임 ‘아침소리’ 소속 의원들이 그제 국정운영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면서 대통령의 서면보고 최소화 및 대면보고 일상화, 대국민 기자회견과 당정청 협의의 정례화를 제안했겠는가.

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위원의 언행은 사적인 게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행하는 사명감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인사 문제를 지적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겨냥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유 전 장관과 비선 실세설을 믿게 된 데 대해 박 대통령의 책임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투명성#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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