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복제도 저작권 침해 해당될까

신나리 기자 입력 2014-11-21 03:00수정 2014-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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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전환前 깔린 프로그램 일부 RAM에 임시 저장
법정으로 간 IT업체-건설사 공방
“일시 저장은 저작권 침해 안돼” 항소심 재판부, 1심 판결 뒤집어
“귀사는 당사의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10일 이내에 정당한 라이선스 인증서를 제시하지 못하면 저작권 침해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B건설사는 한 저작권사에서 날아온 내용증명 우편을 받고 당황했다. 무료로 배포돼 9년 가까이 사용했던 캡처 프로그램을 유료 전환 후에도 그대로 써온 게 화근이었다. 저작권사는 유료화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서 ‘비업무용·개인용으로만 사용하라’고 주문했는데도 이를 위반해 사용했고, 해당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임시저장장치(RAM)에 지속적으로 저장된 상태로 유지되므로 저작권법에 명시된 ‘복제권 침해’여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건설사는 “유료화 전환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채 불법 사용을 유도한 뒤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맞섰다.

양측의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때 프로그램 일부가 임시저장장치에 저장되는 것도 (일시적) 복제이며, 이를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느냐는 게 핵심 쟁점이었다. 특히 이 사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저작권법 개정안에 새로 포함된 ‘일시적 복제’ 개념이 처음 적용되는 사례여서 판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서울중앙지법의 1심 재판부는 올해 2월 “사용자들이 약관에 동의하기 전 하드디스크에 프로그램을 설치한 행위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지만 프로그램 실행과정에서 메모리에 저장된 일시적 복제는 저작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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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균용)는 20일 B건설사를 비롯한 기업 178곳이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없다”며 무료 소프트웨어 ‘오픈캡쳐’의 저작권사인 ㈜ISDK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개인용으로만 쓴다는 조건으로 무료 배포한 프로그램을 업무용으로 사용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저장’을 저작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저작권 침해가 아닌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최근 무료 오피스 프로그램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놓고 다투는 기업과 저작권사 간의 소송이 부쩍 늘고 있다. 올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민사소송 건수만 해도 20일 현재 38건으로 지난해(10건)보다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한글과 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코퍼레이션 등 유명 오피스 프로그램 저작권사들까지 합작해 다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일시 복제#저작권 침해#무료 오피스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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