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스탠더드’ 족쇄 풀려… 40년만에 평화적 核재활용 물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한국 핵연료 재처리 제한적 허용
고준위 폐기물 저장 2년후면 포화 “완전허용 日과 차별” 반발 나올듯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이 협상 4년 만에 타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우라늄 농축·재처리’ 전면 불허라는 미국 입장이 재처리의 제한적 허용으로 선회하면서다. 1974년 한미가 체결한 원자력협력협정은 2014년 3월이 만료였으나 양측은 협상 지연으로 유효기간을 2016년으로 2년 연장했다.

○ 미, 당초 한국에도 ‘재처리’ 불허 입장

미국은 자국의 원자력법에 따라 핵연료와 기술을 제공하는 나라와는 모두 원자력협력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 농축·재처리를 모두 금지한 ‘골드 스탠더드(황금 기준)’ 협정을 맺은 뒤 한국에도 이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호혜적, 선진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한국은 40년 만에 개정되는 협정에는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 수출 경쟁력 확보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 해결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 핵연료의 공급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세계적인 핵연료 수요가 줄면서 자연스레 해결됐고 원전 수출 경쟁력 문제도 미국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쟁점은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문제에 집중됐다. 핵연료의 생산, 변환·농축, 성형가공, 연소, 폐기물 처리 등 5단계의 핵연료 주기 가운데 ‘연소 이후’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다.

○ 한국은 실리, 미국은 명분 챙겨

한미는 협상 초기부터 재처리 기술의 하나인 파이로 프로세싱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파이로 프로세싱 시험시설인 ‘프라이드(PRIDE)’를 지난해 완공했지만 원자력협정에 묶여 ‘사용 전 핵연료’로 모의실험만 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실제로 만지는 실험은 모두 미국에서 이뤄져 왔다.

이번 협정 개정에서 미국이 ‘제한적 재처리’를 허용함에 따라 한국에서도 파이로 프로세싱의 일부분인 전해환원이 가능하게 됐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전해환원, 전해정련, 전해제련, 연료제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해환원은 사용 후 핵연료에서 스트론튬과 세슘처럼 고열을 내는 핵종을 분리하고 전기분해를 통해 금속으로 환원시키는 단계다. 한국은 당장 필요한 전해환원 공정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실리를, 미국은 ‘재처리 전면 허용은 아니다’라는 명분을 챙기게 됐다.

○ 일본엔 전면 허용된 농축·재처리

한국 내 ‘핵주권론자’들은 완전한 농축·재처리 권한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는 허용된 권리인데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한국이 차별받고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원전 23개 가운데 12개에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사의 기술(OPR-1000 원자로 모델)이 사용됐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할 원자로(APR-1400) 핵심 부품도 미국에서 공급된다. 미국의 협조 없이는 당장 원전을 멈춰야 하고 원전 수출도 막히게 된다.

일본도 고민은 있다. 1956년부터 재처리에 눈을 돌린 일본은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기술을 쌓아왔고 2004년 첫 상업용 재처리 시설인 롯카쇼무라의 시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2조1930억 엔(약 21조 원)을 투입하고도 방사능 누출 사고 등이 끊이지 않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 파이로 프로세싱은 꿈의 기술인가

한국 원자력계는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이 완성되면 핵 확산성(핵무기 재료로 전용 가능성)은 없으면서 핵연료를 96%까지 재활용할 수 있고 폐기물의 양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에서 입증되진 않았다. 이미 기술력을 확보한 스위스, 독일은 재처리 정책을 포기했고 영국도 곧 재처리 시설을 폐쇄할 예정이란 점도 시사점을 준다. 파이로 프로세싱이 완성돼 재활용 연료를 확보한다고 해도 이를 태울 엔진(고속증식로) 개발은 아직 미완의 상태다.

이에 따라 사용 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현재 고준위 폐기물은 원전 내 임시 저장소에 쌓아두고 있지만 2016년부터 포화 시기가 도래한다. 경북 경주시에 건설하고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옷과 장갑 등 중저준위 폐기물만 처분할
수 있다.

::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 ::

한미가 2020년을 목표로 공동 연구 중인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로 ‘건식 재처리’라고도 부른다. 1980년대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발전소와 핵무기 원료를 동시에 생산한다는 목표로 시작했으며 1990년대 후반까지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한 뒤 종료됐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골드 스탠더드#한미 원자력협력협정#핵연료 재처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