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목자, 프란치스코]우리의 고통 나누러 오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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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으뜸 목자이자 봉사자인 교황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교황 방한은 아시아 지역 최초라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지난해 3월 13일 교황에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교황명을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1182∼1226)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교황이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취한 것은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교황은 콘클라베(교황을 뽑는 모임)가 끝날 무렵 옆자리에 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인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했을 때 곧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했다.

교황은 이그나시오 성인이 세운 예수회 출신이지만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선택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삶의 여정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했던 예수님처럼 살아 ‘제2의 그리스도’라 불렸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봉건제가 와해되던 12세기 말 부유한 포목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변혁의 시기에 귀족들과 시민, 도시와 도시, 교황 지지자와 황제 지지자 사이에는 갈등과 다툼이 심했다. 그리스도교는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수직적인 교계제도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를 껴안음으로써 ‘역겨웠던 그것이 단맛으로 변하는’ 사랑의 결정적 체험을 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얼굴이 온통 종기로 뒤덮인 피부병 환자에게 입맞춤을 하는 장면은 한센병 환자를 포옹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올리게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수도원 밖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모두를 평등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긴 프란치스코 성인의 형제애는 권력이나 지위의 틀에 매여 있던 교회와 세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성인은 복음적 가난의 정신이 무뎌진 교회와 분열되고 물질의 우상에 사로잡힌 세상을 복음에 따른 생활로 다시 일으켜 세운 셈이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사제와 교구장 주교 시절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인간존엄의 유린을 목격했다. 그는 버스를 타고 다니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주면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정신이야말로 세상과 교회를 쇄신하고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는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교황은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아시아 청소년 대회와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예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람페두사의 아프리카 난민 방문으로 시작된 교황의 행보는 철저히 가난한 이를 먼저 선택하는 사랑의 행보였다. 돈을 우상화하며 인간성이 침해되고 있는 곳에 정의와 평화와 인간 존엄성을 살리려는 행보였다. 신자수도 많지 않은 작은 나라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남북분단의 현실, 사회 갈등, 생명문화의 경시, 급속한 자본의 권력화, 가난과 불의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 한국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함께 하기 위해서임이 틀림없다.

교황의 방문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을 첫째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진정 함께하고 있는가’ ‘이 땅은 프란치스코 성인과 교황이 말하는 그 가난의 기쁨과 울타리 없는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도 신명나게 살 수 있는 땅인가’.

조기영 안드레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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