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관료 길들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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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면 우선 납작 엎드린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고, 바람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고개를 쳐들다간 역풍을 맞거나 바람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관료들의 속성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라 다 경험에서 나온 자기 보신책이다.

새 정권은 점령군처럼 관료사회를 뒤흔든다. 개혁이 명분이고, 조직 개편과 인사가 주 무기다. 뒤흔들어 놔야 일하기가 편해서다. 정권의 성격이나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에 따라 관료들의 운명이 엇갈린다. 인사에서 물을 먹는다는 것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 것이기에 참을 수 없는 굴욕이다. 수긍하기 어려운 인사일 때 특히 더 그러하다. 자연히 불평불만이 쌓인다. 일보다는 딴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다수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이런 고질병이 되풀이됐다.

박근혜 정부는 달랐다. 관료들을 타박하지도, 개혁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관료 출신을 대거 중용하는 등 오히려 우대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자기 부처 출신 장관을 가져본 적이 없는 곳까지 해당 부처 출신 관료를 장관으로 앉혔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관료사회를 상대로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을 밝힌 5·19담화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담겼지만 나는 관료사회 개혁이 핵심이라고 본다. ‘그동안 믿고 맡기고 예우했는데 도대체 일하는 꼴이 이게 뭐냐’는 박 대통령의 실망감이 묻어 있다. 관료들의 충원 방식을 바꾸고 퇴로를 억제했다. 똑바로 일하지 않으면 조직을 공중분해해 버리겠다는 경고까지 담았다.

과거 우리나라 관료들은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고,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관료들이 자신들에게 극히 호의적이던 정권에서까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까닭이 뭘까.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진단이 재미있다. 그는 지금의 공무원들은 “근대적 의미의 관료(bureaucrat)가 아니라 전근대적 의미의 관원(官員·clerk)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5월 20일 자유경제원 정책세미나 기조강연). 관료는 책임감 사명감 직업윤리가 체화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관원은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고, 무사안일과 적당주의가 체화됐으며,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부류다.

그것도 민주화 이후 조직관리의 경험과 능력이 없는 정치 지도자들이 관료들에게 국가관리를 맡기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국민의 공복(公僕)이어야 할 관료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됐고,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관원치국(官員治國)의 적폐가 쌓이게 됐다”고 송 교수는 지적했다. 관피아도 그 부산물 아니겠는가.

내각책임제인 영국은 모든 부처의 장관을 집권당 국회의원이 맡는다. 장관은 오랜 의정활동에다 야당 시절부터 다년간 ‘그림자 장관’을 맡아 현직 장관과 입씨름을 벌이면서 해당 부처 업무를 다뤄왔기 때문에 전문성이 탁월하다. 정치인이기에 정무감각도 뛰어나다. 부처를 손쉽게 장악해 정권의 국정기조에 따라 이끌어갈 수 있다. 정권의 주체들이 국가관리를 도맡는 셈이다. 관료들은 정권의 종복(從僕)이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서 충실하게 조력자 역할만 할 뿐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이익을 얻지도,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사무차관까지가 관료들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다. 정무차관은 정권 쪽 사람이 맡는다.

국가 개조의 핵심은 공직사회의 개조다. 박 대통령이 이왕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면 좋겠다. 정권 차원을 떠나, 장기적 관점에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당장 말 잘 듣고 움직이게 하는 식의 길들이기라면 역대 정권들의 실패를 답습할 뿐이다. 송 교수의 진단대로라면 개조의 방향은 분명하다. 관원을 다시 국민의 공복인 관료로 되돌려놔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박근혜#세월호#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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