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만 경영과 부패로 얼룩진 공기업의 개혁 元年 만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일 03시 02분


지난해 말 22일간의 철도노조 불법 파업은 공기업 개혁의 시급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선로 1km당 철도운영 인력은 한국이 10명으로 프랑스(6명), 독일 일본(각 7명)보다 많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공기업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1인당 평균 연봉은 7000만 원에 육박하고 기관사 중에는 8000만 원이 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사 단체협약에는 경영권을 제약하는 독소 조항이 수두룩하다.

공기업은 우리 경제의 압축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점차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산하 686개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566조 원으로 국가 채무보다 120조 원 많다. 전현직 임직원들이 부패 혐의로 줄줄이 구속된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보듯 민간기업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도덕적 해이가 팽배하다. 민노총 산하 핵심 노조인 철도노조처럼 강성(强性) 노조가 회사를 뒤흔들면서 걸핏하면 불법 파업을 벌여 국가 경제와 민생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공기업에 부채가 증가하고 방만 경영이 만연해 있는 배경에는 역대 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 정권마다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정부예산 대신에 국회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공기업을 동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노무현 정부 이후 세종시 혁신도시 신도시 개발,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건설로 빚이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를 늘리는 주요 원인이 됐다. 그렇다고 공기업의 재무 상황이 악화한 책임을 모두 정부에 떠넘긴 채로 “공기업은 피해자”라는 식으로 호도할 수는 없다.

공기업 개혁의 실패는 공기업 최고경영자 자리를 권력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사(人事) 탓도 크다. 정부는 해당 분야에 최소한의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정치권 출신을 내려보냈다. 보신(保身)에 급급한 관료 출신도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의 상당수가 철밥통 귀족 노조의 저항에 맞서 과감한 개혁을 하기보다는 야합을 선택했다.

정부는 노조에 휘둘리지 않을 전문성과,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고 개혁을 추진하는 소신을 갖춘 인사를 기용해 공기업 개혁의 확고한 뜻을 보여야 한다. 정부와 공기업 최고경영자는 노조와의 이면 거래를 끊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공기업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법부도 노사 양측에 대해 엄격한 법 집행으로 불법과 비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공기업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서는 극단적인 민영화 무용론이나 만능론 모두 한계와 허점이 있지만 민영화를 논의 구조에서 처음부터 배제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민영화가 어렵다면 최소한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 같은 경쟁체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새해를 방만 경영과 부패로 얼룩진 공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개혁의 원년(元年)으로 삼아야 한다.
#철도노조 불법 파업#공기업 개혁#부패#방만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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