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제품으로 승부” 혁신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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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이끄는 삼성-애플-구글

승자독식 현상은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면 충분한 현금과 신기술로 생존 기반을 확고히 다져놓은 업체들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리다 사라진다. 특히 영역을 넘나드는 혁신이 일어나고, 사용자가 많을수록 이익이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는 정보기술(IT) 시장에선 승자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 강자만이 웃는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업계가 대표적으로 승자독식 구조가 확립된 곳 중 하나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구글과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2011년 54.4%에서 올해 92.3%로 치솟았다. 윈도폰 OS로 새로 도전장을 내민 마이크로소프트(MS)는 2강 체제를 깨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아직까지 한 자릿수 점유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구글은 최근 모바일용 오피스 프로그램인 ‘퀵 오피스 모바일 앱’을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도 재편하려고 하고 있다.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의 전통적 강자인 MS의 시장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존 시장에서 올리는 막대한 이익을 기반으로 경쟁자의 시장 기반을 무너뜨리는 팽창 전략이 IT 시장의 승자독식 구조를 심화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에 경쟁이 벌어지는 이른바 ‘플랫폼 경쟁’ 국면에선 승자 기업이 쓰는 팽창 전략의 파괴력이 더욱 커진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IT 분야에선 애플, 구글, 삼성전자, 아마존 같은 상위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며 “이들을 견제할 새로운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장기간 ‘치킨 게임’이 벌어진 반도체업계도 살아남은 1, 2위가 독식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29일 발표된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은 매출 4조840억 원, 영업이익 1조164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지난달 발생한 중국 우시(無錫) 공장 화재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도 28.5%로 역대 최고 수준을 보였다.

삼성전자 역시 3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매출 9조7400억 원, 영업이익 2조6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두 회사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2006년 44.8%에서 지난해 66.0%로 늘었다. 한때 세계 반도체시장 1, 2위를 다투던 NEC와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이 공급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조사기관 캐널리스에 따르면 미국 내 앱 매출의 50%가량을 징가와 로비오, 디즈니 등 일부 업체가 차지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 피 튀기는 인수합병(M&A) 전쟁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공룡’들은 링에서 밀려난 알짜 기업들을 사들여 몸집을 더 키우고 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9월 초까지 기업 간 인수 거래 규모는 약 5200억 달러(약 551조 원)에 이른다. 연말까지는 연간 기준으로 2000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IT 빅3’인 구글과 애플, 삼성전자가 2011년부터 최근까지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한 기업은 모두 77곳이다. 소프트웨어부터 지도, 보안,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구글은 2011년 모토로라 무선사업부를 인수한 데 이어 미디어 기술, 생체 인식 기술, 지도 서비스 업체 등 48개 업체에 투자해 가장 적극적이다. 올해 6월에는 애플과의 경합 끝에 이스라엘 내비게이션 서비스 업체인 ‘웨이즈’를 9억66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구글이 최근 3년간 쓴 M&A 비용은 20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역시 음악 편집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레드매티카’를 비롯해 보안업체 ‘오센텍’ 등 14개 기업을 인수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쌓아둔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역시 M&A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의료기기와 반도체 분야 등 15개 기업에 투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제일모직 등 계열사도 소재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다.

○ 영역붕괴 속 시장 주도권 잡기 치열

이 ‘IT 빅3’ 기업들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 시간) 실적을 공개하면서 “내년에는 새로운 범주에서 중대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애플이 ‘스마트 워치’나 ‘애플 TV’ 등 새로운 혁신 제품을 공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구글 역시 ‘구글 글라스’ 등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사막과 바다에 풍선을 띄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데이터센터를 물 위에서 운영하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애플에 앞서 스마트워치인 ‘갤럭시 기어’와 ‘커브드 스마트폰’ 등을 출시하며 ‘애플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영원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연구개발(R&D) 인력의 글로벌화와 기술 기업에 대한 적극적 M&A, 전자사업군의 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도 시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게임 체인저’가 돼 승자독식 구도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지영 jjy2011@donga.com·김지현 기자
#삼성#애플#구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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