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대호]문제는 전교조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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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가치 부여잡고 가쁜 숨 몰아쉬던 전교조… 후진적 대응으로 되살아나
한국사회의 진짜 문제는 교육부-전교조-교총의 ‘담합’
기득권 편향 똘똘 뭉쳐 농간… ‘3각 담합’ 깨야 나라가 산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철 지난 가치를 부여잡고 조용히 죽어가던 전교조가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졸아든 물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전교조는 역사교과서 시비와 법외노조 통보라는 폭포수 세례를 받고 힘차게 헤엄치고 있다. 교육소비자(학생, 학부모, 기업)의 정당한 요구를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이라 매도하며, 교사 기득권만 옹호해 온 평소 행태에 비판적이던 많은 사람들조차 ‘이건 아니다’라며 전교조 호위무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논쟁 수준이 떨어지고, 갈등 시계가 뒷걸음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교육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아닐 것이다. 엉뚱한 전쟁은 대체로 얕은 진단, 처방의 산물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과 뿌리가 되는 원인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보수는 한국 사회의 좌편향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에 대한 폄훼가 잘못된 교육 탓이고, 이 중심에는 좌편향 교과서와 전교조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명백한 착각이다. 모든 것을 못의 문제로 보는 망치 든 사람의 오류다. 초중고교에서 반공·유신교육을 넘치도록 받았던 386세대가 가장 강력한 반(反)독재, 반유신 블록이 된 데서 보듯이 좌편향(?) 교과서와 전교조 교사의 이념적 영향력은 의외로 미미하다.

우리 아이들은 교사가 빨간 물감을 칠하면 빨갛게 되고, 파랗게 칠하면 파랗게 되는 하얀 도화지가 아니다. 사실 교사보다 10배쯤 강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부모와 언론매체와 사이버 공론장이다. 그런데 이들보다도 100배쯤 더 강한 존재가 바로 관료 및 기득권 편향적인 정치, 경제, 사회구조다. 청년과 ‘을’ 등 비(非)기득권자들의 기회와 희망의 절대 부족이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힘센 존재들은 각종 진입장벽 등으로 과보호되고, 힘 약한 존재들은 무한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 ‘을’ 기업과 청년구직·취업 상황을 보라. 식당과 건설현장을 보라.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진입장벽도 거의 없다. 글로벌화된 시장의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때리고 쓸고 간다. 억울하고, 불안하고, 고단하다.

구조적 해명이 없으면 인간은 직관적으로 이 모든 것은 과도한 착취 탓이며, 그 원흉은 재벌대기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반자본, 반시장, 반재벌대기업 담론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도 곱게 볼 리가 없다. 요컨대 약자들이 주로 사는 과잉경쟁-과소보호 지대와 진보·보수 기득권자들이 주로 사는 과잉보호-과소경쟁 지대가 병존하면 전자에는 좌파적(보호주의, 개입주의) 정책이, 후자에는 우파적(시장주의, 경쟁주의) 정책이 요구된다.

그런데 보수·우파도 진보·좌파도 이런 균형 잡힌 정책 패키지를 구현하지 못하다 보니 절반의 진단과 대안이라도 내는 좌파 선동에 현혹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중시해야 할 가치와 싸워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교육 분야로 말한다면,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교육 관료와 전교조, 교총, 재단을 중심으로 한 교육 공급자들의 담합 체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소비자의 이해, 요구와 지방정부의 창의, 열정을 결합하는 선진국형 교육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중앙통제 경제와 가장 유사한 곳이 교육 분야다. 교육관련 법령과 교육부가 교육과정, 교육자(교사, 교감, 교장) 자격, 교육시설 등을 촘촘하게 통제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교육에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 북한식 중앙통제, 지령경제가 필요한 재화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니 장마당이 번성하듯이 공교육이 관료와 공급자가 담합한 규제에 칭칭 감겨있으니 사교육이 번성하는 것이다. 북한의 나진-선봉, 개성, 신의주(황금평) 같은 규제 특혜지대에 해당되는 것이 특목고, 혁신학교, 대안학교다. 북한 경제시스템이 시대착오적이라면 남한 교육시스템도 시대착오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교육감을 러닝메이트가 아니라 따로 선출하는 것도 교육관료, 전교조, 교총의 농간이다. 이들은 공히 극단적인 고비용 저효율 교육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옹호자다. 전교조는 좌편향성이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 편향과 둔감성이 문제다. 박근혜 정부라도 문제를 제대로 진단해야 교육이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전교조#역사교과서#법외노조 통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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