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아이돌은 뮤지션으로 진화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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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3집 ‘모던 타임즈’ 낸 아이유

아이유가 이미 성인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국민 여동생은 “전작이 그냥 동화였다면 이번 건 잔혹동화”라고 했다. 동심의 뿌리를 핏빛으로 칠하는 잔혹동화란 원래 웬만한 성인 소설보다도 잔혹한 법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유가 이미 성인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국민 여동생은 “전작이 그냥 동화였다면 이번 건 잔혹동화”라고 했다. 동심의 뿌리를 핏빛으로 칠하는 잔혹동화란 원래 웬만한 성인 소설보다도 잔혹한 법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아이유(20·본명 이지은)의 ‘분홍신’은 지금껏 스무 살짜리 한국 대중가수가 내놓은 것 중에 가장 괴상한 타이틀곡이다.

‘너와 함께한 서머 타임’이란 후렴구 한 구절을 제외하면 좀처럼 귀에 꽂히지 않는 멜로디, 스윙재즈를 도입한 복잡한 악곡, 도무지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슬프다는 건지 기쁘다는 건지조차 알기 힘든 불친절한 가사, 조바꿈과 아첼레란도(accelerando·점점 빠르게)로 질주하다 뚝 끊기는 결말…. 스윙재즈를 차용했지만 재즈의 자유분방한 강세 대신 다른 케이팝 댄스곡처럼 일정한 비트를 고수했다는 점 정도가 얼마간의 대중성을 확보한다.

8일 발매된 아이유의 3집 ‘모던 타임즈’ 전체로 보면 그나마 ‘분홍신’이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분홍신’이 ‘잔소리’ ‘좋은 날’ ‘너랑 나’를 히트시킨 김이나 작사가, 이민수 작곡가 콤비의 합작품이라는 힌트는 많지 않다. 앨범에는 고풍스러운 재즈와 브라질이나 쿠바풍의 월드뮤직, 편안한 포크 팝이 혼재돼 있다. 전문가들은 ‘모던 타임즈’가 보여준 음악적 완성도와 야심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것이 일회적 실험으로 그치지 않길 바랐다.

김광현 재즈 평론가는 “리드미컬한 기타가 강조된 집시 재즈를 시작으로 스윙 빅밴드, 초기 재즈 스타일의 딕시랜드 등 재즈적인 향취가 곳곳에 진하게 베어난다”면서 “작사, 작곡, 편곡뿐만 아니라 창법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아이유의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황우창 월드뮤직 평론가는 “유럽 음악에서 소화되는 월드뮤직의 스타일을 차용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면서 “프렌치 재즈, 보사노바, 살롱 뮤직, 라틴 리듬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확장이란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봤다. 차우진 평론가는 “20세기 초반의 살롱 분위기도 난다. 그래서 재밌다. 하지만 지나치게 다듬어진, 깎여나간 인상도 받는다. 그건 재미없다”고 했다.

새 옷은 단번에 맞지 않지만, 잘 사면 평생 재산이 된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기존 주류음악의 어법에서 벗어나는 시도들은 흥미롭지만 일관된 콘셉트를 알 수 없을 만큼 곡의 스타일이 너무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분홍신’은 재밌고 신선하다. 이 정도의 음악성을 담보한 파격적 변신이라면 성공적이라 하겠다”고 호평했다.

아이유가 3집에 실은 자작곡 2곡 중 하나인 ‘싫은 날’은 여러 해석을 부추긴다. ‘좋은 날’의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얼마나 싫었으면 ‘싫은 날’을 직접 만들었을까. 국민 여동생은 ‘아무 소리도 없는 방 그 안에 난 외톨이/어딘가 불안해 TV 소리를 키워봐도/저 사람들은 왜 웃고 있는 거야/아주 깜깜한 비나 내렸음 좋겠네’라고 부른다.

보너스 트랙을 제외한 마지막 곡 ‘기다려’는 곡 길이의 3분의 2를 바호폰도(탱고와 전자음악을 결합해 구사하는 남미 음악 그룹) 식의 난해한 연주곡으로 채운다. 아이유가 기다렸다 토해내는 의외의 마지막 노랫말은 좋은 복선이 될까.

‘이 느낌이 아냐 깊숙이 숨겨놓은 그 아일 불러줘/조금 더 내게 불친절해도 돼/다문 입술이 열리는 순간을 난 기다려/착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을 기다려 …기다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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