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경제학]머신 1대가 車공장 1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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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서 2명에 정비-기술자 60명… 개발 스태프 합치면 6000명이 한팀
인피니티와 레드불팀 협력 맺어… 승용-레이싱차 신기술 주고 받아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F1 경주차 ‘RB9’. 한국닛산 제공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F1 경주차 ‘RB9’. 한국닛산 제공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을 2시간가량 앞둔 6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 차고에 들어서자 차체 커버를 반쯤 벗긴 경주차 ‘RB9’ 2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차를 둘러싼 엔지니어 20명과 정비사 40명은 팀 코치의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F1 챔피언을 차지한 독일의 제바스티안 페텔(26)은 비좁은 운전석에 앉아 기능 하나하나를 꼼꼼히 확인했다. 정비사들도 경기 중 피트스톱(경주차가 타이어 교체를 위해 차고에 일시 정차하는 것)에 대비해 관련 장비를 손보고 있었다. 숙련된 정비팀의 피트스톱 시간은 3초 이내다. 인피니티 F1팀은 이날 2.5초 만에 타이어 4개를 교체했다.

F1 경주차는 ‘머신(Machine)’이라는 별칭대로 오로지 속도만을 추구하는 기계다. 나사도 합성수지를 사용해 손으로 깎아 만든다. 무게를 1g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다. 부품 수는 약 8만 개로 2만 개 안팎인 일반 승용차보다 4배나 복잡한 구조다.

안드레아스 시글 인피니티 F1팀 글로벌 총괄이사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정비에 완벽을 기해도 부품의 0.1%(80개) 정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를 시작한다”면서 “F1이 궁극의 주행능력을 추구하는 실험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F1 머신의 가격은 대당 100억 원 안팎이다. 일반 중형차와 비슷한 배기량의 2.4L급 엔진으로 최고 출력 750마력, 시속 320km의 최고 속도를 뿜어내는 데 드는 비용이다. 이날 결승전에서 인피니티 F1팀 소속 레이서인 마크 웨버(37·호주)의 머신이 후방 추돌로 화재가 나자 인피니티 F1팀 스태프가 우승을 차지하고도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한 이유다.

○ F1은 자동차 기술 경연장

‘꿈의 차’ F1 머신은 점차 자동차산업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닛산의 고급브랜드인 인피니티는 올해부터 레드불 레이싱팀과 기술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전까지는 마케팅에 한정됐던 협력 범위를 넓힌 것이다. F1 팀의 기술을 인피니티 승용차에 적용하고 인피니티가 개발한 기술을 F1 경주차에 활용한다. F1 선발 레이서는 팀당 2명이지만 머신의 개발 단계에 관여하는 모든 스태프를 포함하면 약 6000명이 한 팀이다.

‘세계에서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나이’ 페텔은 인피니티의 동력 성능 담당자로서 ‘FX’ ‘Q50’ 등 신차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인피니티는 F1 머신에 쓰이는 패들시프트(손가락으로 조작하는 수동변속기)를 만들었다. 인피니티 F1팀은 모기업 르노닛산얼라이언스 소속인 르노에서 엔진을 공급받고 있다. 르노 엔진에 인피니티 기술을 적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시글 이사는 “인피니티는 독일 고급 브랜드에 비해 후발주자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F1 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내놓을 하이브리드카에서 첨단 F1 기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바뀌는 규정에 따라 F1 레이싱팀은 현재보다 더 낮은 배기량인 1.6L급 터보엔진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속도를 내게 하는 에너지 회생기술이 F1 경주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운동에너지 복구시스템(KERS), 공기역학적 차체 설계(에어로다이내믹스) 등 F1에 쓰이는 기술은 친환경차나 다운사이징(차체 소형화)에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다. 페라리는 KERS를 활용해 963마력을 내는 하이브리드스포츠카 ‘라 페라리’를 3월 내놨다.

메르세데스벤츠의 F1팀인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는 벤츠의 고성능 브랜드 ‘AMG’와 기술 교류를 하고 있다. 페라리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자동차업체가 아닌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로 시작한 만큼 F1과 가장 밀접한 성향을 가진 도로주행용 차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맥라렌과 로터스도 F1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카를 개발해 온 레이싱 명가(名家)들이다.

○ 6억 명이 보는 글로벌 스포츠

6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을 앞두고 인
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 소속 레이서 제바스티안 페
텔(오른쪽)이 경주차 ‘RB9’에 앉아 정비 상태를 살펴
보고 있다. 영암=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6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을 앞두고 인 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 소속 레이서 제바스티안 페 텔(오른쪽)이 경주차 ‘RB9’에 앉아 정비 상태를 살펴 보고 있다. 영암=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F1은 자동차 기술 개발뿐 아니라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인피니티 F1팀의 차고를 나서자 특설 관람석인 ‘패독클럽’이 눈에 띄었다. F1 참여 업체 및 스폰서의 VVIP(초우량고객)를 위한 좌석이다. 입장권 가격은 장당 5000달러(약 535만 원) 안팎이다.

F1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손꼽힌다. 세계 시청자는 6억 명에 이른다.

마케팅 효과도 크다. 인피니티는 F1에 참여한 뒤 5억 달러(약 5350억 원)가량의 브랜드 노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했다. F1 머신에는 자동차업체와 금융회사, 음료회사, 명품업체의 다양한 브랜드 로고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빼곡히 붙어 있다.  
▼ F1팀 헬멧에 ‘르노삼성’ 로고… 시청자 6억명 광고효과 톡톡 ▼

6일 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서킷 위를 질
주하고 있는 키미 라이코넨(핀란드)의 헬멧에 새겨
진 르노삼성자동차 한글 로고.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6일 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서킷 위를 질 주하고 있는 키미 라이코넨(핀란드)의 헬멧에 새겨 진 르노삼성자동차 한글 로고.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인기 F1팀 머신의 목 좋은 자리일수록 광고료가 비싸다. 운전석 정면에 로고를 붙이는 경우 연간 광고료가 최고 5000만 달러(약 565억 원)에 이른다. 르노삼성자동차는 한국 대회에 맞춰 F1팀 로터스와 케이터햄 머신 운전석 측면과 레이서 헬멧에 ‘르노삼성’이라는 한글 로고를 달아 재미를 봤다. F1 머신에 한글이 새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터스팀 소속 머신 2대는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날 결승전은 잇단 사고로 세이프티카(경기 중 사고 발생 시 투입되는 안전유지차량)인 벤츠 ‘SLS AMG’가 두 차례나 등장해 10여 분간 전파를 탔다. 화재사고 처리를 위해 초기 화재 진압용으로 개조된 크라이슬러의 ‘지프 그랜드체로키’가 서킷 위를 달렸다. 이런 해프닝들이 후원업체들에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안겨준다. 김민조 한국닛산 홍보팀 차장은 “F1은 특히 고급차나 명품 구매를 고려하는 고소득층 팬이 많아 마케팅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다”고 말했다.

영암=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레이서#인피니티#레드불#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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