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밥벌이의 거룩함” 4050 남성 직장인들과 통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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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위 석권 조정래 소설 ‘정글만리 1,2,3’

7주 동안 베스트셀러 순위(한국출판인회의 집계 기준) 정상에 우뚝 서 있다. 판매 부수는 이미 55만 부를 넘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저 멀리 따돌리고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 1·2·3권(해냄출판사) 얘기다.

지난달 17일 발표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색채가 없는…’을 끌어내리고 ‘정글만리’ 1권이 1위에 오르는가 싶더니, 이제는 종합순위 2위와 3위도 ‘정글만리’ 2권과 3권이 나란히 올라있다. 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처럼 금·은·동메달을 한국 선수가 싹쓸이한 모양새다.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낯섦이었다. 자본주의 정글 중국을 무대로 세계 각국의 주재원들이 펼치는 경제 전쟁을 그린 이 소설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민족이라는 화두를 고민해 온 작가 조정래의 ‘적자(嫡子)’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종이책 출간에 앞서 인터넷 포털(네이버)에 한 차례 연재돼 종이책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의 꼭대기로 끌어올린 힘은 무엇이었을까.

‘정글만리’의 최대 독자층은 40, 50대 남성이다. 보통 소설 시장을 30대 여성 독자가 주도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전대광’ ‘하경만’ 같은 한국 경제인들의 모험담 같은 활약상이 선 굵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이들 독자층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책의 밑바닥 정서에서 흐르고 있는 ‘밥벌이의 거룩함’에 대한 긍정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 회사원들의 정서와 통하는 측면이 있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전경련 주최 창조경제회의에서 “‘정글만리’를 읽어보면 해외에서 기업하고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국민들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에 지사나 주재원을 둔 기업을 중심으로 이 책을 단체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의 삶에서 이제 상수(常數)로 자리 잡은 중국이라는 거대 실체를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외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이고, 중국 경제가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리는 현실에서 이 책은 민족의 앞날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정글만리’는 소설이면서도 일종의 자기계발서처럼 세계경제 판도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분석했다.

108일 동안의 인터넷 포털 연재도 작품의 신선함을 떨어뜨리는 것을 상쇄할 만큼의 입소문 효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글만리’를 펴낸 해냄출판사의 이진숙 편집장은 “인터넷 연재를 읽은 분들이 먼저 앞장서 ‘종이책으로 읽고 싶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며 “‘태백산맥’ 등 작가의 역사소설 3부작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면, ‘정글만리’는 미래와 세계를 조망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조정래#정글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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