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패션사업 에버랜드에 넘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 소재전문 기업으로 탈바꿈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은 23일 이사회를 열어 패션사업 부문을 관계사인 삼성에버랜드에 1조500억 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각각 주주총회를 거쳐 12월 1일 패션사업의 자산과 인력 양수도 계약을 확정할 계획이다.

갤럭시, 구호, 빈폴 등의 브랜드로 알려진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부문은 연 매출액 1조8419억 원 규모로 전체 매출의 30.6%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모태인 직물과 관련된 사업이어서 매각 결정 배경을 두고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 “제일모직, 전자소재에만 집중”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포기한 배경에 대해 매출 비중이 높은 화학과 전자소재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사업별 매출액은 화학이 약 44%, 전자재료가 약 26%로 전체 매출액의 약 70%가 비(非)패션 매출에서 나왔다.

제일모직은 매각 대금 1조500억 원을 소재사업에 재투자하고, 연내 회사 이름도 전자소재 사업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바꿀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은 2004년 한 차례 사명 변경을 추진했다가 접은 적이 있으며, 영문으로는 이미 ‘CHEIL INDUSTRIES’(제일산업)를 사용하고 있다.

박종우 제일모직 소재사업 총괄사장은 “이번 결정은 글로벌 소재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공격적 투자를 통해 차세대 소재 개발과 생산기술 시너지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삼성에버랜드는 기존 테마파크, 골프장 운영 사업에 패스트패션, 아웃도어, 스포츠 패션 분야를 합쳐 ‘소프트 경쟁력’을 확대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패션사업을 중장기 성장의 한 축이자 글로벌 성장을 위한 모멘텀으로 적극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국민연금 경영 참여 영향도

이번 매각 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규제가 강화되는 등 기업 외부 경영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9.8%)인 국민연금은 회사 측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패션사업을 매각하고 전자소재 사업 위주로 재편성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이면서 삼성전자의 2대주주(7.4%)인 국민연금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점도 이번 매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패션사업을 분리해야 하는데 다른 계열사는 시너지 효과가 없고, 외부의 인수자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오너 일가의 지분이 높고 그나마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사업을 맡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제일모직 패션사업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245억 원으로 전체 영업이익(1448억 원)의 16.9%에 그쳤다. 영업이익률도 2.4%로 전자재료의 영업이익률(10.8%)에 크게 못 미쳤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출신인 윤주화 사장이 지난해 말 패션부문을 맡은 뒤론 ‘후부’ 등 일부 브랜드를 철수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매각 발표가 나온 23일 제일모직의 주가는 3000원(3.26%) 올랐다.

오너 일가 지분이 46.0%에 이르는 삼성에버랜드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규제가 강화되면서 어려움이 예상돼 왔다. 부동산 관리와 급식 사업 등 내부 의존도가 높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에버랜드가 내부거래 비율이 낮은 패션사업에서 새로운 성장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후계구도 영향은

디자인을 전공한 뒤 패션사업을 직접 챙겨왔던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거취도 관심사에 올랐다. 하지만 삼성그룹에선 이번 매각을 계기로 이 부사장의 거취에 당장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부사장은 패션사업을 총괄하다가 지난해 말 인사에서 경영기획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패션사업 매각으로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전자소재 기업으로 적극 육성해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번 매각을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그룹 분리의 전 단계라고 보는 해석도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사업만 주고받았을 뿐 오너 일가의 지분 변동은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그룹 내 계열사 간 비효율적이거나 중복되는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연말까지 크고 작은 계열사 간 사업 조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용석·박진우·권기범 기자 nex@donga.com
#제일모직#에버랜드#제일모직 패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