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백두산줄기와 낙동강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에서 잘 나가자면 ‘줄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최고의 줄기는 ‘백두산줄기’다. 백두산줄기는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을 했던 동료들과 그 후손을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전공을 세운 빨치산이라 해도 김일성부대가 아니라면 백두산줄기로 인정받지 못한다.

북한을 기업이라 가정하면 백두산줄기는 창업주 세대다. 보스인 김일성이 1세대, 김정일은 2세대, 김정은은 3세대에 해당한다. 김 씨 왕조에서 백두산줄기는 일종의 성골, 진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나마 60년 넘은 권력 투쟁 가운데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빨치산 출신은 많지 않다. 백두산줄기를 타고 태어났으면 중앙당 간부 정도는 해야 정상이다.

북한에서 두 번째로 치는 줄기는 ‘낙동강줄기’다. 이들은 6·25전쟁에 북한군으로 참전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낙동강줄기는 기업으로 치면 공격적인 확장을 하다 부도날 뻔한 회사를 목숨 걸고 지킨 가신그룹이라 할 수 있다. 백두산줄기와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자식들까지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고, 간부로 승진할 때 가산점을 인정받는다. 현재 북한이라는 썩은 고목이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양대 뿌리가 바로 백두산줄기와 낙동강줄기이다.

북한은 빨치산 출신들에겐 주치의까지 붙여 건강을 돌보고, 부족한 것 없이 물자를 공급해줬다. 그래도 세월은 감당할 수 없어 현재 백두산줄기의 1세대 중엔 소년빨치산 출신인 이을설 원수(92세)만이 생존해 있다.

하지만 낙동강줄기에겐 그런 특혜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에 6·25전쟁 참전자라고 해서 식량배급을 따로 해주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출신성분이 좋다보니 본인이나 자녀가 간부로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고, 따라서 굶어죽을 가능성도 낮긴 했다.

낙동강줄기는 1990년대를 변환점으로 대다수가 은퇴해 지금까지 별 관심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 말 노동당 각 지방조직에 참전노병을 찾아내 7월 27일까지 죽지 않게 하라는 특명이 하달됐다. 부랴부랴 노병들에게 주치의가 붙고 특별공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일인 ‘7·27 전승절’ 기념행사를 올해 최대 국가행사로 정해 준비에 올인하고 있는데 여기에 정작 노병들이 빠지면 행사의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에서 노병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1953년에 20세였다고 가정해도 지금은 80세가 된다. 북한 남성의 평균수명이 65.6세로 한국보다 12세나 낮은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80세 노병을 찾기는 한국에서 92세 이상 노병을 찾기만큼 어렵다.

며칠 뒤 열리는 북한의 전승절 행사장에 과연 몇 명의 참전노병이 나타날 수 있을지 흥미로운 관심사다. 물론 북한이 노병쯤이야 못 만들어낼까 싶지만…. 요행히 생존한 노병들이 주석단에 원수복을 입고 등장할 손자뻘 김정은을 보면서 만세를 외칠 기력이나 마음은 있을지 모르겠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