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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커버스토리]한국인 첫 미국프로 진출한 ‘낚시계 박세리’ 양영곤 스토리

입력 2013-06-28 03:00업데이트 2013-07-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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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 대학 땐 틈나면 낚시하고 물고기 공부에 미쳐
국내 대회에서 이름 날리다 대학 졸업직후 미국행
美서부 톱10에 4번 오른 스타… “고수는 자연앞에 겸손합니다”
1985년 여름 경기 포천시의 어느 하천. 소년은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서는 눈을 크게 떴다. 이제 곧 사촌형이 투망을 던질 것이다. 낙하산처럼 쫙 펼쳐진 그물은 수면에 닿은 후 물속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물속 고기들은 혼란에 빠졌다. ‘사정권’ 밖에 있다 놀라서 그물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데 돌 위의 돌붕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투망에 달린 추가 돌들을 드르륵∼ 긁으며 꽤 큰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데도, 손가락만 한 작은 물고기들은 유유자적했다. 그물이 바로 앞에 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여졌다. 돌붕어들은 일제히 옆으로 드러누웠다. 투망은 그들 위를 지나 다른 물고기들을 가뒀다. 아홉 살 소년은 그제야 돌붕어가 투망에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적어도 물고기에 관해서는 그랬다. 처음엔 고기 잡는 아저씨들을 따라다니며 물고기를 얻어다 키웠다. 그러다 보니 어깨 너머로 낚시를 배우게 됐다. 그 재미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줄여가며 혼자 낚시를 했다. 해질 무렵 볕에 새카맣게 탄 아이가 물고기를 한 바구니 잡아 돌아갈 때면 시장 상인들이 “낚시 신동”이라고 칭찬을 해줬다.

이것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로낚시 리그에 진출한 양영곤(37)의 이야기다. 낚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는 ‘낚시계의 박세리’ 같은 존재다.

물고기와 소년

양영곤의 학창 시절은 낚시와 물고기에 대한 연구,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는 단순히 낚시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왜’란 화두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어제 많은 고기를 잡은 곳에서 왜 오늘은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지, 어떤 미끼와 낚시법을 써야 물고기가 잘 잡히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물고기를 키우며 생태를 연구하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 토요일이면 여분의 옷과 낚싯대를 챙겨 들고 등교했다. 학교가 파하면 바로 인천으로 갔다. 하룻밤에 1만5000원 하는 여인숙에서 잔 후 일요일 새벽에 낚싯배를 탔다. 뱃삯과 장비 값은 틈틈이 모은 용돈과 열대어를 번식시켜 수족관에 판 돈으로 충당했다.

양영곤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루어낚시(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가짜 미끼를 사용)를 접하게 됐다. 신세계가 열렸다. 하지만 가짜 미끼(루어)는 생미끼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무생물인 루어가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물고기의 습성과 생태를 더 많이 연구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것이 프로낚시인 양영곤을 낳은 계기가 됐다.

대학 시절에는 낚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군부대 앞 헌책방에서 낚시 관련 책을 구해다 읽었다. 낚시와 전공(영문학)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이론 공부를 하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배스낚시를 가르치는 곳에서 조교 역할도 하게 됐다. 국내 아마추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주변의 도움으로 일본의 낚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양영곤은 일본에서 새로운 낚시의 세계를 경험했다. 낚시계라는 곳은 고수 위에 또 다른 고수,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무협지의 강호 같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일본에 다녀온 후 자꾸 스포츠피싱의 ‘본고장’인 미국 생각이 났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당장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미국으로 낚시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호수를 섭렵했다. ‘정말 해야겠다. 안 하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졸업 후 취업 대신 미국행을 택했다. 가져간 돈은 단돈 100만 원이 전부였다.

낚시계의 ‘박세리’

로스앤젤레스에 추적추적 비가 내린 다음 날, 양영곤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중고 밴의 짐칸은 요리를 위해 손질된 물고기 배 속처럼 텅 비어 있었다.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구입한 원목마루 공사 장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한 달 동안 거의 무보수로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산 장비였다.

미국 정착은 정말 쉽지 않았다. 처음 가져온 100만 원은 한 달 치 하숙비와 보증금을 내고 나니 거의 다 사라졌다. 다행히 낚시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지만 수입은 많지 않았다. 밤이면 한인타운 가라오케에서 일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낚시대회 참가비를 모았다.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마루 기술을 배우기로 했는데, 그 장비를 몽땅 도둑맞은 것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장비는 없어졌지만 차는 남지 않았나.’ 바로 한인들이 자주 들르는 웹사이트에 가구나 짐을 옮겨준다는 글을 올렸다. 성실한 태도가 입소문이 나면서 사업은 점점 커져갔다. 나중에는 직원 여러 명을 고용한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화물 운송업은 낚시대회에 참가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었다. 대회 일정에 따라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낚시인의 생활은 프로골퍼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 북미 대륙 전체를 끝없이 이동하며 경기를 치른다. 짧은 대회는 1, 2일, 긴 대회는 일주일 동안 열린다. 이동 과정은 프로골퍼보다 훨씬 고달프다. 낚시보트를 끌고 가야 하니 육로만을 이용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켄터키까지 차를 몰고 가면 편도 이동에만 2.5일이 걸린다. 체력과 돈,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미국에서 양영곤은 낚시대회 참가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입상권(상위 20∼30%)에 들어가는 비율은 매년 50% 이상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해에는 70∼80%의 대회에서 입상권에 들었다. 전국 대회에서 여러 번 10위권에 들었고, 지역 대회에서는 우승도 여러 번 했다.

대회 참가비(최고 4000달러 정도)와 경비를 빼면 적자를 보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오히려 매년 낚시로만 웬만한 직장인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낚시대회에 참가한 6년 동안 미국 서부지역 톱10에 그의 이름이 4번 올랐다. ‘브래들리 양’(양영곤)은 미국 낚시계에서도 상당한 유력인사가 됐다.

행복을 위한 낚시

2013년 6월 24일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의 한 카페. 기자와 양영곤, 그의 아내와 네 살 난 딸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양영곤은 지난해 3월 귀국했다. “부족한 점이 없었을 텐데 왜 굳이 귀국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아내는 미국 시민권자(예전에 이민)이고 자신은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업과 낚시 모두에서 꽤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가족, 특히 아이를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겠더라고요. 미국에선 그게 힘들었거든요. 아이가 한국말을 못하면 나중에 엄마, 아빠랑 거리가 생길 것도 같았고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대가족의 분위기도 익히게 하고 싶었어요.”

현재 그는 남양주에서 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 국내 조구업체의 프로스태프로도 활동한다. 한국에 와서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21일 양영곤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전화 한 통을 하자 동네에서 낚시하다 만났다는 후배들이 바로 달려왔다. 그를 무척이나 따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라. 낚시 동호인들에게 양영곤과 낚시하는 것은 골프 마니아가 박세리와 라운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카페 안에서 그는 낚시와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줬다. 배스가 어느 정도 자라면 길이보다는 부피 쪽으로 성장한다든지, 대물 꺽지는 높은 수압을 싫어해 의외로 얕은 곳에 머문다든지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낚시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나이지만 30여 년의 조력(釣歷)을 가진 그의 ‘내공’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에게는 낚시를 한다는 것이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낚시는 끝없는 도전입니다. 프로인 저도 가끔 좌절을 맛봅니다. 그러면 도전의식을 갖고 항상 공부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항상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는 점은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낚시가 잘 안 되면 날씨나 주변 여건 탓을 하기 쉽습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패배할 수 있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 인간이 굴복해야 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낚시는 아이들에게 인내심과 집중력, 성취감 등을 길러줍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언젠가 낚시를 하게 될 제 아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이외에도 스트레스를 잊고 몰입하게 해주고, 물고기를 잡고 놓아주는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등 낚시의 여러 장점을 이야기해 줬다.

마지막으로 여름 휴가철 낚시를 해보려고 하는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겠지요.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꼭 구명조끼를 입히세요. 물이 얕더라도 물살이 센 곳에서는 조심하셔야 하고요. 그리고 낚시를 할 때는 꼭 경험 있는 사람의 조언을 얻으세요. 경험자의 말 한마디가 3개월 치, 많으면 3년 치의 ‘내공’을 전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남양주=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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