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삼아 쏜 쇠구슬에 45m거리 외제차 창문 박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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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을 ‘레저용 새총’ 버젓이 판매
고탄력 고무줄 사용 시속200km 위력, 얼굴 등에 직접 맞으면 엄청난 충격
전문가 “BB탄처럼 법적규제 필요”

서모 씨와 김모 씨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레저용 새총과 쇠구슬(왼쪽 사진). 45m 떨어진 승용차 유리창에 구멍을 낼 만큼 위력이 강하지만 구입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서울 중부경찰서 제공
서모 씨와 김모 씨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레저용 새총과 쇠구슬(왼쪽 사진). 45m 떨어진 승용차 유리창에 구멍을 낼 만큼 위력이 강하지만 구입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서울 중부경찰서 제공
14일 오후 3시경 A 씨는 서울 종로구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상가 앞에 세워둔 자신의 BMW 승용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몇 시간 전 차를 세울 때만 해도 멀쩡했던 운전석 유리창 전체에 수천 갈래 금이 가 있고 유리창 한가운데엔 지름 1cm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인근 상가 2곳의 유리문도 비슷한 형태로 깨져 있었다.

A 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승용차 유리창과 상가 유리문에 뚫린 구멍의 형태가 쇠구슬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팀을 투입해 수사를 시작했다. 새총을 이용한 ‘묻지 마 테러’의 가능성을 우려한 조치다.

탐문을 시작한 지 이틀 만인 17일 A 씨의 승용차가 주차돼 있던 상가의 맞은편인 평화시장에서 장사하는 서모 씨(45)와 김모 씨(54)가 경찰을 찾았다. 이들은 14일 오전 가게 앞 인도에 생수병을 세워두고 누가 표적을 더 잘 맞히는지 겨루다 빗나간 쇠구슬이 청계천을 넘어 길 건너편까지 날아간 것 같다며 “유리창까지 깬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서 씨는 몇 달 전 가게 창고에서 까치를 쫓으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새총과 쇠구슬을 구입한 뒤 김 씨와 때때로 새총을 가지고 논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쇠로 만든 Y자 몸통에 고무줄을 단 새총으로 발사한 지름 8mm 쇠구슬이 45m나 떨어진 승용차 유리창에 구멍을 낼 수 있는지 서 씨의 새총으로 직접 실험했다. 그 결과 그 정도 거리에서 유리창을 깰 수 있을 정도의 위력임이 확인됐다. 18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들의 행동이 고의가 아니었고 피해자들에게 유리 값 200만 원가량을 변상한 점을 감안해 처벌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두 중년 남자의 장난은 유리창 손상 수준에서 그쳤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레저용 새총은 살상용으로 둔갑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 나뭇가지와 기저귀 고무줄을 이용해 만들던 새총과는 달리 쇠와 고탄력 고무줄을 사용한다. 쇠구슬 속도가 시속 200km, 사거리는 100m를 넘는다. 얼굴 등에 직접 맞으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손목 지지대까지 달린 특수 새총도 판매되고 있다. 이런 새총은 쇠구슬이 시속 250km 이상으로 발사돼 100m 거리에 있는 강화유리를 관통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사냥도구나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서바이벌 카페에선 새총에 쇠구슬 대신 화살촉을 장전해 멧돼지를 사냥하는 해외 동영상이 돌아다닌다. 터키와 팔레스타인 등지에선 시위대가 경찰이나 적군을 겨냥해 새총으로 돌을 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2011년 2월 전북 전주시에서 달리는 버스 3대에 새총으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쇠구슬이 잇따라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지면서 승객이 다쳤다. 지난해 12월엔 호기심에 새총으로 쇠구슬을 발사해 이웃집 아파트 유리창을 깬 40대 회사원이 경찰에 입건되는 등 새총을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살상력이 이렇게 강한데도 인터넷 쇼핑몰에선 1만,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누구나 새총을 구입할 수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플라스틱탄(BB탄) 총은 위력에 따라 어린이용, 청소년용, 성인용 등으로 사용 연령을 나누고 최대 세기를 제한하지만 새총은 규제가 전혀 없다. 인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흉기이기 때문에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쇠구슬#레저용 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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