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년원 두번 보낸 아이가 “사랑합니다” 편지… 판사의 믿음, 사고뭉치의 마음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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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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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민 사법연수원 교수

“수없이 변하겠다고 하고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근데 그때는 변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고, 이제는 정말 조금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만 더 지켜봐 주세요.” 편지에 적힌 이 말 때문에 김정민 판사(위 사진)는 지웅(가명)이를 놓을 수 없었다. 2번이나 소년원에 보낸 지웅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들었다(아래 사진). 고양=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수없이 변하겠다고 하고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근데 그때는 변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고, 이제는 정말 조금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만 더 지켜봐 주세요.” 편지에 적힌 이 말 때문에 김정민 판사(위 사진)는 지웅(가명)이를 놓을 수 없었다. 2번이나 소년원에 보낸 지웅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들었다(아래 사진). 고양=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제 2학년인데 각오가 어떠니?”

“정말 열심히 다녀야죠!”

“혹시 또 정신교육 받아야 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저 이제 사고 안 쳐요∼.”

개학을 앞둔 지난달 28일 오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정민 판사(40·여·사법연수원 29기)의 휴대전화에 연신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지웅(가명·18)이, 김 판사가 2009년과 2011년에 소년원에 보냈던 아이다. 지난해 남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웅이는 오토바이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김 판사와 만난 것도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2009년 5월 수원지방법원 소년부에 왔을 때였다. 이혼한 어머니는 생계 때문에 지웅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2008년) 때 자퇴하고 가출해 친구들과 오토바이 타고 본드 마시고 후배나 친구 돈을 빼앗아 경찰서에 몇 번 드나들었지만 법정에 선 건 처음이었다. 김 판사는 지웅이에게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해 11월 지웅이는 야간 외출을 제한하는 준수 사항을 어기고 또 가출해 재판을 받았다. 김 판사는 지웅이를 소년원에 한 달간 가게 했다.

2010년 초에도 지웅이의 사건은 여러 건 접수됐다. 소년원에 가기 전에 저질렀던 사건이 뒤늦게 수사됐던 것. 김 판사는 재판에 부치지 않는 대신에 “또 사고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사건 목록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지웅이가 또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 돈을 빼앗았다. 재판이 능사가 아니었다. 김 판사는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법원에 부르기로 했다. 매일 3쪽씩 반성문을 써 오라는 숙제와 함께.

“아무도 안 깨워 줘서 학교에 못 가서 자퇴했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엄마가 잔소리할 때 욕을 했습니다.”

아이는 솔직한 마음을 쏟아 냈다. 김 판사는 훈계를 하다 그의 상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2, 3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지웅이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을 소집해 함께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까지 다잡아야 지웅이가 제자리를 찾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웅이의 반성문은 편지로 변해 갔다.

“판사님을 법정에서 만났을 때 무서웠습니다. ‘나 같은 애 봐줄 리 없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변하게 하려는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 들어 주고 혼내는 어른이 없었는데….” “안녕하세요, 판사님. 날씨가 엄청 춥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계신지 걱정됩니다.”

이 기간에도 지웅이는 몇 번 말썽을 피웠다. 김 판사는 속이 상했지만 지웅이를 놓아 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눈빛이 조금은 달라졌어.’

3개월간의 멘토링을 끝낸 2011년 1월 김 판사는 지웅이에게 소년원에 6개월간 가는 처분을 내렸다. 직접 데려다주며 말했다. “4월에 꼭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하자. 내년에 고등학교 가는 거야.”

그 다음 달 김 판사는 서울가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지웅이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소년원으로 찾아가거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소년원에서 나오기 직전 지웅이는 김 판사에게 편지로 고백했다. “판사님께서 저를 만날 때 행복하시다면 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사님의 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판사님!”

드디어 지난해에 지웅이는 “교복 입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라던 약속을 지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래도 김 판사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담임교사에게 편지도 쓰고 직접 만나 부탁까지 했다.

“아이가 한번에 바뀌기는 힘들 거예요. 잘못해도 ‘네가 그럼 그렇지’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담임과의 첫 면담에서 “판사님 때문에 학교 왔다”며 수동적이던 아이는 이제 방학이 심심해 싫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당연히 결석과 지각도 하지 않았다.

“너, 차(車) 전문가잖아. 나중에 내 차는 네가 고쳐 줘야지!” 요즘 김 판사가 틈 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지웅이가 대학에 갈 의지를 다지고 있어서다.

주변에서는 김 판사를 말리기도 했다. “뭐 하러 저런 아이에게 힘을 쏟느냐”고. 하지만 ‘관심을 가져 주면 변한다’는 김 판사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해 지웅이는 스승의 날을 맞아 편지를 보내 왔다. “저는 잘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판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양=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소년원#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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