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17km 거리… 오염 제거 한창 나라하(楢葉) 마을 체육관에 도착했다. 원전에서 17km 떨어진 이곳은 ‘피난 지시 해제 준비구역’. 높은 방사선량 때문에 낮에만 출입할 수 있다. 지난해엔 출입이 아예 통제됐던 곳이다.
나라하 정에서도 오염 제거 작업이 한창이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인부들은 낙엽과 나뭇가지를 쓸어 모아 대형 비닐에 담았다. 시간당 0.233μSv를 가리키던 측정기를 낙엽 더미에 댔더니 0.989μSv까지 올라갔다. 허용된 피폭 한계보다 5배 높은 환경에서 일하는 셈이다.
50대의 한 인부는 “방사능이 축적돼 암이 생기는 데 20∼30년 걸린다고 들었다. 내 나이를 감안하면 어차피 그때쯤 죽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인부 대부분은 50대 이상이었다.
나라하 정의 모든 가정집과 가게, 학교, 병원은 문이 닫혀 있다. 2년간 방치된 가게 입구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거리엔 차량이 넘쳤다. 공공 주차장도 빽빽했다. 주민이 마을을 떠났지만 오염 제거 인부들이 지난해 8월 몰려들면서 벌어진 낯선 광경이다.
○ 원전 12km 거리…죽음의 땅
원전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의 공기 중 방사선량은 시간당 0.443μSv였다. 도미오카(富岡) 정 푯말이 보이는가 싶더니 바리케이드가 나타나 더는 진입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온 취재기자”라고 했더니 경찰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발행한 허가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발길을 돌려 사전에 약속한 마쓰무라 나오토(松村直登·53) 씨를 만났다. 그는 매달 허가증을 갱신하면서 사실상 도미오카 정에서 살고 있다. 마쓰무라 씨는 “도미오카 정은 여전히 죽어 있는 마을”이라고 실상을 전했다. 고삐에 묶인 가축 대부분이 폐사했다. 그는 “논에 벼를 심었고 밭에는 콩과 감자, 고구마를 심었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해 방사능 검사를 의뢰했더니 모든 작물에서 세슘이 나왔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염 제거 작업을 해도 수십 년 동안 도미오카에는 사람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슘은 강력한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반감기가 30년이나 된다.
이와키 시의 횟집들은 모두 수입한 생선이나, 홋카이도(北海道) 인근에서 잡은 생선을 사용한다.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힌 생선에서 아직도 세슘이 검출되기 때문이다.
○ 봄은 찾아올까?
19일 오후 후쿠시마 역 카페에서 만났던 가마다 지에미(鎌田千瑛美·27·여) 씨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南相馬) 시 출신인 그는 대지진 당시 도쿄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1월 후쿠시마 시로 이주해 ‘피치 하트(Peach Heart)’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가마다 씨는 “가족과 연인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원전 공포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들어 서로에게 힘을 주고자 피치하트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이와키 역 주변엔 ‘새벽시장’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새로 생겼다. 대지진으로 식당을 버리고 피난했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음식점이 이젠 10곳으로 늘었다. ‘고호비’라는 이름의 맥줏집을 운영하는 야마코시(山越) 씨는 “원전 폭발과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언제쯤 원전 인근 마을이 정상화될까. 주민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와키 시의 일식집 주방장은 “최근 후쿠시마 어린이 3명이 갑상샘 암에 걸린 것으로 판명됐다. 그걸 보고 이곳에 올 사람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원전 사고는 그렇게 수십 년이 넘는 크기의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후쿠시마·이와키·히로노·나라하·도미오카=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