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선언 65일만에 대선포기 선언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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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단일화 수싸움에 실망… 지지율 하락도 영향 미친 듯

취재 열기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브리핑룸에서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연합뉴스
취재 열기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브리핑룸에서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연합뉴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23일 스스로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9월 19일 출마 선언을 한 지 65일 만이다. 그는 최근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후보 등록(25, 26일)을 이틀 앞두고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

이날 오후까지 ‘전권 대리인’ 채널을 가동하며 단일화 협상에 공을 들였던 안 후보는 오후 8시 20분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를 위한 최종 담판을 제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안 후보는 다시 한 번 ‘안철수식’ 깜짝 결심을 발표했다. 안 후보는 대선판에는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매우 더디게 진입했지만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30분 만에 시장후보를 양보했을 때처럼 퇴장할 때는 전격적으로 발을 뺐다. 중요한 순간에 장고(長考)를 거듭하되 일단 결심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최고경영자(CEO)식 스타일이 엿보인다.

지지율 20%를 넘는 유력 대선후보의 중도 사퇴는 이례적이다. 안 후보의 고민은 11월 초 단일화 협상이 본격화된 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새 정치와 정권교체에 대한 안 후보의 진심이 정치공학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 과정 곳곳에서 ‘경우의 수’를 따지며 유불리를 계산하는 모습에서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대선을 치르려면 이보다 더한 진흙탕 싸움을 견뎌내야 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진심이 왜곡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무엇보다 후보 등록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까지 단일화 협상이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진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고 한다. 그가 사퇴 회견에서 “저는 얼마 전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했다”며 “제가 대통령이 돼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양보하겠다는 뜻이다.

협상 과정에서 거친 파열음이 불거지면서 ‘아름다운 단일화’ 취지가 무색해진 것도 ‘새 정치’를 표방한 안 후보로선 큰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하락세에 놓인 지지율 추이도 그를 압박했다. 안 후보가 늘 강조해온 ‘새 정치’ 구도가 단일화 혼전 속에서 뒷전으로 밀린 데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다자구도 지지율, 야권후보 적합도, 야권후보 지지도에서 안 후보를 앞서는 결과들이 속속 등장했다. 문 후보와의 여론조사 룰 협상에서 마지막까지 고수했던 ‘양자 가상대결’ 부문 외에는 기대할 게 별로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었다. ‘유리한 한 가지 방법 끝까지 고수’로 안 후보가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론에 직면한다면 ‘새 정치’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타격을 넘어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얘기다.

안 후보는 22일 오전 문 후보와의 비공개 단독 회동을 마친 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홀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을 비롯해 평소 교감해왔던 주변 인사들과 참모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고민도 털어놨다고 한다. ‘후보 양보’와 ‘정권 교체’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던 22일 밤 민주당 측이 ‘가상대결 50%, 적합도 50% 여론조사’를 공개 제안하자 안 후보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안 캠프는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22일 밤 ‘11시 20분 안철수 후보 기자회견’ 문자메시지가 취재진에게 전달된 것이 단순 실수가 아니었다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의 공개 제안으로 나타난 ‘명분 쌓기’의 모습을 본 안 후보가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에 대한 유감을 직접 표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려 했지만 참모들의 만류로 박선숙 본부장 기자회견으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는 ‘정말 내가 대통령 자격이 있나’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민주당의 진정성 없는 공개 제안 때문에 감정이 격앙됐던 것 같다”며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현실적인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퇴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전문)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합니다.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저는 의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제 마지막 중재안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더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 정치에 어긋나고 국민에게 더 많은 상처를 드릴 뿐입니다. 저는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문 후보님과 저는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후보직 내려놓겠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신 고마움과 뜻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의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해주신 캠프 동료들, 직장까지 휴직하고 학교까지 쉬면서 저를 위해 헌신해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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