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광장에 이웃 모여 삶 공유하는 도시부족의 콜로세움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아파트의 변신 Season 2]<4>테트리스 아파트

한국사회가 직면한 매우 큰 문제 중 하나는 ‘아파트’다. 한국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가치가 아파트로 수렴되고 또 이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요즘은 아파트 문화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사회가 끊임없이 불안정해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정착하고 싶은 욕구와 재산 증식의 의도가 접합돼 아파트 소유욕을 부추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은 정착은커녕 끊임없이 집을 바꿔 가며 ‘이주’를 해야 하는 반대의 현실에 놓이게 됐다.

○ ‘도시 부족’의 탄생

이렇게 이주를 반복하다 보니 아파트를 소유해야 하는 이유도, 아파트에 정착하고 싶은 욕구도 엷어지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파트(정착수단)를 소유할 바에는 그 돈으로 더 좋은 집을 빌리고, 남는 돈으로 좋은 차(이동수단)를 타고 여행하며 좋은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기보다는 렌트하거나 리스해서 쓰겠다는 것으로, ‘소유’보다는 ‘사용’에 더 큰 방점을 찍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은 아파트라는 거대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또 ‘소유’에 집착하는 대신 ‘공유’ 문화로 옮겨가는 토대가 된다. 패러다임은 이런 식으로 변화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장년층보다 생계가 빠듯한 젊은 세대 가운데 사회적 기부자가 더 많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현실도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와 맥을 함께하는 것이다.

아파트가 한계에 이르렀듯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삶의 방식과 가치도 위기에 처해 있다. 아파트 단지계획의 커다란 법적 제도적 전제가 지역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근린성’이지만, 이제 이 가치에 동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옆에 사는 이웃과 어울리기보다는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한다. 아파트 단지 내의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것도 점점 좋아지기는 하지만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똑같은 삶만 양산하고 있다.

그렇다고 커뮤니티가 사라졌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근린성과는 무관하게 무수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다. 이 커뮤니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증식과 소멸을 반복하는데, 사는 곳에 기반을 두지 않을 뿐 라이프스타일은 더욱 풍부해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이러한 커뮤니티 그룹을 ‘도시 부족(urban tribe)’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이 한 도시 부족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 부족에 동시에 혹은 시기를 달리하며 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잠정적 취향공동체 같은 것이다.

○ 문화적 활동의 소셜 플랫폼

여기 소개하는 테트리스 공동 주거는 이러한 도시 부족을 위한 임시 거처이다. 이곳은 취향공동체이지만 동호인 주택단지와는 달리 정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곳은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자, 사회문화적 활동을 생산함과 동시에 향유하는 일종의 소셜 플랫폼이다. 거주만을 목적으로 사적 공간을 층층이 쌓아 놓은 아파트와는 다른 개념이다.

기존 아파트의 공용 공간이 모두를 위한 곳을 표방하면서 실은 아무도 쓸 수 없는 텅 빈 익명의 공간이라면, 이곳은 공용 공간에서도 사적인 행위를 유도하고, 이웃과의 접촉을 촉진하며, 자발적인 소통이 문화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잠정적으로 삶을 공유하며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위 가구는 1, 2인을 위한 최소한의 거주공간(28m²·약 8.5평)인데 3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현관이 있는 층엔 주방과 욕실이 있고, 그 아래와 위층에 두 개의 공간이 나뉘어 있어 2인이 각각 한 층씩 쓸 수도 있고, 1인이 2개 층을 거실과 침실로 다 쓸 수도 있다. 이 3개 층의 일부는 위아래 층이 트여 있어 개방감을 주고 상호 간 시야도 확보된다.

이 단위 가구들은 마치 테트리스의 블록처럼 쌓아 올려진다. 전체 건물은 구심형으로 콜로세움처럼 중정(中庭)을 형성하는데, 이 중정 내부에 둘러쳐지는 복도는 공용 거실로서 다양한 생활을 공유하는 장소가 된다. 이곳엔 제대로 갖추어진 공동의 주방이나 커다란 식탁, 소파, 서재 그리고 업무를 볼 수 있는 비즈니스센터를 둘 수 있다. 중정 1층은 외부에 개방될 수도 폐쇄될 수도 있다. 이곳에선 벼룩시장이나 전시 공연 회의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 3층에 형성된 관람석 구조의 휴게공간은 이러한 이벤트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이러한 테트리스 아파트엔 사실 아파트보다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아직 뭐라 불러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거주 개념에 발상의 전환과 혁신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필자 명단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②조남호 솔토건축소장 ③황두진 황두진건축소장 ④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⑤정현아 DIA건축소장 ⑥김찬중 THE_SYSTEM LAB 소장 ⑦안기현 이민수 Ani_스튜디오 공동소장 ⑧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⑨임재용 OCA건축소장 ⑩양수인 삶것(lifethings)소장

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sookim@ewha.ac.kr
#테트리스 아파트#도시부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