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보유 하우스푸어 “집 팔고 전세금 돌려주면 거리 나앉을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깡통주택’ 보유 하우스푸어 “집 팔고 전세금 돌려주면 거리 나앉을 판”
전국에 18만5000가구… 부채 규모 58조원



대기업 부장 정모 씨(47·경기 평택시)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2007년에 경기 용인시에서 투자용으로 매입한 아파트 때문이다. 당시 7억8000만 원이던 아파트를 사기 위해 살던 집과 용인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돈은 총 6억 원. 그런데 주택경기 침체로 집값이 폭락하면서 용인 아파트 시세가 4억6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벌써 1년 전부터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 씨는 “지금 아파트를 처분하고 2억5000만 원의 전세보증금까지 되돌려주면 용인아파트뿐 아니라 평택 집까지 날아갈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 씨와 같은 깡통주택 보유가구가 최소 18만5000가구를 넘고, 부채액만 5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깡통주택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개연성이 커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깡통주택, 경제위기 때마다 등장

깡통주택은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해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평가된다. 깡통주택을 탄광의 산소 농도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위험 수준을 미리 알려주는 새인 카나리아에 빗대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 가능 한도) 등과 같은 규제 장치가 있어서 한국에서는 깡통주택으로 인한 경제위기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집값 하락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기 용인이나 파주 등지에서는 이미 집값 하락이 계속되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이 집값의 80%를 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대출 및 전세금 비율이 집값의 70%가 넘는 주택도 주인이 집을 매각했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이 거의 없어 사실상 깡통주택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깡통주택 가구는 36만8000가구, 이들의 부채는 102조9000억 원으로 확 불어난다.

○ 빚은 많고 자산은 적다

깡통주택이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주택 보유가구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같은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 등이 집값의 80%를 밑도는 ‘비깡통주택’ 거주가구보다 부채는 훨씬 많고, 집값은 크게 낮았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깡통주택에 사는 7만9000가구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3억7468만 원. 반면 비깡통주택 거주가구의 부채액은 9445만 원에 불과했다. 깡통주택 보유가구의 부채액이 3배가 많다.

집값은 깡통주택 보유가구가 평균 1억8800만 원으로 비깡통주택 거주가구(2억3400만 원)에 비해 4600만 원이 쌌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깡통주택 보유가구는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생활비, 사업자금 등을 다양한 금융회사에서 빌린 다중채무자일 가능성이 높아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절반 이상은 베이비부머

깡통주택 보유가구를 연령별로 보면 40, 5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대부분 겹친다.

KB금융에 따르면 깡통주택 거주가구의 57%가 40, 50대였다. 60대 이상도 30.4%나 됐다. 깡통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고 자신도 전세로 살고 있는 가구 가운데 40,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67.9%로 훨씬 높았다.

김진성 KB금융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40, 5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자녀 교육 및 결혼, 은퇴준비 등으로 기본 지출이 매우 많다”며 “특히 서울 외곽에 집을 마련하고 자녀교육이나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전세를 살다 자신의 집이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깡통주택 우려한 소송도 급증

이 같은 깡통주택은 경기 용인시, 성남시 분당과 판교, 고양시 일산, 파주시 등에 많다. 이 지역들은 최근 몇 년간 집값 하락세가 수도권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컸다.

문제는 이런 지역에 주택공급 폭탄이 예고돼 집값의 추가 하락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8월 말부터 올해 말까지 수도권에 분양될 물량은 모두 12만6700여 채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도권에서 분양된 물량이 12만1539채였던 점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공급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분양가보다 매매가가 낮아지면서 ‘깡통주택’이 될 것을 우려해 소송을 벌이려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집단대출 관련 분쟁 아파트는 94곳에 이른다. 아파트 분양자들이 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낸 아파트 사업장은 28곳(소송인원 4190명)이며 소송 금액만 해도 5000억 원이 걸려 있다.

[채널A 영상]11억 원까지 갔던 아파트, 7억에 내놓아도…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깡통주택#전세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