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치고 쓰마리에서 열린 ‘대지의 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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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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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폐교 헌옷더미… 모두가 자연의 일부다

’대지의 예술제 2012’의 주 전시장인 에츠고 츠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에 선보인 프랑스 작가 크리스찬 볼탕스키의 ’No Man’s Land’. 삶과 죽음, 기억에 관한 작업으로 일본 전역에서 수집한 16톤의 헌 옷가지를 산처럼 쌓아올린 뒤 심장박동 소리를 결합했다. 도카마츠=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대지의 예술제 2012’의 주 전시장인 에츠고 츠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에 선보인 프랑스 작가 크리스찬 볼탕스키의 ’No Man’s Land’. 삶과 죽음, 기억에 관한 작업으로 일본 전역에서 수집한 16톤의 헌 옷가지를 산처럼 쌓아올린 뒤 심장박동 소리를 결합했다. 도카마츠=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 쿵 쿵 쿵 쿵… 하늘로 울려 퍼지는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미술관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인 헌 옷가지들을 기중기가 집어 올리고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 무게가 16t에 이르는 옷들은 일본 전역에서 누군가의 삶과 체취가 오롯이 스며든 것을 모아 온 것이다.

일본 니가타 현 남단 도카마치 시에 자리한 에치고 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에 등장한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No Man's Land’라는 설치작품이다. 자연재해와 대학살의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2010년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발표한 작품을 지난해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과 연계해 새롭게 변주한 작업이다. 그는 “가장 잔혹한 일은 육체적 죽음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 존재했다는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삶과 죽음, 기억을 작업으로 형상화했다. 》
폐교를 이용한 그림책작가 다이지의 ‘그림책과 나무열매의 미술관.
폐교를 이용한 그림책작가 다이지의 ‘그림책과 나무열매의 미술관.
29일 이 미술관에서 ‘대지의 예술제-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2012’ 개막식이 열렸다. 에치고 쓰마리란 도카마치와 쓰난마치, 두 지방자치단체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도쿄의 23구를 합친 것보다 넓은 이곳에선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 국제예술축제가 펼쳐진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고민하는 지역 공동체를 예술을 매개로 재생하고, 주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획된 축제다. 12년의 세월 동안 지역, 세대, 장르를 초월한 교류와 협동의 결실로 42개국 300여 점의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올해는 한국의 이승택 씨 작품을 비롯해 150여 점이 폐교와 빈집, 자연을 무대로 전시됐다. 9월 17일까지. www.echigo-tsumari.jp

○ 온천욕 즐긴 뒤 미술관으로

이 행사는 예술가와 주민이 동등한 주역이며 일상 공간에 미술관을 끌어안은 점에서 다른 국제행사와 차별화된다. 예컨대 주전시장인 사토야마 현대미술관은 주민이용시설을 모아 놓았던 건물을 새로 단장해 개관한 곳으로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한데 볼탕스키 같은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 1층에는 온천장이 영업 중이고 목욕을 마친 사람들은 편한 차림으로 전시장을 드나든다.

이처럼 예술을 통한 지역 살리기 운동 덕분에 고향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다카하시 히로코 씨(27·BSN방송국 직원)는 “니가타는 예술과 거리가 먼 지역이었고 특히 도카마치는 노인들만 사는 한적한 마을이었지만 예술제를 통해 외부의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상호교류도 늘어나고 활력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대지의 예술제는 별도의 주제 없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다랑논과 마을, 숲 등 곳곳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 경사진 산에 농부와 소 조형물을 설치한 일리아 & 에밀리아 카바코프의 ‘계단식 논’, 역 앞 풀밭에 거대한 꽃을 형상화한 구사마 야요이의 ‘꽃피는 쓰마리’ 등. 유명 작품을 둘러보면서 지역의 풍토와 문화를 즐기는 코스가 100개에 이른다. 2009년에는 37만여 명이 방문해 지역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를 예술을 통해 발굴함으로써 지역 재생의 길을 제시한 새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 폐교 전체를 그림책으로

3년 전 ‘대지의 예술제’를 찾았을 때보다 올해는 안정감 있는 진행에 작품들의 완성도도 높았다. 특히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과 나무 열매의 미술관’, 호주 건축가 앤드루 번스가 설계한 작은 전시장 ‘오스트레일리아 하우스’, 이용객이 줄어드는 기차 노선을 도시와 지역의 소통에 활용한 ‘JR 이야마 아트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그림책 작가 다시마는 2005년 폐교되면서 강제 전학을 갔던 3명의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폐교 전체를 공간 그림책으로 꾸몄다. 그래서 학생들은 떠났어도 학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일상에 도움을 주고 장난감, 토속신앙의 대상이기도 한 볏짚과 대나무로 신작을 만들었다. 그는 “행정기관에서 도로를 만들고 집을 건설하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로 공동체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예술제를 통해 젊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노소의 화합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현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직접 관리 운영하는 대지의 예술제. 자연 인간 예술의 연결을 지향하면서 사람과 사람, 대지와 사람 사이의 끈끈한 다리를 놓아 가고 있다.
▼ ‘예술제’ 디렉터 기타가와 후라무 씨 “50일간의 행사, 경제효과 20억엔” ▼

“올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3년간 예산으로 6억 엔 정도 들였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본 적은 없다. 한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약 50일의 행사 기간에 숙박 식당 렌터카 등 지역에 미치는 경제효과가 20억 엔(약 300억 원)에 이른다.”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의 산파역이자 2000년 1회부터 올해까지 5회의 행사를 총괄 진행해온 디렉터 기타가와 후라무(北川 fram·65·사진) 씨는 자신 있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보다 그가 더욱 뿌듯하게 여기는 성과는 따로 있다. “지역에 약 200개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중 100여 곳에서 행사 참여를 희망한다. 비록 예술제에 참여하지 못해도 마을 사람들은 손님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주는 등 열심히 행사를 돕는다. 그만큼 외부 세계와 연결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니가타 현 출신인 기타가와 씨는 모든 작품을 단독으로 선정한다. “국제예술축제는 매번 행사 테마를 정한 뒤 여기에 걸맞은 작품을 심사위원회를 거쳐 뽑는다. 결과적으로 행사마다 비슷한 작가, 비슷한 작품이 뽑힌다. 내 기준은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효율, 표준, 속도를 추구하면서 평균적 인간을 만들어내지만 예술가들은 각기 개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테마로 구속하지 않는다.”

회를 거듭하면서 예술제 작품들이 점차 밝아지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5회 연속 참여한 볼탕스키의 작품도 뉴욕이나 파리에서 작업할 때보다 이곳의 작품이 밝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자연에 내포돼 있다’는 기본 전제와 관련해 지난 1년 동안 에치고 쓰마리에 몰려온 재해를 언급했다. 지난해 3월엔 이웃한 나가노 현의 지진으로 1∼3월엔 엄청난 눈, 7월엔 비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는 것. “자연재해는 불가피하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인류에게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이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시의 콘셉트다.”

도카마치=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술#대지의 예술제#일본#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기타가와 후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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