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데, 왜 장애인 자리 주차… 불법인데, 왜 보고도 단속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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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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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주차장 둘러보니

22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지하 3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고급 승용차(왼쪽). 오른쪽은 실제로 이동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동
조치를 했다고 통보해 온 문자메시지.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22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지하 3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고급 승용차(왼쪽). 오른쪽은 실제로 이동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동 조치를 했다고 통보해 온 문자메시지.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딩동.’ 22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지하 3층 주차장에 있던 기자에게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메시지 내용은 ‘저희 직원이 현장에 나가서 확인한 결과 이 차량은 이동 조치하였고 장애인주차구역에 세워놓은 다른 차를 단속하였습니다’였다. 오후 5시 다산콜센터를 통해 신고한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위반 건에 대한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의 ‘민원회신’ 문자였다.

그러나 20분 전에 현장에 도착했던 단속 요원은 해당 차량의 사진만 찍고 5분도 안 돼 그곳을 떠났다. 불법 주차된 하얀색 고급 승용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주차돼 있었다. 다른 차를 단속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해당 차량의 주인을 찾는 안내방송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 판치는 거짓 장애인자동차 운전자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한 차량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한 지방자치단체에 단속 전담 인력을 둘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대한 제대로 된 단속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22∼24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10건의 위반 신고를 했지만 제대로 처리된 것은 4건뿐이었다. 그중 1건은 단속은 나왔지만 거짓으로 문자 통보를 해온 경우였다. 3건은 “관내가 넓어 지금은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1건에 대해선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해당 차량이 이동 주차하여 단속하지 못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위반 신고를 한 2건의 경우 아예 관할 구청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2∼24일 서울 시내 병원, 백화점, 대형마트, 영화관, 공공기관 등에 설치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둘러본 결과 주차된 93대 중 44%에 이르는 41대가 불법주차 차량이었다. 이 중 20대는 장애인자동차표지 자체가 없는 일반 차량이었다. 나머지 21대는 표지는 부착했지만 발급일자와 차량 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차들이었다. 심지어 서울의 한 구청 장애인전용주차장에는 유효일자가 2008년까지인 표지를 부착한 차량도 버젓이 주차돼 있었다.

‘주차 가능’ 표지를 부착하고 있지만 글씨가 흐릿해져 표지에 적힌 차량번호를 식별할 수 없거나 실제 차량 번호와 다른 번호가 적혀 있는 차량, 표지 대신 지적장애 3급 복지카드를 올려놓은 차량 등도 주차돼 있었다. 이들 차량 모두 신고 대상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차 가능’ 표지를 부착하고 있더라도 보행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경우에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보행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모 씨(51)는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정작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주차할 데가 없어 몇 바퀴씩 돌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 상태로는 거짓 장애인자동차 운전자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누적 발급 건수 집계도 못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하지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몇 건의 장애인자동차표지가 발급됐는지 집계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담당자는 “해당 자료를 뽑으려면 따로 취합을 해야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200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의 장애인자동차표지 발급 건수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요구한 자료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배포된 상태로 복지부에서는 별도 제출 자료가 없다’며 종결 처리를 알려왔다.

각 지자체도 상황은 마찬가지. 경기 파주시는 “관련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 광진구는 “2007년부터 발급된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장애인자동차표지 발급과 관련된 서류의 보존 기간에 대해서도 지자체마다 “5년이다” “3년이다”라며 말이 엇갈렸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자동차표지 재발급 건수 및 반납 건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복지부와 전국 지자체가 사용하고 있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는 신규 발급과 재발급이 따로 구분돼 등록되지 않는다. 재발급 건수도 신규 발급으로 전산망에 등록되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재발급 건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발급 신청할 때 제출한 서류들을 일일이 확인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담당자는 “반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반납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귀띔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타임스퀘어#장애인전용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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