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다 탈난 ‘골목상권 보호’… 졸속 규제로 소비자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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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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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대형마트 -SSM 강제휴업 위법” 판결

“일요일 정상영업합니다”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한 직원이 ‘매주 일요일 정상 영업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일요일 정상영업합니다”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한 직원이 ‘매주 일요일 정상 영업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행정법원이 22일 대형마트·대기업슈퍼마켓(SSM)에 대한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의 영업규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소비자들은 또 한 차례 혼선을 겪게 됐다. 명분만 앞세운 ‘밀어붙이기 식 졸속 입법’으로 혼선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과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여론이 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취소 결정이 난 것을 계기로 대형마트 및 SSM 규제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조례가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줄 소송과 조례 개정이 불가피해서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한다.

○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익판단 기회 빼앗은 것은 위법”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두 구청의 조례가 근거 법률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어긋났으며 조례를 제정하며 지켜야 할 절차도 어겼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지방의회는 올해 3월 관내 대형마트·SSM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심야영업을 금지하고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은 의무적으로 휴무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법원은 우선 “해당 조례는 지자체장이 공익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한 채, 의무적으로 영업제한을 하도록 규정해 상위법인 유통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유통법이 지자체장에게 영업규제 조치의 시행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한 것은 규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익과 이로 인해 침해당하는 대형마트·SSM 업자의 영업의 자유를 충분히 비교하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지자체장에게 무조건 영업규제를 시행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든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영업규제를 위해서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처분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고 의견을 낼 기회를 줘야 하는데 두 지자체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 지자체가 규제 시행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규제 당사자인 대형유통업체들에 충분한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 영업규제 조례 개정 과정 ‘잡음’ 전망

법원의 이날 판결에도 불구하고 24일 전국 대형마트·SSM 점포의 70% 이상은 예정대로 문을 닫는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소송 대상인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의 영업규제에 대해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두 구청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면서도, 판결문을 검토한 뒤 법원이 지적한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견해다.

이 두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자체의 대형마트·SSM 영업규제 조례가 비슷한 내용과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음을 감안하면 이 같은 위법을 바로잡는 과정에서는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법성을 해소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려면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전통시장 상인, 지역 주민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업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등 지역주민들의 대형 유통업체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영업규제 조례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영업규제 조례는 지자체장에게 규제 시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 역시 향후 대형마트·SSM 규제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방의회가 영업규제를 밀어붙이더라도 지자체장이 지역주민 정서를 감안해 규제 시행을 거부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 “졸속 규제가 빚은 사고”

전문가들은 이번 법원의 판결이 대형마트·SSM 영업규제가 시장(市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졸속으로 이루어진 탓이라고 평가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원이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소비자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거주자가 많은 서울 광진구에서 영업규제 조례가 부결됐던 점을 거론하며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헌법소원 재판에서는 이번 법원 판결보다 더 국민의 전반적 편익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지자체는 조례 개정 과정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휴무일수 확대, 규제대상 점포 범위 확대 등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형유통업체 규제안도 실효성과 문제점을 짚어본 뒤 조례를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대형마트 강제휴무#위법#지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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