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노래 해석하다가 ‘번역 입문’… PC통신 록 모임서 활동하다가 ‘음악 입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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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 밴드 ‘원 트릭 포니스’ 리더 이원열 씨, 소설 ‘헝거 게임’ 번역

‘헝거 게임’을 번역한 이원열 씨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대가들의 작품도 번역하고 싶지만 신인인 내게는 의뢰가 오지 않는다”며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헝거 게임’을 번역한 이원열 씨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대가들의 작품도 번역하고 싶지만 신인인 내게는 의뢰가 오지 않는다”며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근 동명 영화가 개봉된 데 힘입어 다시 주목받으며 7만 부 이상 판매된 ‘헝거 게임’(북폴리오). 2009년 출간된 이 소설의 번역자 이원열 씨(32)는 이력이 독특하다. 대원외고와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에 굴지의 광고회사에 다니던 ‘엄친아’였지만 2008년 여름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소설을 번역하면서 인디 밴드 ‘원 트릭 포니스’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살벌한 취업난 속에 그 좋다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자유로우나 불안한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뭘까. 이 씨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사 후 2년 반 동안 낙도에 유배라도 온 것처럼 일만 하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열아홉 살부터 꾸준히 해오던 음악을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죠. 회사를 그만둔 뒤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지인이 ‘영어 번역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얼결에 ‘좋다’고 했고, 출판사로부터 두툼한 원서 한 권을 건네받았죠.”

이 씨는 “번역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돌이켜 보면 어릴 적부터 번역 훈련을 해왔던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록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중학생 때 PC통신 ‘하이텔’의 모던 록 모임에 가입해 대학생 형, 누나들과 음악 활동을 했다(이 모임에서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이 나왔다). 그는 이때부터 가사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궁금해서, 나중엔 내용이 너무 좋아서 번역해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줬던 것이다.

대학 입학 후엔 인디 밴드 ‘줄리아 하트’와 ‘라이너스의 담요’ 등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동시에 영미권 시와 소설에 빠져들었다. 특히 독일계 미국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시와 단편소설을 좋아했다.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어 원서를 찾아 읽고 번역해 자신의 블로그 등에 올렸다. 그에게 감동을 준 문장들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2008년 회사를 다니던 중에도 월간 ‘판타스틱’ 6월호에 부코스키의 단편 소설 ‘블루스와 날개 달린 외야수 J.C.’를 번역해 싣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 4개월간 유럽과 중동을 여행하면서 틈틈이 첫 원고인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을 번역했다. 이후 ‘헝거 게임’을 비롯해 SF, 미스터리, 범죄, 그래픽 노블(만화처럼 생생한 그림과 소설이 결합된 형태)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 번역 의뢰가 끊이지 않았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경제·경영서는 잘 번역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소설, 특히 따옴표 속에 들어가는 대화를 번역하는 게 흥미로워요. 한마디 대사에서도 툭 던지듯 말한 건지, 비꼬듯 혹은 쭈뼛쭈뼛 말한 건지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궁리하는 게 재밌어요.”

잠시 그만뒀던 음악도 다시 시작했다. 이 씨는 ‘원 트릭 포니스’(한 가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숙어)에서 작사 작곡 및 노래를 맡고 있다. 올해 안으로 1집 음반을 낼 예정이다. 종종 홍익대 앞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

“회사 다닐 때보다 돈은 못 벌지만 좋아하는 책 읽고 번역하면서 음악도 할 수 있으니 좋죠. 그래도 만족하는 건 아니에요. 번역료는 올랐으면 좋겠고, 공연할 때 사람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고, 음반 내면 팔리면 좋겠어요. 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죠. 하하.”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헝거게임#이원열#원트릭포니스#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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