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49>‘세 번째 꽃송이’ 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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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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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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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에서 물러나 선원마을로 돌아온 매산 정중기는 마침 닥친 천연두로 아우와 두 사촌아우를 잃는다. 그래서 천연두를 피해 1741년 56세 때 선원리에서 약 15리 떨어진 산속인 ‘매곡마을’에 들어왔다. 매산은 매곡리에 터를 잡은 연유를 ‘매곡우사(梅谷寓舍)’에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매곡마을은 낙동정맥 보현산에서 이어진 기룡산 자락 남쪽 줄기가 만들어 놓은 좁은 계곡 안에 들어앉아 있다. 매산은 마을의 입지를 “겹겹이 싸인 산과 작은 시내에 우묵 들어간 곳이 있어, 이것을 매단혈(梅丹穴)이라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매산 스스로는 매단혈이 풍수상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주역의 세계관으로 매곡리 일대를 관념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매산종택의 당호를 간소(艮巢)라고 지은 것도 삼매리의 계곡에 숨어들어 세속에 대한 욕망을 접겠다는 의미다. 1748년에는 오록서당(梧麓書堂)과 산수정(山水亭)을 짓는다. 산수정이라는 이름 역시 주역에서 따온 것으로, 산(山)과 수(水)는 간괘(艮卦)와 감괘(坎卦)를 의미한다. 간(艮)은 이미지가 산이고 그 속성은 그침(止)이며, 감(坎)은 이미지가 물이고 그 속성은 험(險·위험)이다. 이 둘이 합쳐지면 몽괘(蒙卦)가 된다. 어리석은 자가 바른길을 가게 되면 삶에 형통할 것이라는 풀이인데, 어리석다는 의미인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매곡리 계곡을 따라 산천정에서 조금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산 끝에 산수정이 자리한다. 전면 세 칸에 측면 한 칸에 산천정과 동일하게 전면 반 칸을 내어 전체를 쪽마루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툇간을 달아서 매우 복잡해 보인다. 기단을 높이 쌓아서 가파른 계곡 쪽에 기둥을 세워 쪽마루가 아니라 엄연한 누마루처럼 보인다.

누마루의 계곡 쪽으로 매곡정사란 편액을 걸어 놓고 우측 방을 지급재(智及齋)라 하고 좌측 방을 인수재(仁守齋)라 하였으며 주변의 자연에 대해 청금대(聽琴臺), 영귀대(詠歸臺), 설천(泄泉), 군자당(君子塘), 고현사(高賢社), 석문(石門) 등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인지 꼼꼼히 알 수가 없어 아쉽다. 풍수에만 매달려 있었더니 어느새 주역의 향기가 난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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