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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메디시티 대구]김정철 모발이식센터장“본인의 만족+타인의 눈치못챔, 모발이식의 핵심이죠”

입력 2012-03-27 03:00업데이트 2012-03-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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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장
모발 이식 및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경북대병원 김정철 교수. 그는 “모발 연구는 탈모뿐 아니라 기초의학과 의료산업 발전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잘라진 머리카락 모낭(털주머니)이 다시 살아나 털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어려운 과학적 질문은 모발이식을 하는 외과의사에게는 실질적 의미가 있다. 절단된 모낭도 털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김정철 교수의 논문(1994년)은 반가운 뉴스였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된 연구로 학회의 학술대상을 받아 자격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대머리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유전자 연구로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질 것이다.’ 국제모발재건외과학회(ISHRS)는 2000년 3월 학회 소식지에 ‘김정철 박사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썼다.

모발이식의 획기적 방법(이것이 김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모낭군 이식술이다)은 연구의 일부일 뿐 결국 유전자 연구를 통해 대머리를 완전정복할 세계 유일의 의사라는 기대감이다. 이 학회는 2001년 대구에서 열린 국제워크숍에서 김 교수의 연구 역량과 범위 등을 살펴본 소감을 그해 발간한 소식지에 다시 다뤘다.

이미 1994년에 학술대상을 받아 학회 회원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의학자가 됐지만 실제로 그의 연구실험실을 둘러보니 머리카락 연구가 끝없는 호기심 속에서 상상을 뛰어넘어 놀라웠다는 것이다. 머리카락 연구를 유전자 수준에서 진행하는 그의 연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첨단연구라고 평가했다. 기사의 결론은 “우리(학회)에게 김 교수라는 선물은 행운이다”였다.》
○ 모발이식 역사를 새로 쓰다

“제 다리에 털 심었죠” 김정철 교수가 1992년 자신의 머리카락 20여 가닥을 오른쪽 다리에 옮겨 심은 것으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이것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모낭군 이식술의 출발이다.
지금은 국내외에서 모발이식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고 많은 병의원에서 시술하고 있지만 김정철 교수(53·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장)는 18년 전인 1994년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발이식술을 인정받았다.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먼저 주목을 받은 셈이다. 경북대병원 안에 모발이식센터를 개설한 때도 1996년이다.

기초의학인 생화학과 면역학을 연구하던 김 교수가 모발연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은 일종의 ‘부작용’이다.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미녹시딜’이 부작용으로 털이 자라는 것을 활용해 바르는 발모제로 나온 것이나, 전립샘 치료제로 개발된 ‘프로페시아’가 부작용으로 모발이 자라는 데서 대머리 치료제로 발전한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연구비를 확보하면서 기초의학을 안정적으로 연구하려면 틈새에서 세계 1등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암 같은 분야는 미국이나 유럽을 따라가기 어렵고 국내에서는 서울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김 교수 특유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한쪽은 검고 한쪽은 흰 돼지털을 서로 옮겨 심어보기도 했다. 흰 털을 검은털이 있는 부위에 옮겨 심어 검게 되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실패했지만 이 실패는 모발이식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밑거름이 됐다.

1990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92년 5월 머리 뒷부분 모발 20가닥을 떼내 오른쪽 허벅지에 심었다. ‘왜 대머리는 머리 앞쪽(이마선∼정수리)에 생기고 뒷머리와 귀 옆 머리카락은 남아 있는지’ ‘왜 대머리라도 수염은 잘 자라는지’ 같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밭(땅)이 결정하느냐 나무(종자)가 결정하느냐 확인하는 것이 문제였다. 뒤쪽 머리카락을 대머리 부분이나 몸의 다른 부위에 옮겨 심었을 때 정상적으로 자란다면 결국 나무의 문제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럴 경우 귀 옆과 뒤쪽 머리카락은 앞쪽과는 ‘종류’가 다르다. 이 때문에 옮겨 심은 머리카락은 세월이 가도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대머리 부분의 가늘고 약해진 머리카락(대머리라고 하는 남성형 탈모는 머리카락이 빠져서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굵은 모발이 점점 가늘어져 솜털로 바뀌는 것이다)을 뒤쪽에 심으면 솜털처럼 바뀐다. 종자가 문제기 때문이다. 왜 같은 머리에 종류가 다른 머리카락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남성호르몬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으로 본다.

그는 “남성호르몬이 어떤 부위에는 털을 잘 자라게 하고 어떤 부위에서는 빠지게 만드는 묘한 역할을 ‘남성호르몬 패러독스(역설)’”라고 설명했다.

○ 모낭군 이식술을 개발하다


모발이식 실험을 위해 옮겨심은 머리카락은 꼭 20년째인 지금도 20cm가량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1993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모발재건외과학회에 구경 삼아 참석했다가 1년 동안 자란 ‘허벅지 머리카락’을 보여주자 즉석 발표 요청을 받았다.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자 모발이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 해 캐나다에서 열린 2회 학회에서 학술대상을 받는다. 김 교수는 “‘모낭군(毛囊群) 이식술’은 세계 최초이고 나아가 가장 진전된 모발이식 방법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1950년부터 이뤄진 모발이식은 한가닥씩 심는 단일모 이식술이거나 모심기하듯 심는 펀치식모술이 있었다. 일본에서 주로 한 단일모 심기는 눈썹이나 음모에 활용됐고 머리카락 이식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의 펀치식모술은 이식한 부위가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해지는 등 자연스럽지 못해 환자들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다. 모낭군 이식술은 한 개의 모낭에 한 가닥, 두 가닥, 세 가닥 등으로 제각각인 머리카락의 모낭을 그대로 옮겨심는 방식이다. 이 수술은 현재 가장 널리 보급된 ‘표준형’ 이식술로 평가 받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이식하든 결국 당사자가 만족스럽게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모발이식을 눈치 채지 못해야 ‘잘’ 심은 것입니다. ‘머리숱이 적을 뿐 대머리는 아니다’는 일상적 기준에 얼마나 도달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6000여 명에게 모발이식을 하면서 어제의 대머리를 오늘의 비(非)대머리로 바꿨다.

“모발이식을 잘한다고 해서 의학 발전으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모발 유전자까지 철저하게 연구해야 비로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모발 연구가 기초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유전자 연구로 지평을 넓히다

모발이식과 함께 시작한 모발유전자 연구로 그는 현재 6600여 개의 모발 유전자를 발굴해 세계에서 유일한 모발유전자은행을 구축했다. 1997년 당시 과학기술부는 이 유전자은행을 정부 공인 유전자은행으로 지정했다. 대머리 연구 때문이 아니라 모발을 통한 사람 유전자 분석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2007년 개발한 모발연구용 유전자칩을 이용해 남성형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자(DKK-1)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학회에 보고한 것도 이같은 기반에서 가능했다. 그는 현재 이 유전자를 억제하는 발모제를 개발해 동물실험에는 성공한 상태까지 나아갔다. 김 교수는 현재 이 발모제를 두피 속으로 침투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할 경우 대머리 부분에 그냥 발라 주면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돋아나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모발유전자 연구를 토대로 모근(毛根) 복제도 머지않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귀 옆과 뒤쪽 머리카락을 떼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수만 가닥으로 복제할 경우 훨씬 많이 심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유전자 차원의 기초연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의 모발연구가 이식 테크닉을 넘어 철저하게 기초의학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동안 모발 연구와 관련한 논문도 150편을 넘었다.

“대머리는 살고 죽는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홀히 여기는 분위기가 의학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머리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만약 대머리라는 이유로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잃고 이 때문에 생활에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같은 많은 장애를 겪는다면 이 또한 심각한 질환으로 봐야 합니다. 탈모와 대머리는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머리는 미용상의 문제일 뿐 병(病)은 아니라는 인식은 삶의 질을 구성하는 복잡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탈모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 30대의 탈모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중국 일본만 하더라도 당장 모발이식을 해야 좋을 인구가 50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 모발이식은 털을 통한 소통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피부과 성형외과 등 모발이식 전문가 200여 명이 모여 창립한 ‘대한모발이식학회’의 회장을 맡았다. 모발이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데도 공인 학회나 교육기관이 없어 모발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월계관을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모습은 얼핏 멋있게 보이지만 실은 그의 대머리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빠져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마룻바닥밖에 없다’거나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준다’는 등 대머리에 대한 온갖 체념이나 위로의 말도 머지않아 유통기간이 끝날지 모른다. 찰과상을 입으면 동네 약국에서 연고를 구입해 바르는 것처럼 대머리 연고도 그렇게 될 날이 올 수 있다. 그 믿기 어려운 현실을 창조할 주인공은 김 교수가 될 것이다.

16년 동안 수많은 대머리를 재건(再建)한 김 교수는 지금은 이식수술을 하는 동안 손은 거의 저절로 움직이고 마음은 수술용 침대에 누워 머리를 맡긴 환자와 교감(交感)한다. 그에게 모발이식은 이제 ‘털을 통한 삶의 소통’이다. 김 교수는 “머리카락으로 과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를 화두로 털과 대결하고 있다”며 “사람의 몸과 질환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최소한 모발 연구에 관한 한 완벽한 세계 1등을 일궈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김정철 교수는 ::

△1959년 경북 구미 출생
△경북대 의대 졸업(의학박사)
△모낭군 이식술 세계 최초 개발(1992년)
△국제모발재건외과학회(ISHRS) 학술대상(1994년)
△국제모발연구학회 학술대상(1995년)
△이탈리아 모발이식학회 학술상(2003년)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상(2005년)
△대한모발이식학회 회장(현재)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면역학교실 교수


:: 머리카락이란 ::


머리카락은 털주머니(모낭)에서 자란다. 모낭은 성인 남성의 경우 두피에 10만 개 정도 있다. 20∼30세는 1cm²에 500∼600개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400개 정도로 점차 줄어든다. 손톱 발톱처럼 딱딱한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하루에 0.3mm, 한 달에 1cm 가량 자란다. 빠질 때까지 활발하게 자라는 생장기, 성장을 멈추고 빠지는 휴지기, 생장기에서 휴지기로 바뀌는 퇴행기 등 3단계 주기를 가진다.

평균 3년(2∼6년) 정도가 생장기, 3주의 퇴행기를 거쳐 3개월가량 휴지기를 갖는다. 머리카락에 이 같은 주기가 없다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게 자라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겨드랑이털처럼 다른 부위의 모발은 생장기가 상대적으로 짧고 휴지기가 더 길기 때문에 머리카락처럼 빨리 자라지도 않고 길이도 짧다.

한국인의 머리카락 수는 5만∼7만이다. 이 가운데 10%가 정상적으로 빠지는 단계인 휴지기에 해당한다.

휴지기 3개월(100일)에 걸쳐 5만 개의 10%인 5000개가 빠진다고 계산하면 하루 50∼70개는 정상적인 탈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고 나서 또는 머리를 감을 때 빠진 머리카락이 100개 이상이면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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