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가 정권 걸림돌로… 꼬리 문 의혹에 불명예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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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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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방통위원장 전격 사퇴 왜

“사퇴 이유?… 상상력으로 해석하길” 27일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통위 청사 앞에서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최 위원장은 지난해 3월 3년 임기 위원장에 연임했지만 임기를 2년 2개월 남겨놓고 이날 물러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사퇴 이유?… 상상력으로 해석하길” 27일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통위 청사 앞에서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최 위원장은 지난해 3월 3년 임기 위원장에 연임했지만 임기를 2년 2개월 남겨놓고 이날 물러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는 비록 용퇴(勇退)라는 외형을 취했지만 앞으로 안게 될 부담을 우려한 여권의 선제적 조치라는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조언자였던 최 위원장의 위상에 비춰 볼 때 그의 중도 하차는 국정지지도가 30% 이하로 떨어진 이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권력 누수현상)을 가속화할 공산이 적지 않다.

○ 부담이 된 ‘대통령의 멘토’

여권의 고민은 최 위원장의 정책보좌역을 지낸 정용욱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있었다. 정 씨는 최 위원장을 아버지로 부르는 ‘양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이 EBS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돕고 2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직은 의혹 수준이지만 EBS 이사 선임에 최 위원장이 결정권을 가진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매관(賣官) 파문’으로 비화할 수 있다.

여권이 최 위원장을 적극 만류하지 못한 다른 요인은 26일 불거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보좌관을 상대로 한 돈봉투 전달 의혹이다. 가뜩이나 2008년 전당대회 때 돈봉투 살포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여권으로선 최 위원장이 현직에 계속 남아 의혹이 확산되는 상황에 난처해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재직 시절의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혐의 판결을 받으면서 야권의 최 위원장 사퇴 촉구도 더욱 강경해졌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무죄가 난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최 위원장의 사퇴는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최근 대기업 2, 3세의 제과 및 떡볶이 사업을 강하게 지적하는 등 퇴임하는 날까지 국정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은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여권 내에 팽배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를 위해 최 위원장은 물론이고 다른 원로그룹 혹은 창업공신들 가운데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몇몇 인사의 추가 용퇴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한나라당 황영철 대변인은 이날 “부하 직원의 금품비리 연루 의혹과 관련해 사임을 결정한 것은 매우 적절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반면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최 위원장은 처음부터 직책에 맞지 않았고 이미 사퇴시기를 놓쳤다”며 “부하 직원 비리에 대한 도의적 책임뿐 아니라 정책적 잘못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야권에서는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한다면 최 위원장 재직 시절의 각종 방송·통신정책에 대한 국정조사를 벼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 MB, 이틀 전 사의 수용

방통위에서는 이날 최 위원장의 결심이 알려지자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최 위원장이 읽은 ‘사퇴의 변’ 작성에 관여한 측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직원은 이날 오후가 돼서야 사퇴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은 회견에 앞서 상임위원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방통위의 기류와 달리 여권 핵심부에서는 최 위원장의 사퇴는 시간문제였다는 시각이 많다.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해 12월 총선 불출마 선언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함께 상의하며 거취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포항 출신인 두 사람은 1957년 서울대 신입생으로 만나면서 50여 년 인연을 시작했다.

최 위원장의 한 측근은 “지난해 3월 3년 임기의 방통위원장 연임이 결정될 때만 해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내는 게 대통령을 돕는 길’이라고 믿었지만 지난해 말을 고비로 물러날 생각을 굳혔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설 연휴 직후인 25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 대통령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최 위원장의 사의를 만류했지만 그의 뜻이 분명한 것을 확인한 뒤 사의를 받아들였다는 게 최금락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설명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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