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해자’ 온라인 게임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대구 중학생 자살 몬 학생 “캐릭터 레벨 올려라” 강요… 게임 중독 빠지면 이성 잃어


박세형(가명·14) 군은 초등학교 때 특목고 진학을 꿈꾸던 우등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의 잔소리도 늘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박 군은 부모가 강요하는 학원 대신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매도 들고 용돈도 주지 않으며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박 군의 게임 중독은 날로 심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가 게임에 빠져 있는 박 군에게 잔소리를 하며 컴퓨터를 끄려 하자 박 군은 엄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또 다른 가해자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평범한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에 빠지면서 이성을 잃고 일탈을 일삼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중학생 사건의 가해 학생들도 학교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온라인 게임에 빠지면서 A 군에게 강제로 게임을 시키며 폭력까지 휘둘러 결국 자살로 내몰았다.

대구 사건 가해학생이 A 군에게 강요했던 게임은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 ‘메이플스토리’다. 성윤숙 청소년정책연구원 상담위원은 “온라인 게임은 사용자가 직접 자기 캐릭터를 레벨업하고 아이템을 획득하기 때문에 게임 속 세계에 집착하게 된다”며 “상담사례 중에는 시험 기간에 자녀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레벨업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A 군이 가해 학생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에도 “집에 가서 적어도 2시간 반 동안 해라” “나보다 낮던 애가 벌써 (레벨이) 125”라며 압박하는 내용이 여러 건 있었다. ‘리니지’ ‘던전앤파이터’ 등도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으로 꼽힌다.

나이가 어릴수록 중독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부가 올해 3월 만 9∼49세 7600명(청소년 2457명, 성인 5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인터넷 중독률은 12.4%로 성인 중독률 5.18%의 2배 이상이었다. 고등학생 중독률은 10.0%, 중학생 중독률은 12.2%, 초등학생 중독률은 13.7%로 나이가 어릴수록 중독률도 높아졌다. 서보경 한국정보화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인터넷 중독의 80% 이상은 게임 중독”이라며 “특히 남학생은 대부분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게임의 폭력성보다 중독성이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배주미 한국청소년상담원 인터넷중독대응팀장은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게임에 빠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며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면 무엇이 잘못인지 무감각해져 범죄를 저지르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1월 시행된 ‘셧다운제(16세 미만 청소년 대상으로 밤 12시∼오전 6시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 중독이 의심될 경우 부모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