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브래드 피트의 ‘머니볼’이 야구영화라고?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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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5일 1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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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니볼’에서 관습에 맞서는 남자 빌리 빈(브래드 피트, 사진 왼쪽).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제공
영화 ‘머니볼’에서 관습에 맞서는 남자 빌리 빈(브래드 피트, 사진 왼쪽).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제공

소재는 야구, 주인공은 프로야구팀 단장. 그리고 그의 '위대한 승리'를 그린 영화다. 하지만 '머니볼'은 엄밀히 말하면 야구 영화가 아니다.

"아빠, 실직할 걱정은 없는 거죠?"

주인공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몰마켓(small market)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다. 과거 스탠포드 대학의 장학금을 포기하고 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가 별다른 성과 없이 은퇴한 이혼남이다. 어쩌면 인생 패배자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가 데려온 스캇 해티버그는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뒀던 선수이고,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한때 리그를 지배했지만 이제는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선수다. 이들을 활용한 빌리 빈의 개혁은 홈팬들에게도 조롱당하는 끝없는 연패로 이어지고, 빌리 빈의 딸은 천진난만한 눈으로 아빠에게 저렇게 묻는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재정 여건상 빌리 빈은 외부 스타플레어는 데려올 수 없다. 대신 저평가된 선수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철저한 수학적 통계에 근거한 선수 스카우트다.

▶휴먼스토리에 포인트를 두지 않는 '머니볼'

"넌 가게 점원이나 될 거다. 딸한테도 면목 없는 아빠가 될 걸."

영화 초반부 구단의 터줏대감인 스카우트 팀장은 빌리 빈에게 이렇게 냉소를 보낸다. 그들은 꾸준한 관찰만이 답이며, 보이지 않는 통계로는 야구를 알 수 없다고 반박한다.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라는 사회의 부적응자로 취급된다. 그의 개혁 파트너인 피터 브랜드(조나 힐)는 심지어 야구와 무관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통계 전문가다.

하지만 오해마시라. '머니볼'은 '극뽁'에 포인트를 두고 있지 않다.

이 영화는 감동보다는 이 같은 계층적 현실을 차근차근 늘어놓는 담담함을 가졌기에 독특하다. '카포티'의 베넷 밀러 감독과 '소셜 네트워크'의 애런 소킨 작가, 두 사람은 각각 전작에서 실제 이야기에 적절한 허구를 반죽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재능은 역시 실화에 기반을 둔 '머니볼'에서도 한껏 발휘됐다.

이들에 의해 재창조된 빌리 빈은 '제국'과 맞서 싸우는 영웅도,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도 아니다. 신념으로 가득한 개척자일 뿐이다.

통계적 수치를 강조하는 '머니볼 이론'은 분명 승리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여기에는 '가능한 적은 돈으로'라는 제한이 따라붙는다. 머니볼의 핵심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에 있으며, '반드시 이기자'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다.

영화의 원작 '머니볼'은 애당초 야구서적이 아니라 경영서적으로 분류되며,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개혁이 가져다준 성과에 대한 책이다. 소설이 아니라 기록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극적 재미를 살려가는 줄타기에 능하다는 데서 감독과 작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스캇 해티버그과 피터 브랜드를 부각시킴으로써 빌리 빈의 원맨쇼를 희석시킴과 동시에 자칫 부족할 수 있었던 극적 재미를 어느 정도 해결한다.

머니볼 이론에 대해서도 '번트 대지마, 도루 필요 없어(No more bunt, No more steal)' 같은 발언이나 출루율을 중시하는 태도 등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이상의 설명은 자제한다.

'머니볼'에는 미친듯한 훈련,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교훈은 없다.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친 승리에 감격하는 영화도 아니다. '사회에서 외면당한 이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상대를 씹어 먹는' 세상 극복기도 아니다.

빌리 빈은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격려하지만, 자신의 뜻에 따라주지 못하는 선수는 가차 없이 잘라낸다.

빌리 빈은 학생 전원을 설득해 개혁에 동참시켰던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 아니라, 문제 있는 학생을 모두 퇴학시키고 뜻에 공감하는 교사들과 학교를 뜯어고치는 '고독한 스승'에 가깝다. 그리고 한 편의 장대한 '심포니'를 써내려간다.

영화 ‘머니볼’ 포스터.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제공
영화 ‘머니볼’ 포스터.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제공

▶'신념가' 브래드 피트, '위대한 패배자' 적역

뒤집어 말하면 '머니볼'은 빌리 빈이라는 한 명의 영웅에 지나치게 기대는 면이 없지 않다. 오클랜드의 선전은 '팀 오클랜드'가 아니라 전적으로 빌리 빈 식 통계야구의 성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크레더블'하다.

게다가 빌리 빈은 팀의 막내 또는 정신적 지주가 아니라 팀 내에서 절대적 권력자이자 보기에 따라 '외부인'인 단장인 만큼, 이 같은 철권통치는 다소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환하게 미소 짓고,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배우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이런 반감을 누그러뜨린다.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외치는 브래드 피트의 환호는 이 같은 반감을 사그라뜨린다. "나는 야구를 보지 않아"라면서 경기 중 웨이트 트레이닝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은 여성 팬들에겐 일종의 덤으로 다가올 것이다.

딸은 시즌 초 결과가 좋지 않아 실의에 빠진 아빠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이 과정에서 노래 가사를 "길 잃은 소녀가 헤맨다"까지만 보여주는 연출이 돋보인다. 딸은 이렇게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다독인다.

그리고 기적의 20연승이 시작된다. 고조된 감정이 절정에 달하고, 잠시나마 다소 작위적일 만큼 '각본 없는 드라마'에 충실한 '20번째 경기', 그 중심에도 "차 돌려요 아빠!"라는 딸의 새된 외침이 있다.

그리고 라스트신에는 다시 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이때 가사의 전체가 공개된다. 월드 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빌리 빈이 딸이 녹음해준 CD를 듣기 때문. 마지막 부분의 가사는 '당신은 패배자야(you loser)'. 하지만 앞선 스카우트 팀장의 말과 달리 이 말은 냉소적이지 않고 따뜻하다.

빌리 빈은 '부자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 제안을 거절하고 오클랜드에 남았고, '머니볼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보스턴은 2004년 마침내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이기에 감독은 빌리 빈을 승리자로 만들어줄 수 없었지만, 이 같은 연출을 통해 그를 '위대한 패배자'로 감싸 안았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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