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취재 일지]<4>2011년 9월 4일 ~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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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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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가파르밧를 날다!
25일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밧에서 X-히말라야 2400km원정 비행대원들이 루팔벽쪽 위를 날고 있다.Killer Mountain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8125m)은 8000m 급 14좌중에서 베이스캠프(3600m)와 고도차가 4500m나 돼 가장 가장 오르기 힘든 곳 중의 하나다. 루팔벽 양 옆으로 산들이 호위하 듯 뻗어있고 그 사이로 초지가 형성돼 산악인들 사이에선 가장 아름다운 베이스캠프라고 평가받는다. <낭가파르밧=이훈구기자ufo@donga.com>
낭가파르밧를 날다! 25일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밧에서 X-히말라야 2400km원정 비행대원들이 루팔벽쪽 위를 날고 있다.Killer Mountain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8125m)은 8000m 급 14좌중에서 베이스캠프(3600m)와 고도차가 4500m나 돼 가장 가장 오르기 힘든 곳 중의 하나다. 루팔벽 양 옆으로 산들이 호위하 듯 뻗어있고 그 사이로 초지가 형성돼 산악인들 사이에선 가장 아름다운 베이스캠프라고 평가받는다. <낭가파르밧=이훈구기자ufo@donga.com>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선 대원들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본보 이훈구기자가 4번째 현지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훈구기자의 취재일지를 게재합니다. 산악지대에 있어 통신시설이 없는 만큼 이동하는 현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틈틈이 며칠간의 일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24일째 : 9월 4일(일)


09:00 아름다운 훈자마을을 뒤로 한 채 스카르두(Skardu)로 향했다. 3대의 지프와 1대의 주방물품 등이 실린 화물트럭이 줄을 잇는다. 커라코람하이웨이(KKH)를 타고 길기트까지 4시간, 다시 스카르두까지 8시간,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스카르두에 도착. 거친 돌흙길 때문에 몇 십번을 차 옆 유리창에 부딪혔다. 흔들거림이 너무 심해 머리가 몇 달 뒤 정상이 될지 걱정이다.

지금껏 수 백 킬로미터를 달렸으나, 교통사고 현장을 단 한 번도 못 봤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시속이 20km에서 30km 엉금엉금 거북이운행이니 사고 날 리가 없다. 다만 중간 중간 고장난 차들은 수십건을 목격했다. 몇 십년 된 일제 중고차들이 대부분이다.

파키스탄 북부지역의 카라코람산군은 헬스장에서 자랑하듯 약간 으시대는 근육질 남성같다. 거칠다. 우람하다. 장대하다. 거대한 암석덩어리와 자갈 흙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태고의 모습 그대로 널려있다. 떨어지면 그냥 죽을 것 같은 수 백 미터 낭떠러지 위에 좁다란 비포장도로가 강 옆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설악산, 금강산은 차라리 ‘금수강산’ 글자 그대로 비단결같이 고운 산이란 걸 여기 와서 절감한다. 어느 대원은 이 곳의 동네 뒷산이라고 말한다.

길기트 다리가 무너지면서 우회길로 가느라 더 길어진 여정. 천길 낭떠러지 밑 강물은 온통 흙탕물로 끊임없이 요동치며 흘러간다. 사람의 눈이란 게 참 단순하다. 폭군같은 바위산도, 거친 강물도 한참을 달리다 보니, 공포감도 줄어들고 어느새 친구같다. 끝도 안 보이는 낭떠러지 길의 장대함을 더 이상 카메라에 담을 필요를 못느낄 순간, 화려하게 장식한 파키스탄 화물차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파키스탄 화물차는 온갖 형형색색 장식물이 온통 차를 뒤덮고 조명 또한 화려하다. 멋진 트럭 경연대회를 열면 단연 이 곳 화물차가 단연 1등일 거다. 처음 봤을 때, 어릴 적 시골마을 상여차를 연상케 했다. 낭떠러지 위 좁은 자갈길에서 두 차들의 교행 순간! 조금만 벗어나면 차는 그냥 추락이다. 거치디 거친 산세와 어울리지 않지만, 그나마 무료한 여행길이 심심하지 않다.

◆25일째 : 9월 5일(월)


07:00 곤도고로라 패스를 목적지로 이동하다. 곤도고로라는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롬 등 8000m급 산들이 몰려있는 곳을 조망하는 데 최적의 고개정상이다. 겨울산행 준비로 완전무장한 채 출발.

2000 후세(Hushe)라는 마을에 도착.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포터들이 몰려든다. 우리는 8명인데, 포터들은 30명이 족히 넘는다. 남루한 옷차림에 브랜드를 알 수 없는 운동화도 너덜너덜한 포터도 있었다. 거친 피부에 야윈 몸매, 야간은 두려웠다. 최신 최고 재질의 등산장비로 완전무장한 대원들과 대비가 뚜렷하다. 그래도 체력은 나보다 월등한 그들이다.

◆26일째 : 9월 6일(화)

07:00 포터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다 저마다 약속한 무게(20kg)의 가방을 나눠 분배하느라 부산스럽다. 고소적응도 늦고, 체력이 다른 대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기자는 개인포터를 따로 배정받았다. 한 살배기 아들을 둔 자킬(23)씨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 학교를 다시 다니기 위해 포터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15:00 세이초캠프장 도착. 포터들은 곤도고로라로 가는 중간위치인 달상(Dalsang)캠프까지 가기로 약속한 것을 번복했다. 이유는 달상에선 나무연료가 없어, 밥을 못해먹는다는 것. 하는 수 없이, 박정헌 원정대장은 포터들의 스트라이크를 받아들여, 이 곳서 야영을 결정했다. 옆 초지에서 양 2마리를 200$에 사, 저녁때 포터들을 대접했다.


21:00 텐트안에서 사진작업하는데 뒤가 웅성웅성거린다. 포터들이 비행사진을 내 어깨너머로 구경한다. 벌써 4000m를 넘어서 몸 상태가 그들의 탄성에 취할 상황은 아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27일째 : 9월 7일(수)

07:00 다시 포터들의 부산한 소리, 잠이 깰 수 밖에 없다.

아침을 맹맹한 미역국으로 간단히 하고, 산행에 나섰다. 산행이 아니라, 가파른 자갈밭길과 얼음빙하 위를 하염없이 걷는다. 걷고 또 걷다. 안전로프도 없는 수직절벽 사이로 난 작은 길, 몇 센티만 벗어나도 그냥 세상과 이별이다. 처음으로 어쩌다가 내가 이 곳까지 왔나하는 후회와 공포감이 엄습하다. 이건 탐험도 원정도 아닌 ‘모험’이다.

고소증세와 탈진이 뒤섞여 빙하지역 위 너덜길에선 초죽음이 되었다. 옆의 개인포터 자킬이 내 모든 카메라 장비를 들어줬지만,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다.

오만가지 기억들이 머릿속을 왔다갔다 스친다. 가족, 친구들......내가 살아 온 많은 기억들.........

19:00 고도고로라 바로 아래 마지막 캠핑지인 큐스팡(Khuspang)에 모든 대원들과 포터들은 이미 도착했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어두컴컴할 무렵에야 마지막으로 기진맥진 도착한 기자에게 대원들은 박수를 보낸다. 기자는 언제나 꼴찌다.

21:00 모두들 극도의 피로감. 다들 표정이 무겁고 말이 없다 몇 시간 뒤 깜박잠 자고 새벽 두 시 곤도고로라를 넘어야 한다. 몇 몇 전문포터들(레스큐어라고 불렀다)은 이미 출발해 산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로프를 설치하러 미리 떠났다.

22:00 취침.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천둥소리가 들린다. 눈사태소리가 천둥번개소리와 흡사하다.

◆28일째 : 9월 8일(목)

02:00 짜파티와 계란으로 간단 새벽 식사. 대원들은 모두 말이 없이 잠잠하다.

다시 포터들이 웅성댄다. 무게를 재다가 20kg의 짐이 추운 계절이라 무거워 15kg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장갑, 양말 등 월동장비도 없다는 것. 로프시설도 부족하다는 것 등이다.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데 개인당 4000루피 더 줄 것도 요구했다.

03:30 우여곡절 속 곤도고로라를 향해 출발.

포터들이 갑자기 함성을 지른다. 서로가 결의를 한데 모으는 기합소리다. 80년대 대학가 시위현장의 전투경찰들의 기합소리가 떠올랐다.
수 십명 포터들의 어둠 속 랜턴 불빛이 줄을 잇는다. 불빛 너머 만년설이 거대한 방벽처럼 희미하게 비친다.

09:30 곤도고로라에서 박정헌대장, 홍필표, 함영민 대원은 거대한 카라코람 산맥의 정상에서 하늘을 날았다.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롬 1.2 가 눈 앞에서 펼쳐진다.

이 곳을 오기 위해, 홍필표 팀장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에서 매일같이 운동을 했다. 담배도 끊었다. 진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소문난 골초였다. 박정헌대장, 홍필표 ,함영민 대원은 올해 4월, 네팔 히말라야에서 한 달간 전지훈련도 했다. 바로 이 곳에서 날기 위해............

◆28~34일째 : 9월 9일(금)~9월14일(수)


곤도고로라 비행을 마친 비행팀은 알리캠프로 곧장 내려갔다. 이후 콩고르디아와 발토로빙하를 걷고 걸었다. 파이유(Paiju),아스콜리(Askoli)까지 오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빙하퇴적지(Moraine?)에 거친 너덜길은 대원들의 발걸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자갈길 위를 걸을 때 중심을 잃기 쉬우면서, 하중도 더 실리기 때문. 한결같이 발바닥이 부르텄고, 홍성준 촬영감독은 양말에 핏물까지 배었다. 홍필표,함영민두 대원은 처음 보는 태고의 빙하길이 그나마 위로였다고 말했다.

◆35~39일째 : 9월 15일(목)~9월19일(월)


비행팀은 낭가파르밧 일정이 촉박해 아스콜리에서 방향을 바꿨다. 처음엔 히스파라빙하를 건너 훈자에서 비행을 하면서 낭가파르밧 파키스탄 마무리 비행을 생각했었다. 대원들은 야생동식물의 천국인 데오사이고원을 거쳐 죽음의 산(Killer Mountain) 낭가파르밧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9월19일 저녁 무렵 낭가파르밧 바로 산 아래 타라싱마을에 도착, 루팔산장에 모든 장비를 내려놓았다. 낭가파르팟은 짙은 구름에 가려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다.

2000 저녁때 낭가파르밧 이후의 일정과 인도,네팔 등에서 비행계획을 놓고 토론을 했다.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초조,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진지한 토론은 의기투합으로 이어지고, 사적인 비밀이야기도 가끔씩 튀어나온다. 마침내 다시 파이팅을 외친다. 깊은 산속 마을에서 몇 몇 대원들은 돌아가면서 고음(?)의 노래도 거침없이 불렀다. 이렇게 낭가파르밧 아래에서 첫 날은 지나 갔다.

◆40일째 : 9월 20일(화)

타라싱마을 앞산 정상에서 낭가파르밧쪽을 향해 정찰비행.

오후 2시경 보다 낭가파르팟 루팔벽을 바로 볼 수 있다는 헤르리히코퍼 베이스캠프로 모든 장비와 함께 이동을 했다.

카라코람산맥 등반 때와 달리 나귀(Donkey)들이 포터역할을 대신한다. 나귀주인은 대신 뒤에서 긴 막대기 하나 들고 길잡이 역할을 한다. 나귀 한 마리가 포터 3인분, 얼추 60~70kg을 감당하는 듯 하다. 재밌는 건 중간에 나귀가 힘들면 그냥 주저앉아 옆으로 드러눕는다. 나귀도 생명인지라, 온전히 짐을 메고 걷는 건 아니다. 작은 빙하 고개를 두 개 넘어서 고개마루에 서니, 낙원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루팔마을이다. 양쪽 높은 산 사이 드넓은 밀밭과 감자밭 사이로 마을들이 포진해있고, 곳곳엔 수많은 소나무와 향나무 군락이 산아래쪽에 촘촘히 자리잡았다.

산머리쪽 나무들은 이미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 되었다.

서울서 출발할 때(8월12일)가 한여름이었는데, 계절이 이리 쉽게 변하다니........이 곳 역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주로 밀을 베거나, 감자 캐는 모습이다. 신기한 건 밭에서 일하는 이는 거의가 여인네들 뿐이다. “왜 남자들이 많이 안보이냐?”는 질문에 가이드 슐레만씨는 “남자들은 대개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간다. 아니면 높은 산으로 올라가 트레커들을 위한 포터일을 하거나,양과 소,말 등을 돌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파키스탄 어디를 가든 남자들은 밖에 나와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곳 어린이들은 고달프다.3살,5살짜리 아이들도 집안일을 한다. 양치기 일은 기본이고, 겨우내 땔감이나,가축 먹이등을 나르는 게 일상이다. 산골 깊숙한 곳에서는 교육을 못받는 아이들도 많다. 후세에서 만난 한 포터는 아들만 학교 보내고, 딸들은 교육의 혜택을 못받는다고 했다. 돈 때문이다.

어느 마을을 지나칠 때,한 NGO에서 벽에 써놓은 문귀가 떠올랐다. <어린이들을 놀게 합시다.> Let the children play! <어린이들은 놀 권리가 있습니다.> Children have right to play라는 문귀였던 것 같다.

이 멋진 마을을 지나면서 카메라에 담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과 포터들은 한참을 앞서갔다. 오늘도 꼴찌다. 언제나 꼴찌였다. 어둑해질 무렵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앞쪽에 루팔벽이 거인처럼 버티고 있다. 반 이상이 짙은 구름에 가려져 그 모양새를 짐작할 수 없다.

2000 저녁 후 밖을 나오니 별들이 눈앞에 쏟아질 듯 장관이다. 루팔벽 건너 쪽 산들을 배경으로 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41일째 : 9월 21일(수)

텐트 안으로 강렬한 아침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늦잠자고 싶어도 눈이 부셔 오래 버틸 수 없다. 텐트입구를 나서자 마자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쌀쌀하지만 청량한 아침공기를 마시는 순간, 눈앞에 낭가파르밧의 수문장 루팔벽이 하늘꼭대기까지 펼쳐진다. 엊저녁 구름에 가려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던 낭가파르밧의 위용이 보는 이를 주눅들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도 그런 것이 ,낭가파르밧(8125m)은 8000m 급 14좌중에서 베이스캠프(3600m)와 고도차가 4500m나 돼 가장 오르기 힘든 곳 중의 하나다. 루팔벽 양 옆으로 산들이 호위하 듯 뻗어있고 그 사이로 초지가 형성돼 산악인들 사이에선 가장 아름다운 베이스캠프라고 평가받는다. 베이스캠프와 정상사이의 어마어마한 고도차이는 등정을 원하는 클라이머에겐 엄청난 난관이다. 다시 말하면 베이스캠프 바로 코앞에서 4500m나 높은 산이 거대한 기둥처럼 하늘로 뻗어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심리적 입체감이 표현하기 어렵다는 게 답답할 정도다.

낭가파르밧의 낭가(Nanga)는 힌두어로 ‘벌거벗은(Naked)',파르밧은 ’산(Mountain)'을 뜻한다고 한다. 나무가 없이 바위만 있어 벌거벗었다는 것인지 알 순 없다.

이런 거대한 장관이 연출되는 이면엔 지구 밑바닥의 지각활동이 숨어있다. 파키스탄 북부지역은 인도-파키스탄판(plate)과 아시아판이 막바로 충돌해 가장 거대한 산군들이 밀집하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땅 속 대륙판의 활동으로 해마다 낭가파르밧은 7mm씩 높아진다고 한다.

파키스탄에 8000m급 산들(K2,브로드피크 등)이 많이 있지만, 낭가파르밧이 명실상부하게 히말라야 산맥과 직접 맞닿는 유일한 8000m급 산이다.(물론 카라코람산맥도 히말라야산맥의 연장으로 보는 게 다수의견이다) 여기부터 인도,네팔,부탄쪽으로 히말라야산군이 동쪽으로 이어져 뻗어간다.

우리 캠프를 바로 앞에서 막고 있는 루팔벽은 낭가파르밧 남쪽에 위치한 4500m 수직벽이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남서벽,안나푸르나 남벽과 더불어 가장 오르기 힘든 난벽으로 꼽힌다. 북쪽으로는 디아미르(Diamir)벽이 있는데, 대개 산악인들은 이 곳을 통해 등정이 이뤄진다. 박정헌 원정대장도 이미 2005년 낭가바르밧을 등정한 바 잇어,더 의미가 깊다고 말한다. 이 곳 지형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낭가파르밧의 별명은 ‘Killer Mountain' 즉, ’죽음의 산‘이다. 1895년 7월 영국 머메리(Mummery)가 가장 먼저 등반을 시도했지만, 가이드와 함께 산속에서 사라진다. 독일인들에겐 더더욱 공포스런 대상이다. 1934년 빌리 메르클이 이끄는 등반대원 10명 전원이 사망했고, 뒤이어 1937년 독일 정예멤버로 이뤄진 16명조차 눈사태로 전원 낭가파르밧에 생명을 빼앗겼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8000m급 14좌 등정을 한 산악계의 거인,라인홀트 메스너와 낭가파르밧과의 악연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등반파트너이자 동생 귄터 메스너와 함께 루팔벽을 통해 등정을 성공한다.하지만, 하산길에 동생이 사고로 죽는다. 메스너는 동생에 대한 애정때문이었는지, 자책때문이었는지,1978년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정한 이후, 곧바로 낭가바르밧으로 다시 와 단독등반을 성공시킨다. 산악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경이적인 기록을 연거푸 세웠다. 낭가파르밧은 이처럼 사연이 많다.

이 곳은 원정대원들 그리고 기자와 무관한 곳은 아니다. 바로 2년 전 14좌 완등을 시도하던 산악인 고미영씨도 이 곳에 영혼을 맡겼다. 고미영씨는 본사가 연말연시 즈음 역동적인 이미지가 지면에 필요할 때마다, 다른 일 다 제치고 후배산악인들을 조직해 흔쾌히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기자는 그때마다 연락하는 담당이었는데, 고미영씨는 나와 같은 양띠 동갑내기(1967년)라며 수많은 산쪽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단 한번도 본지에서 원하는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는 만나는 누구든 상대가 유쾌할 정도로 편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였다. 박정헌 원정대장도, 정하영 촬영감독도 김형운 PD도 모두 유쾌하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낭가파르밧에 도착한 이후 모두들 애써 고인이 된 이의 이야길 안했지만, 다른 곳에서와 달리, 모두 가슴 한 켠에 저 산에서 사라진 영웅을 되새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세상 가까운 이들과 이별하다니, 참 야속하다.

◆42일째 : 9월 22일(목)


02:00 새벽 만년설을 품고 있는 루팔벽을 배경으로 무수한 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겨울같은 날씨지만, 이런 정도 고생은 참을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느새 초승달이 북쪽 하늘에 떠올랐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면서 낭가파르밧 정상부분부터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붉은 기운이 서서히 짙어지면서, 금새 눈부신 햇빛이 낭가파르밧의 어둠을 벗긴다.

낭가파르밧에서의 3차 플라잉.

◆43일째 : 9월 23일(금)

06:30 박정헌대장, 홍필표, 함영민대원 산으로!

4차 플라잉.

낭가파르밧에서의 미션비행이 연일 순조로왔다. 대원들 모두 흡족해한다.

박정헌대장은 “카라코람산맥쪽에서는 궃은 날씨로 장거리비행을 많이 못했다. 낭가파르밧에서의 비행을 시작으로 대원들과 함께 본격적인 X-히말라야원정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방문할 인도에서는 더욱 크로스 컨트리스타일에 맞게 장거리비행에 도전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14:00 베이스캠프에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루팔마을 거쳐,타라싱마을로 하산

◆44일째 : 9월 24일(토)


07:00 5차 낭가파르밧에서의 마지막 편대비행 플라잉

09:30 타라싱마을에 난리가 났다.

하늘에서 잠자리같은 패러글라이딩이 떠오르자, 학교에서 수업중인 남녀학생들이 모두 학교 밖으로 뛰쳐나왔다. 게다가 밭에서,밀과 감자를 수확 중이던 마을사람들도 몰려들었다. 포터였는지,가이드였는지,“X-히말라야 파이팅”을 먼저 외치자 모두 연호한다. 일부 주민은 외계인 쳐다보듯 경이로운 표정을 짓는다.

지구 가장 높은 산골짜기 아래 산동네가 잔치집 분위기에 한동안 휩싸였다.

14:00 낭가파르밧과 이젠 안녕을 고할 시간이다.

훈자로 바로 가려던 일정을 급변경했다.

이 곳서 두 시간 거리 떨어진 라마호수(Rama Lake)에서 폴로축제가 열리고 있는데,내일이 마침 결승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며칠간 낭가파르밧 심산유곡에서 보낸 대원들은 폴로경기장에 들른다는데 한사람도 이견이 없었다. 기자도 치트랄과 길기트 중간지점인 산두르패스 폴로경기장을 보았을 때, 폴로경기가 궁금해 꼭 취재하고 싶었던 터라 흔쾌히 동의했다. 대원들은 한 시간 떨어진 아스토르(Astore 해발 2345m)를 거쳐 마을 중간에서 다시 좌회전해 한 시간을 달려 라마호수 옆 폴로경기장(해발3482m)에 도착했다.

헉! 또 다른 낙원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삼나무들이 다른 카라코람 지역과 달리 빽빽하다. 최소 1백년은 훨씬 넘었을 법하다. 이 곳은 파키스탄에서도 손꼽히는 캠핑장이자 국민관광지다.

20:00 지프 운전기사 아크람씨가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전야제가 폴로경기장 옆 잔디밭에서 열린다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귀엣말로 예쁜 VIP 게스트가 참여한다고 살짝 말했다. 이 말은 대원들 사이에 예쁜 여가수와 댄서들이 무대로 나와 춤판이 벌어진다는 걸로 와전돼 식사하자마자 모두들 몰려갔다.

어둠 속 발전기를 돌려 밝힌 산중 축제장!

어찌된 일일까? 소문과 달리 온통 남성들만 모여 있다. 사정을 모르는 대원들은 의아해한다. 이슬람권에서 여성들의 야간외출은 힘들거라고 짐작했지만, 직접 보니 의외다. 잠시 후 요란한 경찰차들의 호위속에 주지사와 한 여성이 신형 지프차에서 내린다. 문제의 여가수는 바로 그녀였다. VIP 게스트라는 그녀는 길기트-발티스탄주 관광장관(Tourism Minister)인 사디야 다니스(Sadya Danis.35)씨였다. 보기 드문 우아한 분위기에 가끔씩 짓는 미소가 야릇했다.

그녀는 정치인이었던 남편이 살해당한 후 정치일선에 등장해 이 곳 지역민의 스타였다. 가이드 메붑씨도,운전기사 아크람씨도 모두 그녀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본다.척박한 파키스탄 북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여성정치인!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결국 살해된 비운의 여성 정치인 베나지르 부토여사와 이미지와 인생역정이 흡사하다. 정당도 파키스탄국민당(PPP Pakistan People's Party)으로 같다.
이 날 밤 전야제는 여가수도 무희들도 없었다. 수 백명의 지역남성들 속에 단 한명의 VIP 여성이 있었을 뿐..........

라마호수 폴로축제장
낭가파르트 아래 마을 타르싱서 두시간 떨어진 라마호수 옆 폴로경기장에서 축제가 열렸다. 이례적으로 많은 이슬람여성들이 참석했다.6명이 말을 타고 나무스틱으로 골에 넣으면 득점.<낭가파르밧=이훈구기자ufo@donga.com>
라마호수 폴로축제장 낭가파르트 아래 마을 타르싱서 두시간 떨어진 라마호수 옆 폴로경기장에서 축제가 열렸다. 이례적으로 많은 이슬람여성들이 참석했다.6명이 말을 타고 나무스틱으로 골에 넣으면 득점.<낭가파르밧=이훈구기자ufo@donga.com>


◆45일째 : 9월 25일(일)

수 백년 묵은 소나무, 삼나무 숲 텐트에서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비행대원들이 안 보인다. 다른 대원들에게 안 알리고 자기들만 패러장비를 챙기고 산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1000 폴로경기장 주변은 인산인해다. 가장 특이한 것은 원색의 새 옷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눈에 띄게 많이 몰려든다. 아무리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제약을 받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이 곳이 국민관광지이고 일 년중 가장 큰 행사인 폴로축제가 열리는 걸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소풍 옷차림이다. 다들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만나는 이마다 외국인 관광객인 기자와 대원들에게 말을 건다.

1100 갑자기 하늘에서 빨간 패러글라이더가 뜨고 폴로축제 경기장의 모든 눈들은 하늘로 향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운집하고, 홍필표 파일럿이 곡예비행을 하며 첫 번째로 내렸다. 아침에 어디 갔나 했더니 그들만의 깜짝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어제보다 더 열광적으로 몰려들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한다. 뒤이어 박정헌 대장이 내리자 다시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경찰들이 초비상상태로 질서를 유지하는데 가끔 몽둥이 동원도 불사한다. 경찰간부의 질문에 기자는 “오늘 라마폴로축제를 함께하기 위한 축하비행”이라고 답했다. 경찰은 흡족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질서유지에 더욱 힘쓰는 기색이다. 마지막으로 함영민대원. 곡예비행(아크로바트)이 특기인 함대원은 십여바퀴를 공중제비하며 가뿐히 잔디밭에 내렸다. 수 백명이 박수치며 다시 그 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홍필표팀장은 “이십년 넘게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외국도 여러 곳 방문했지만, 이렇게 열렬한 환대는 처음”이라며 싱글벙글이다.

1300 폴로경기장은 인산인해다. 어제의 VIP들이 요란한 호위차들과 함께 온 관용차에서 내렸다. 본부석으로 간 후 원정대원들은 이들 앞쪽 VIP석으로 안내받았다. 산속 마을 축제장에 외국인도 드물거니와 오전의 깜짝 축하비행의 주인공들이어서 환대가 극진했다. 경기 시작전부터 양쪽 팀 응원단들의 열기가 분위기를 달군다.

역시 이슬람은 이슬람이다. 여성들이 운집했지만, 운동장 주변엔 100% 남성들의 차지다. 여성들은 뒤편 산위에서 앉아 차분히 경기를 지켜본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길기트지역과 디아미르지역의 결승전이다.

프리스타일방식으로 규칙은 간단하다. 스틱으로 상대방 사람 말 스틱을 고의적으로 치지 않으면 계속 진행하면서 공이 골대를 통과 하면 1점이다. 다시 말하면, 말들을 탄 6명(모두 12명)의 선수들이 축구처럼 나무 공을 나무 스틱으로 쳐가며 골문안에 넣으면 득점되는 방식이다. 발대신 스틱이고 몸으로 뛰는 대신 말이 대신 뛴다. 예상과 달리 매우 거칠고, 선수들이 말위에서 서로 부딪히고, 격돌할 때마다 운동장엔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전반전 30분이 끝나자 마자, 어제 본 유일한 여성 정치인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산위에 웅크리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 움직였다. 그 얌전하던 이슬람 여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흡사 소녀팬들처럼 흥분했다. 경호팀의 보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수를 청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담기에 바쁘다. 가이드 슐레만씨가 “이슬람사회에서 여성의 외출이 힘든데 ,이런 날 여러분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라고 통역해 주었다. 옆에서 지역 신문사진기자가 기자에게 배려를 해준다. 덕분에 악수도 하고 간단한 인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가까이서 보니 인기를 누릴만 했다. 우리나라의 인기 여성정치인들을 떠올랐다. 같은 정치인이지만, 환경 또한 천양지차다.

길기트가 대도시여서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란 예상과 달리 7:5로 시골지역인 디아미르팀의 승리로 끝났다. 훈자까지 이동하는데 7시간이 넘게 걸려 경기가 끝나자 마자 서둘러 빠져나왔다.

대원들은 훈자에서 파키스탄 마지막 비행을 하고, 10월 초 수도 이슬라마드를 거쳐, 역사와 경제, 교육 중심도시인 라호르를 들른다.그 곳에서 와가볼더를 통해 인도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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