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박상민의 ‘소프트’한국]①소프트웨어, 공포와 잉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6일 13시 43분


코멘트

'공포' 잊고 '잉여' 즐겨야 소프트웨어 산다
●소프트웨어가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
●인재들이 미래에 질겁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게 도와야

《최근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논쟁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왜 우리는 소프트웨어가(S/W)는 안 되는가?"로 시작된 논의는 언제나 "S/W를 살려야 나라가 산다"고 부르짖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실리콘밸리 현장의 관점으로 문제를 설명해 보자. 캘리포니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박상민 박사는 일단 급한 불부터 꺼보려는 우리 사회의 조바심에 경종을 울린다. 잉여와 해커의 문화,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흥미로운 역사를 설명함으로, 우리가 진정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나아가는 힌트를 제시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우자고?

요즘 언론을 통해 접하는 IT뉴스 제목들은 한결같이 '위기의 한국 소프트웨어(SW)'인 듯 비친다. 특히 얼마 전 구글이 모토롤라 모바일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안드로이드에 의존하는 스마트폰 사업이 몰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극에 달했고 결국은 '한국 정부: 안드로이드와 경쟁할 새 오픈소스 OS 개발' 이라는 억지 기사마저 등장시켰다.

이럴 때 영어로는 '성스러운 똥' 이라는 단어가 적절해 보인다. 꼭 한국만 소프트웨어(SW)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HP가 PC사업을 접고 현금을 끌어 모아 아우토노미(Autonomy)라는 영국SW 회사를 인수한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초대형 IT회사들 근본마저 흔들고 있는 소프트웨어 혁명 앞에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이 한때의 지나가는 바람이 아님은 확실하다. 넷츠케이프 설립자이자, 페이스북, 트위터등 잘 나가는 인터넷 기업들에 투자한 마크 앤더슨(Marc Andreesen)이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는가?" 라는 글을 기고했다. 여기에서 그는 제목 그대로 소프트웨어가 구식 산업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진단하며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전세계 8억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이클 저커버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21조원의 자산가가 됐다. 하지만 돈을 목표로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위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연합뉴스)
전세계 8억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이클 저커버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21조원의 자산가가 됐다. 하지만 돈을 목표로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위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연합뉴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과 이북 (킨들)의 히트로 40년 역사의 서점 체인 보더스를 문 닫게 했다.
△넷플릭스는 영화 스트리밍을 정착시켰고, DVD대여점 블록버스터는 결국 도산했다.
△팜빌을 히트시킨 인터넷 게임 회사 징가(Zynga)와 앵그리 버즈(angry birds)와 같은 스마트폰 게임은EA, 닌텐도와 같은 전통 게임 회사를 몰락시키고 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통신회사는 스카이프(Skype) 이고, 구식 통신사들은 날이 갈수록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앤더슨은 정확히 보았다. 진정으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다. S/W 없이 구식 산업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기우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미국 SW 산업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갓 30년 남짓한 세월에 세상을 먹어 치우는 실리콘밸리의 화려함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소프트웨어? 해커문화가 근본이다

실리콘밸리의 뿌리는 해커 문화다. 남의 시스템을 침범해서 정보를 훔치는 그런 해커가 아니다. 주말이나 주중에 일 끝나고 재밌어서, 궁금해서 등의 이유로 직업과 상관없이 S/W, 하드웨어를 만들고 고쳐보는 그런 행동 말이다.

초기 컴퓨터 ‘Altair’가 소개된 대중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초기 컴퓨터 ‘Altair’가 소개된 대중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해커 문화의 시작은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MIT의 모형 기차 동아리에서 의기투합한 새내기 몇 명이 연구용 메인프레임을 뜯어보고, 운영체제를 고치고 새로 만들어보면서 해커 문화가 시작 되었다. 1975년 조그만 전자제품 회사 MITS 뒷마당에서 만들어 439달러에 팔았던 알테어(Altair) 8080라는 첫 PC가 있다.

이 알테어가 해킹문화를 폭발 시켰다. 알테어는 는 운영체제, 컴파일러(프로그램 개발툴)와 같은 필수 SW도 없이 본체에 LED와 버튼 몇 개 달려 있었고, 애초에 취미삼아 장난감을 찾는 사람들을 목표로 했다. 싼 값에 사서 집에서 고쳐볼 수 있는 알테어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다양하게 이 조잡한 기계를 고쳐 보았다(SW가 없었으니, 해킹은 필수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하버드 기숙사에서 빌게이츠는 수업에 안나가고 알테어에서 돌아가는 BASIC 컴파일러를 만들어 팔았다. MS의 시작이다.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알테어에 관해 이야기 하는 동호회에서 처음 만나 해킹을 시작했다. 워즈니악은 동호회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곧 훨씬 더 진보된 PC를 디자인한다. 애플의 시작이다.

△1991년 핀란드의 21살 대학생 리누스 토발즈는 취미로 유닉스를 닮은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간신히 돌아가는 첫 버전을 완성한 후, 인터넷 메일 리스트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줍게 광고했다:

"386/486 PC에서 돌아가는 무료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어요 (취미로 그냥, GNU처럼 대단하고 전문적인 건 아니고요…."

그 후 지금까지 리눅스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에선 안타깝지만 아니다). 전 세계의 내노라하는 해커들이 몰려들어 '잉여력'을 과시했고 젊은 리누스 토발즈는 해킹 실력보다 더 훌륭한 해커 관리 능력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소스코드의 안정성과 품질을 관리하는 능력)을 보였다. 대기업에서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도 흔히 실패하는 것을 보면 리눅스의 성공은 신의 은총이라 생각들 정도다.

지금 리눅스 없이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모든 인터넷 기업은 리눅스로 운영된다. 한국이 노심초사하는 안드로이드 역시 리눅스고, 클라우드 컴퓨팅도 기본은 리눅스다.

■잉여가 해커 문화를 낳았다

애플컴퓨터를 창립한 워즈니악은 스티브잡스와 함께 차고에서 해킹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어 냈다. 세계 최대의 기업인 애플컴퓨터는 해킹문화의 산물인 셈이다.(자료사진)
애플컴퓨터를 창립한 워즈니악은 스티브잡스와 함께 차고에서 해킹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어 냈다. 세계 최대의 기업인 애플컴퓨터는 해킹문화의 산물인 셈이다.(자료사진)
해커문화의 근본은 잉여(Abundance) 정신이다. 시간 남으면 야근하거나, 다른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며칠 저녁, 주말 내내 돈 벌이 안 되는 일을 하며 노는 것이다. 그럼 해커들은 왜 그렇게 잉여력을 폭발시키며 바보짓을 하는 걸까?

△재미있다. 코딩은 재미있는 창조행위다. 직소퍼즐을 맞추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1000번째 피스가 끼워졌을 때의 그 성취감…소프트웨어를 완성한다는 것은 그림이 퍼즐에서 뛰쳐나와 춤추는 것과 비견할 수 있다. 내 상상의 결과물이 눈앞에서 움직여 뛰는 것과 같은 그런 성취감 때문에 해커들은 코딩한다. 직장에서 10시간 코딩하고, 집에 와서 재미삼아 5시간 더 코딩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선물 정신이다. 해커들은 자신이 밤새워 만든 소스코드를 '선물'로 동료들에게 배포한다. 취미 생활로 해킹하기 때문에 돈은 생각지 않는다. 혹 그런 시도를 했을 경우 커뮤니티에서 매장 당한다. 내가 오늘 1000줄의 소스코드를 선물 했으면 내일은 누군가 또 공짜로 새로운 툴을 선물 할 것이다.

△명성을 얻고 싶어 한다. 돈에는 초연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X의 해킹 능력은 최고다 하는 평가를 얻으려, 버그 없고 훌륭하게 디자인된 소스코드를 짠다. 선물의 대가는 해커들 사이에서의 명예다. 지저분한 턱수염, 긴 생머리를 날리는 옆 사람을 너무 무시하지 말자. 해커 사회에서는 브레드 피트 일수도 있으니까…

△여유로운 사회다. 미국에 10년 가까이 살아온 필자는 한국에 가서 며칠만 지내면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렇게 쉽게 살아도 되나?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그런데 미국 집으로 돌아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주말이면 골프 치는 재미, 저녁이면 책 읽고 해킹 하는 재미로 근심이 사라진다. 저녁에 야근 안 해도, 주말에 일 안해도 별 걱정이 없다. 사회가 여유롭게 돌아간다.

해커정신은 사라진 전설이 아니다. 수백억의 돈을 매일 투자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해커를 찾아다닌다. 구글, 페이스북에 취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파치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 해킹한 경력이다.

■지나친 공포에 사로잡힌 한국

한국 IT산업은 오랜기간 소프트웨어 산업을 배척해온 결과 모바일 시대 OS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상징물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 IT산업은 오랜기간 소프트웨어 산업을 배척해온 결과 모바일 시대 OS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상징물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잉여와 해커 정신이 실리콘밸리의 근본이라면, 한국의 근본 정서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공포(fear)' 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못하면 루저(loser)가 된다는 공포, 숙제를 안 해가면 체벌 받는다는 공포, 소프트웨어 때문에 삼성이 무너진다는 공포….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겪어보지도 않은 6·25 전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언젠가 북한이 쳐들어오면 한국은 다시 리셋된다는, 실현 불가능한 그 공포가 왜 사라지지 않는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이들을 웃겨 주려 헛소리 한번 했다가, 50명의 아이들 앞에서 뺨을 여러 대 맞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아끼는 아이가 되었다. 일년 후를 기약할 수 없는 벤처에서 일하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내가 불안한 부모님은 삼성이 주는 안정감과 지위에 대해 '엄친아'의 예를 들어가면서 설득한다. 도대체가 우리 사회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개인, 집단 모두 공포에서 벗어나려 치열하게 살고 있다. 뛰어난 해킹 잠재력을 가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과 교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건희 회장이 주기적으로 이야기하는 '삼성 최대의 위기'는 정말 언제로 오는 걸까? 한국형 안드로이드라는 '성스로운 똥' 아이디어를 낸 높은 분들은 한국 소프트웨어(S/W)의 미래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정부가 키울 수 있는 '스티브 잡스'는 없다

창조와 파괴를 용인하는 문화 없이는 우리나라에 스티브 잡스 같은 위인이 등장하기 어렵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애플컴퓨터 창립자 스티브잡스(자료사진)
창조와 파괴를 용인하는 문화 없이는 우리나라에 스티브 잡스 같은 위인이 등장하기 어렵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애플컴퓨터 창립자 스티브잡스(자료사진)
결론적으로 공포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잉여와 해커의 정신은 살아 날 수가 없다.

최근 얼마나 많은 수의 한국 해커들이 국제 오픈소스 프로젝트(예: Apache)에 참여하고 있는가 헤아려봤다. 정말이지 한 줌의 사람들뿐이었다. 삼성, LG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드웨어를 만들어 파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떠받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돈 받지 않고 소스코드를 선물 하는 실리콘밸리의 해커 정신을 임원진들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럼 구글이 공짜로 안드로이드 O/S를 배포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필자가 발견한 한국 최고의 잉여 생산지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다. 거기엔 잉여가 넘친다. 그리고 놀랍게 해커 정신과 많이 닮아있다. 사람들은 1) 재미있기 때문에 사진을 해킹 (합성)하고, 합성한 사진들을 2) 공짜로 서로 나누며 키득댄다. 고품질의 합성 사진을 다작한 사람들은 3)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으며,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업데이트 되는 합성 사진과 미디어들은 얼마나 사람들이 4) 잉여 넘치는지 자랑한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디시와 같이 한국에 고유하게 살아있는 해킹문화를 연구하고, 거기에서 힌트를 발견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근본을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론에서는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생각해 보라며 젊은이들을 유혹하지만, '부(富)'는 해커의 운 좋은 부산물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스티브잡스 같은 인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S/W 엘리트 양성을 부르짖지만, 이 역시 '성스러운 똥'같은 생각이다. S/W 엘리트는 자조 섞인 '잉여인' 들 중에서 몇 사람이 태어나지, 나라가 맘먹고 키워내는 게 아니다.

필자는 컴퓨터 정규교육 과정을 따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수의 논문을 썼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성에 몰두한 진정한 해커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혹 엘리트라고 칭찬받지 못해도, 잉여 가운데 피어나는 한국형 해커들을 자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상민 / 트위터@sm_park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