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 음반 구성진 소리 디지털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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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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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음반 DB 완성

“순애야, 너는 정말 이 이수일이를 버릴 터이냐. 그야 물론 금전의 세력이야 내가 엇지 중배를 당하겟니. 나는 일개의 학생이다. 저놈은 굴지의 재산가.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행복이란 결코 금전으로 좌우되지 안는 것이 아니냐. 황금과 행복은 전혀 Y길이다.”

“아이구, 참 나는 엇더케해야 조흘는지 내가 만약에 그리고 가버린다면 수일씨 당신은 엇더케 하실테에요. 네….”

구성진 목소리의 두 배우가 ‘장한몽’의 주요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들린다. 그들이 읊조린 대사도 당시 표기법 그대로 화면에 나온다.

동국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단장 배연형 문화학술원 교수)이 1907∼1945년 대중의 사랑을 받은 한국의 판소리와 대중가요, 연극, 영화설명, 만담 등이 담긴 유성기 음반의 데이터베이스(DB)를 완성하고 27일 인터넷 시험판을 언론에 공개했다.

연구단은 국내 유성기 음반의 성장기(1907∼1927년)와 전성기(1928∼1945년)에 해당하는 음반 6500여 장(작품 수 1만3000여 점)의 목록과 음원, 가사, 음반 사진, 관련 신문광고, 해제 등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5년부터 6년간 디지털화해 왔다.

7월 1일 웹사이트가 정식으로 개통되면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윤심덕의 ‘사의 찬미’, 당대의 재담꾼이었던 신불출의 재담, 대중가수로 사랑받았던 이난영, 남인수의 노래를 인터넷으로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연구단은 동국대 도서관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국내 유성기 음반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1907년 미국 빅토리아레코드사에서 내놓은 ‘적벽가’ 음반이다. 한국의 기악연주자 3명이 일본 오사카에 가서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적벽가, 주유가, 효녀심청가 등을 녹음한 것이다.

연구단이 수집한 음반에는 영화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이 영화 ‘말 못할 사정’을 설명하는 음성,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던 상황을 설명한 음성 등도 포함돼 있다. 일제강점기 서울대부속초등학교 학생들이 조선어독본을 읽는 소리는 지금의 서울 말투와는 상당히 다르고 북한 말투와 비슷한 형태로 녹음돼 있다.

이번 작업으로 근대 초기 대중가요와 판소리 등이 집대성됨에 따라 대중문화와 언어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 교수는 “현재의 판소리는 1960년대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 복원했는데 실제 이들 유성기 음반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다. 관련 연구를 통해 대중문화를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의 결과물은 동국대출판부가 ‘한국 유성기 음반’(전 5권)으로 출간하고 수림문화재단(이사장 김희수)이 이를 구입해 전국의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무료로 기증할 계획이다. 연구단은 28일 서울 동국대에서 ‘동아시아 고음반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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