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케이팝 인더스트리-⑤‘숨피닷컴’ 조이스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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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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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요와 드라마, 세계적 경쟁력 있다" '숨피닷컴' CEO 조이스 킴

● 한류 드라마 커뮤니티로 시작해 최고의 한류 2.0 사이트로
● "한류뿐만 아닌 아시아 콘텐츠 플랫폼으로 키우는 것이 꿈"

영어권 한류 팬들은 '소녀시대'를 어떻게 표현할까?

우리가 영어로 표기해 온 '걸즈 제너레이션(Girl's Generation)'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한글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SNSD(소녀시대의 약어)'를 선호한다. 이미 유튜브에 가보면 'SNSD'라고 쓰인 소녀시대 동영상들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동방신기'는 'TVXQ'란 약어로 통용된다. 이른바 영어와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한류의 힘'인 것이다.
동방신기의 이름이 한자로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는 미국 팬들. 미국에서도 한류는 매력적인 컨텐츠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동방신기의 이름이 한자로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는 미국 팬들. 미국에서도 한류는 매력적인 컨텐츠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숨피'(soompi.com)는 영어권 한류 연예정보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다. 미국 LA에 사는 재미교포 수잔 강 씨가 1998년 한국 드라마 전문사이트로 문을 연 이후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대한 정보가 오가는 가장 친밀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기능해 왔다. 이후 한류 열풍이 본격적으로 영어권에 미치면서 이제는 한달 순방문자가 140만 명을 넘고 한류 영문 사이트 중에서도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발전했다.

현재 이 사이트의 CEO는 재미교포 조이스 킴 씨(32)로, 하버드대와 컬럼비아 법대를 거쳐 IT변호사로 활동한 이력을 가진 재원이다. 김 대표는 15살에 코넬 대학에 조기 입학하기도 했고 1990년대에는 한국에서 NGO활동을 하며 한국의 산업화에 대해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제는 IT변호사가 아닌 한류 붐을 선도하는 문화벤처의 CEO로 활약하며 한국 벤처와도 소통하는 벤처 인으로 활약한다.

■ 한국인의 인상까지 뒤바꾼 미국 내 '한류의 힘'

- 신한류라고 하기도 하고 케이웨이브 2.0이라고도 표현한다. 그 덕에 미국 내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데…

"10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한인 교포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랑한다. 많은 교포들도 한류에 자부심을 갖고 힘을 얻는다. 일례로 한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한국 남자'라면 따분하고 고리타분했는데 이제는 '낭만의 화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어릴 적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정말 귀했지만 이제는 백인 흑인들도 한국어로 인사할 정도다. 대중문화의 힘이라지만 정말 대단하다."

- 1979년생인데 어릴 시절 한국 대중문화의 이미지는 어땠나?

"사실 뚜렷한 기억이 없다. 동부에서 자라서 아시아계가 많은 동네가 아니었다. 창립자인 수잔 강씨는 캘리포니아 출신이라 전형적인 교포가정으로 어릴 적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접했다면 나는 대학교 이후 한국을 학습한 타입이다."

-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한류 사이트 CEO가 되었나?

"원래 관심은 대중문화가 아니었다. 대학 때 한국의 근대사를 전공했다. 1994년 한국에 건너와 민주화와 노동운동 그리고 경제개발 등을 공부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늘려갔다. 논문 소재가 '전태일'이었다. 미국에서 로스쿨 졸업하고 IT변호사로 활약했는데 2006년 친구 언니인 수잔 강씨로부터 '도와 달라'는 SOS를 받았다. 숨피닷컴 사이트가 너무 커져서 감당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결국 로펌을 그만두고 실리콘밸리로 옮겨 법인화 작업을 도왔고 2008년부터는 CEO로 활동 중이다. 2006년 한달 순방문자가 20만 명이었다면 이제는 140만 명에 달한다. 언제나 도전적인 일을 즐겨왔기 때문에 회사의 규모가 이직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숨피닷컴 CEO 조이스 킴
숨피닷컴 CEO 조이스 킴

-지금은 케이팝 팬이 되었나?

"물론이다. 예전에는 SES나 HOT에 무관심 했지만 지금은 '2NE1' '드렁큰 타이거' '샤이니'가 무엇을 하는지 꿰뚫고 있다. 한국 연예인들은 트레이닝도 잘 돼 있고 매력적이라 상당기간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따지고 보면 미국교포들도 케이팝 번성에 영향을 끼쳤다. 유승준 이후 한국에 찾아온 수많은 교포 연예인 준비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소녀시대 중에도 티파니와 제시카가 대표적이다. 2PM의 닉쿤은 태국계 미국인이고….

"한류가 개방의 산물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한류역시도 많은 문화들이 엉켜 이뤄졌다. 교포 한류 팬들은 정확하게 누가 교포인지 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교포들은 한국 연예인들을 좋아한다는 점이고 한국 젊은이들은 교포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웨스턴 필'에 대한 수용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 어떤 사람들이 주로 숨피닷컴을 찾는가?

"현재 숨피 회원 가운데 한국인의 비중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시아계가 50%, 백인과 흑인이 35% 정도를 차지한다. 성별로는 여성이 75%, 남성이 25% 정도다.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말레이시아 호주 순으로 회원이 많다. 이들은 숨피 커뮤니티 내에서 '오빠(Oppa)' '언니(Unni)' 등의 한국식 호칭으로 서로를 부를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다."

- 한류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케이팝을 처음 접한 외국인들은 무엇보다 비주얼에 대한 칭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마디로 '룩 소 굿(Look so good!)이란 얘기다. 게다가 춤출 때 정확하고 절도 있다고 감탄한다. 한번 들으면 '잔상이 길다(후크송)'는 인상평도 빼놓지 않는다. 드라마는 노래와 조금 다르다. 캐릭터가 너무도 흥미롭고 잘 구현된다고 좋아한다. 누구라도 한국드라마 보면 항상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 한류 드라마 붐의 중심…숨피닷컴의 1등 공신은 팬심

숨피닷컴 로고
숨피닷컴 로고
현재 '숨피'에는 한국 배우와 아이돌그룹, 드라마에 대한 뉴스뿐만 아니라 각 팬클럽들의 커뮤니티도 마련돼 있어 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한국드라마 자막제작이다. 한국의 방송사들이 미처 제공하지 못하는 영문자막을 제작해 영어권 한류 팬들과 공유한다. 이 밖에 자체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스타들을 인터뷰해 팬클럽에 제공하기도 한다.

- 한국드라마를 영문 자막으로 만들어 공유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류 팬들에게 너무 힘든 일이 바로 생방송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일단 위성방송이나 스트리밍으로 드라마를 감상해야 하지만 불행히도 언어 장벽 탓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는 자막이 만들어질 때까지 이틀을 기다려 다시 보면서 이해해 나간다. 한류 팬들로서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이틀 이상 기다린다는 것은 무척 잔인한 일이다. 그나마 이것도 엄청나게 빨라진 것이다."

- 도대체 자막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숨피닷컴 회원들이 협동 작업으로 만들어 나간다. 2005년까지만 해도 자막을 만드는 사람들이 90% 회원들이다. 지금은 전문가들이 좀 늘었는지 70% 정도로 줄었다. 숨피닷컴은 애당초 한류드라마 자막 커뮤니티로 시작한 사이트다. 자막을 만들며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후 리뷰와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 것이 이렇게 거대한 한류사이트로 발전한 것이다."

- 왜 어떤 보상을 바라고 힘들게 자막을 만들까?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한류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를 '슈퍼소셜 미디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개개인의 노력의 모여서 한류 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한류 확산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영어 번역'이다. 방송국이 자막을 만들기도 하는데 최소한 2주 이상 걸린다. 그런데 영어권 한류 팬들에게 2주란 2년과도 같이 끔찍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래서 기다리느니 직접 번역을 하기로 한 것이다. 4명이 1조로 팀을 이뤄 '번역-감수-싱크로나이즈' 등의 드라마 자막을 분업한다."

- 아예 자막 작업을 한국의 방송국들이 해주는 것을 바라나?

"왜 한국의 방송국들이 번역에 관심을 안 두는지 이해가 안 된다.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 팬에게 방송 감상의 손쉬운 방법을 건네야 한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온라인으로 드라마 한편을 보기 위해서는 여권을 스캔해서 한국으로 팩스를 보내야할 정도로 후진적이다. 돈을 내더라도 편하게 보고 싶은 한류 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 등장 이후 팬들이 음반을 안 산다는 말이 있는데 진정한 팬이라면 그게 아니다. 소녀시대 위해서 앨범을 사는 게 바로 요즘의 진정한 팬들이다."

■ 케이팝의 경쟁력은 '외모', 드라마의 장점은 '여성 중심'

미국뿐만 아니라 중남미에서도 한류 붐은 심상치가 않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의 쇠퇴와 함께 찾아온 공백기를 인터넷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메워 놓은 문화가 다름 아닌 '한류'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류를 소비하는 이들이 늘면 늘수록 한국의 컨텐츠 생산자는 물론이고 이를 세계에 전파하는 영어 한류 사이트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볼 수 있다.

- 한류의 경쟁자는 어디라고 보는가?

"우리는 한국대중문화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대중문화를 동시에 전파한다. 그러나 케이팝과 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워낙 높아 약 80%가 한국 컨텐츠 소비자로 볼 수 있다. 일본보다는 특히 중국 드라마의 성장세가 놀랍다. 아마도 한국 컨텐츠 이후에는 중국이 아닐까 예상한다."

- 비주얼만 따지면 일본과 중국도 뒤쳐지지 않을 텐데…

"물론이다 비주얼이 중요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비주얼이 조금 특별하다. 일단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에스테틱, 외모, 패션 등 외모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는 귀엽고 섹시하고 착한 스타일이 모두 공존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조금은 전형적이라서 재미가 없다는 평가다. 최근 'SNSD'를 좋아하는 남자 팬들 평가 들어보면 명확하게 나온다. 심지어 한류에 관심 없다는 사람들도 SNSD를 다 알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1998년 시작된 숨피닷컴은 한류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최대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1998년 시작된 숨피닷컴은 한류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최대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 한국 드라마는 조금 퇴조기인데…어떤 면을 주목하는가?

"전 세계 한류드라마 팬들은 대다수가 여성들이다. 왜 그럴까? 여성들을 잘 이해하고 대본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대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평범한 여성과 상류층 남자가 만남을 시작한다…우여곡절 끝에 그 남성은 여성의 착한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를 전형적인 구조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만한 여성의 판타지가 어디 있을까? 종국에 나를 이해하는 남성을 만나는 스토리를 싫어할 여성을 없을 것이다."

- 일본에는 그런 드라마가 없는가?

"글쎄…. 일본 만화에서 출발한 드라마를 보면 여성 캐릭터가 너무 나약하게 나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MBC '장난스러운 키스'가 대표적이었다. 여성이 자신감도 있고 주체적이어야 하는데 일본은 그런 캐릭터가 흔치 않았다."

- 숨피닷컴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회원 사이트로 회원에게 편하게 재미있게 한류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 우리는 회원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숨피가 없다면 미국에서 한류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책임감도 느끼며 앞으로도 즐겁게 일하고 싶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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