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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Narrative Report]흩어졌던 가족, 야구를 ‘끈’으로 다시 뭉칠 수만 있다면… 충암고 3년 포수 원선이의 꿈

입력 2010-08-18 03:00업데이트 2012-01-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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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엄마가 떠났다. 힘겹게 뒷바라지하던 아빠까지 당뇨로 시력 잃고 다리를 절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렸지만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16일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유원선이 초조한 표정으로 뽑힌 선수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채워져 가는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일찌감치 호명된 선수들은 활짝 웃었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간절히 바랐지만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유원선(18·충암고 3)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원선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원선은 1992년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미혼 때 피혁회사를 다녔던 어머니는 1987년 결혼한 뒤 아빠와 옷가게를 시작했다. 장사는 잘됐고 가게는 한창 때 11개까지 늘었다. 결혼 전 택시운전사로 일했던 아빠 유태남 씨(56)는 개인택시도 갖고 있었다. 세 식구는 ‘천당 아래 분당’의 큰 아파트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가게는 하나 둘 남의 손에 넘어갔다. 큰 사기도 당했다. 가족은 1997년 서울 장안동 다세대 건물의 반지하 방으로 이사했다. 호기롭게 술자리를 마련하곤 했던 아빠는 외롭게 술을 마셨다. 상실감은 분노로 변했고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의 좋지 않은 모습에 어린 아들이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던 어머니는 1999년 이모가 살고 있는 경기 남양주로 갔다. 다세대 반지하 방에는 아빠와 아들만 남았다.

장학금때문에 떠난 日유학… 실패… 다시 이를 악물었다. 뛰고 또 뛰었다

“다른 고등학교 알아보자. 한국에서 야구 해야지.”

“싫어, 나 일본에 갈래요. 거기서 야구도 하고 일본어도 배울 거예요.”

아들은 완강했다. 아빠의 뜻을 거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원선은 서울의 한 고교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학교 감독이 바뀌면서 일이 꼬였다.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꼬박꼬박 월 회비를 내야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 집안 형편을 아는 원선은 마침 믿는 구석이 있었다. 원선이 다니던 중학교는 일본 오카야마에 있는 한 고등학교와 교류를 했다. 선수가 부족했던 그 학교는 이전에도 매년 한국 학생들을 야구 장학생으로 데려갔다.

“일본에 가면 돈 하나도 안 들어요. 먹고 자는 것도 다 해결되잖아요.”

“내 택시가 있는데 그 정도 뒷바라지 못할까. 장학금을 못 받아 그렇지 너 갈 데는 많아.”

아빠는 아들을 곁에 두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일이 꼬였다. 재산을 잃으며 함께 잃은 건강이 문제였다. 당뇨병성 망막증이 악화됐고 2007년 12월 망막 수술을 했다. 오른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왼쪽은 희미하게 보였다. 당뇨병 후유증으로 다리도 절었다. 택시를 팔아야 했다. 이듬해 원선은 일본으로 떠났다. 세 식구는 모두 흩어졌다.

살 빼려 시작한 야구

원선이 야구를 만난 건 어머니가 떠나고 3년 뒤였다. 아빠는 어머니 몫까지 하며 아들을 키웠다. 원선은 무럭무럭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벌써 허리둘레가 30인치를 넘었다. 비만이었다. 야구를 좋아했던 아빠는 2002년 가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원선을 데리고 친구가 감독으로 있는 도봉리틀(현 강북리틀) 야구단을 찾았다. 테스트를 해본 감독이 말했다. “아까 공 잡는 거 봤지? 소질이 있어. 나한테 한번 맡겨봐.”

그해 겨울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던 아들은 몸무게가 6kg이 빠져 돌아왔다. 살을 빼기 위해서라도 야구를 계속 시켜야겠다고 아빠는 마음을 먹었다.

부모때문에 아들 삶 망칠 순 없다며 별거중에도 운동장 꼭 찾던 어머니

외야수로 뛰던 원선은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 포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야구를 시작할 때 만난 그에게 백넘버를 달아줬던 같은 리틀 야구단 선배 홍성흔(롯데)의 영향이 컸다. 홍성흔은 요즘 지명타자로 활약하지만 그때는 두산의 주전 포수였다.

“나중에 꼭 홍성흔 같은 포수가 될 거야.”

원선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포수는 힘들다. 무거운 장비로 무장한 채 경기마다 200번 가까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한다. 타구에 맞는 일도 다반사다. 원선은 그래도 포수가 좋았다. 잘 던지는 투수를 만나면 기분이 나는 듯했다. 원선은 홍성흔 같은 포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도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수백 번씩 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났지만 고교 1학년생에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일본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침 식사로 아빠가 구워준 삼겹살 한 근을 뚝딱 해치우던 원선은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대신해야 했다. 점심도 간단한 도시락이 전부였다. 그나마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지만 감독의 차별은 견디기 힘들었다. 또래 가운데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한 학기를 마친 2008년 8월 원선은 한국에 돌아왔다.

“그동안 힘들었어요. 아빠가 다시 학교 좀 알아봐 주세요.”

유태남 씨가 10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봉황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신일고의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당뇨병성 망막증으로 한쪽 시력을 잃은 유 씨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부 셔 사물을 볼 수 없다. 수원=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을 다시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외국에서 수업 일수 180일을 채워야 국내 학교에서 한 학년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었다. 아빠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야구 유학’ 1년을 마친 원선은 지난해 초 2학년이 되어 충암고 유니폼을 입었다.

충암고는 7년 전 이영복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후 야구 명문의 위상을 되찾고 있는 중이었다. 원선은 지난해 3월에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 멤버가 됐다. 올해 충암고는 대통령배 대회에서 4강에 올랐고 무등기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원선은 주전 포수로, 4번 타자로 출전했다.

야구, 끈이 되다

원선이 일본에 있을 때 아빠는 4차례나 일본에 다녀갔다. 시각 장애로 일을 뺏긴 대신 돈이 생긴 덕분에 가능했다. 개인택시를 팔아 7000만 원을 받았고 개인택시조합에 퇴직금조로 적립해둔 3000만 원, 그리고 적금을 깨고 손에 쥔 1000만 원이 있었다. 그건 전 재산이었다.

아빠는 일본에 갈 때 항상 어머니 김홍자 씨(52)와 동행했다. 헤어진 부부의 동행이 그게 처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뒤에도 아들이 대회에 출전할 때면 남편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우리 문제로 원선이가 슬럼프에 빠지면 안 되잖아.”

부부는 헤어졌어도 아들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남양주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던 어머니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국의 야구장을 찾았다. 원선이 어머니와 따로 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기가 끝나면 부부는 다시 서먹해졌고 아빠는 장안동으로, 어머니는 남양주로 발길을 옮겼다.

원선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아빠 몰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아빠 몰래 아들에게 용돈을 쥐여주곤 했다. 전 남편은 ‘아빠’라고 부르면서, 또래와 달리 자신을 ‘엄마’라 부르지 않고 ‘어머니’라 부르는 아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이젠 프로가 돼 아빠병도 고치고 온가족 함께 살고 싶다. 영원히…

어머니는 요즘 원선의 집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한다. 밤을 꼬박 새워 장사를 한 뒤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남양주 집으로 간다. 일터를 옮긴 건 아들을 더 가까이서 돌보고 싶어서였다. 택시를 판 뒤 한동안 일이 없던 아빠는 지난해 10월 야구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의 배려로 집 근처 6층짜리 건물을 관리하며 월 80만 원을 받는다.

원선은 이달 초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지난주 한국에 온 원선은 귀국한 다음 날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예전부터 되뇌어 온 얘기를 또 꺼냈다. “어머니, 저 드래프트에 뽑히면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10일 봉황기 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인 수원야구장. 이날도 원선의 부모님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기자와 만난 김 씨는 남편을 옆에 둔 채 말했다.

“집을 나올 땐 애 아빠가 무섭고 싫었어요. 지금은 감사해요. 피와 땀과 눈물로 내 아이를 이렇게 예쁘게 키워줬잖아요. 야구를 할 수 있게 했고 좋은 성격을 갖게 해줬어요. 이젠 늙고 병든 이 사람을 누가 돌봐주겠어요. 원선이가 원하면 애 아빠 옆에서 병 수발할 준비가 돼 있어요.”

아들은 아빠 몰래 어머니와 이렇게 약속했다. “프로에 가면 제가 아빠 병 고쳐 줄 거예요. 엄마도 예전처럼 함·께·살·아·요.”

8개 구단이 6명씩 신인을 부를 때까지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각 구단은 드래프트에서 신인 10명까지 뽑을 수 있다. 드래프트 현장은 점점 긴장감을 잃어 갔다. 구단별로 일곱 번째 지명 차례가 돌아왔을 때 삼성 스카우트가 입을 열었다.

“충암고 포수 유원선.”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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