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천국] “강속구=머니”…거꾸로 가는 컨트롤

동아닷컴 입력 2010-07-17 07:00수정 2010-07-1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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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투수 제구력, 프로야구 초창기때보다 나빠졌나?
한국야구의 실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와 비교할 때 투수들의 제구력 지표는 도리어 떨어졌다. 투수들이 퇴보한 것일까, 아니면 타격기술의 향상이 반영된 현상일까. KIA 서재응은 어느새 희귀해진 국내 대표 컨트롤 투수다. 스포츠동아DB
제구력지표 어떻게 달라졌나
28년새 경기당 4구 3.21→3.91개
사구-폭투도 뚜렷한 증가세 이어져

제구력 나빠진 원인은 무엇인가
상체 위주 피칭 많아져…볼끝 ‘시들’
타고투저에 스플리터 득세도 한몫
넥센 김시진(52) 감독은 가끔씩 목동구장에서 열리는 고교야구를 보러 간다. 1980년대의 명투수였던 김 감독은 이렇게 개탄한다. “요즘 애들은 공을 던진 다음, 내 공이 원하는 곳에 잘 들어갔는지 보기도 전에 전광판부터 쳐다본다. 구속이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요즘 투수들이 구속이 더 빠르고 구종도 다양하지만, 제구력만큼은 프로 초창기의 투수들이 더 나았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프로야구 관계자들도 김 감독과 의견을 같이 한다. 실례로 든 것이 볼넷과 사구, 폭투의 증가. “예전에는 끝내기 폭투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벌써 2차례. 과연 프로 초창기와 비교해 투수들의 제구력은 안 좋아졌을까.

제구력지표 어떻게 달라졌나
28년새 경기당 4구 3.21→3.91개
사구-폭투도 뚜렷한 증가세 이어져
○경기당 평균 4구·사구·폭투 확연한 증가

프로야구 원년부터 1988년까지. 투수들은 총 4만1243.2이닝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4구(고의4구 제외)는 1만4726개, 사구는 1863개, 폭투는 775개가 나왔다. 경기당(9이닝 기준)으로 따지면 평균 4구는 3.21개, 사구는 0.41개, 폭투는 0.17개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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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최근 3년간(2007∼2009) 총 투구이닝(2만7477.1) 중에는 1만1494개의 4구와 1565개의 사구, 1106개의 폭투가 나왔다. 각각 경기당 3.76, 0.51, 0.36개. 3가지 항목 모두 증가세가 확연하다.

올 시즌(개막전∼7월 5일)에는 수치가 더 증가했다. 경기당 4구는 3.91개로 프로야구 역사상 경기당 4구가 가장 많았던 2001년(4.15개)과 2009년(4.09개)에 이어 역대 3위의 페이스다.

경기당 4구가 가장 적었던 해로 기록된 1983년(2.93개)보다는 1개 가까이 많아졌다. 사구와 폭투 역시 경기당 0.60개와 0.49개로 수직상승. 현장에서 체감하는 제구력의 저하가 통계로도 어느 정도 입증되는 셈이다.

끝내기 폭투는 1982년 1호(황규봉)가 나온 뒤부터 2호(1990년·송진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하지만 1991년부터 올 시즌까지는 총 20개가 나왔다. 연평균 1개꼴이다.
제구력 나빠진 원인은 무엇인가
상체 위주 피칭 많아져…볼끝 ‘시들’
타고투저에 스플리터 득세도 한몫

○타격기술 향상, 스플리터 득세, 가동투수 증가도 제구력 지표 상승의 원인

물론 이런 통계를 단순히 제구력 저하만으로 수렴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SK 김성근(68) 감독은 “예전에는 타자들의 기술이 많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이라면서 “오히려 요즘 투수들의 제구가 더 낫다”고 했다.

프로 17년차의 KIA 이대진(36) 역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공을 요즘 타자들은 쳐낸다. 홈런도 더 많아졌다”면서 “투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렵게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타에 대한 부담감이 4구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 실제로 타고투저의 시대에는 4구가 많아진다.

사구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한 포수는 “요즘은 몸쪽 리드가 대세인 것 같다”고 했다. 타격기술 향상으로 몸쪽 공을 던지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힘들고, 다양한 변화구의 위력을 살리기 위해서도 몸쪽 공이 필수라는 것이다. 코칭스태프도 몸쪽 공을 적극적으로 주문한다.

가장 눈에 띄는 폭투의 증가세는 구종의 다변화와도 연관이 깊다. 폭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구종은 포크볼 등 스플리터 계열. 그립 상 너클볼 다음으로 제구가 어려운 구종이 포크볼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의 주요 변화구 레퍼토리는 커브와 슬라이더. 스플리터는 익숙한 구종이 아니었다. 1988년 이동석(당시 빙그레)이 스플리터 하나로 프로 통산 4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타자들의 기술 향상 때문에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와 타이밍 싸움이 강조되면서 2000년대의 투수들은 스플리터와 체인지업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했다. 넥센 정민태(40) 투수코치는 “이 구종들은 주로 유인구로 쓰여 낮은 제구가 강조되기 때문에 폭투가 많다”고 분석했다.

마운드 분업화 이후 에이스급 투수들의 투구이닝 감소도 제구력 지표 상승의 원인이다. 시대를 초월해 A급 투수들은 제구력이 뛰어나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이런 1·2선발들이 팀 전체 경기의 절반을 소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83년 삼미 마운드의 쌍두마차였던 장명부(60경기)와 임호균(35경기)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무려 합작 95경기에 등판했다. 당시 페넌트레이스는 100경기.

반면 최근에는 팀당 10명 이상의 투수들이 한 시즌을 골고루 소화한다. ‘컨트롤 아티스트’ KIA 서재응(33)은 “각 팀의 1·2선발과 5·6선발의 제구력 차가 크다”면서 “올 시즌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선수는 팀당 1명 정도”라고 했다.


○빠른 공 던져야 몸값 상승…학생야구, 제구력보다는 스피드가 대세


롯데 양상문(49) 투수코치는 “투수들이 프로에 올 때 주로 스피드에 의해 몸값이 결정되기 때문에 요즘 중고교 선수들은 스피드에 욕심을 많이 낸다”고 지적했다. 물론 하체 위주의 좋은 투구 밸런스에서 나오는 강속구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무리한 속도경쟁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다수의 관계자들은 “특히 미국 야구를 잘못 받아들이면서 상체 위주의 피칭이 많아졌다”고 분석한다. 부상 위험도 더 커졌다는 의견. KIA 이강철(44) 투수코치는 “똑같은 구속이라고 가정하면 프로 초창기 투수들이 제구력뿐 아니라 볼끝도 더 좋았다”고 했다. 그 때는 “학생시절부터 일본식 야구에 기초한 하체 위주의 피칭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컨트롤 투수로 이름을 날린 한화 이상군(48) 코치는 “폼이 커지면 구속은 더 나올 수 있지만 릴리스 포인트를 잡기는 더 어렵다”면서 “이미 투구 메커니즘이 망가진 상태에서 프로에 들어오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제구력에 대한 훈련비중을 크게 뒀던 1970∼1980년대 학생야구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투수들은 4구와 폭투 등을 일종의 수치로 생각했다.

넥센 김동수(42) 배터리코치는 “다소 짓궂은 장난이지만 포수가 지정해준 곳에 공이 들어가지 않으면 포수가 공을 잡지 않고, 투수가 공을 다시 주워와야 했다. 그 정도로 제구력에 공력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투수들에 대한 과보호도 제구력 저하의 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양상문 코치는 “예전에는 투수들이 많은 투구훈련을 하고, 때로는 배팅볼도 던졌다. 제구력은 감각이기 때문에 어쨌든 많이 던져본 투수들이 더 유리하지만 최근에는 선수들을 아끼는 경향 때문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꼬집었다.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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