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신의 직장’ 공공기관들, 신규채용 인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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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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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해 382개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중 청년(15∼29세) 신규 채용을 전혀 하지 않은 곳이 64곳(16.8%)에 이른다고 15일 밝혔다. 채용 권장기준(정원의 3%)에 미달한 곳도 92곳(24%)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본보 4월 22일자 A1·14면 참조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는 국가적으로 실업 및 고용 문제가 화두가 됐던 시기. 특히 청년 실업은 국가의 미래 성장 잠재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고육책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2월 ‘공공기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까지 추진했다. 대부분 고임금인 공공기관들이 신규 대졸 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여유분만큼 신규 채용을 더 늘리자는 것. 이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이 대졸 초임을 일정 비율로 삭감했다. 이 정책은 “고통 분담을 신입사원에게만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수출입은행, 공무원연금공단, 한국방송광고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공항공사 등 무려 64개 공공기관이 지난해 단 한 명도 대졸 청년 신규 채용을 하지 않은 것. 이들은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인턴 채용으로 고통 분담을 피해갔다. 고용부는 이번 조사에서 1년 미만 인턴 채용의 경우 워낙 임시직 성격이 강해 청년 채용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청년 신규 채용을 한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직원 평균연봉이 전체 공공기관 중 1위(1인당 평균 1억608만 원)였던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이 단 한 명. 그 대신 인턴은 48명을 뽑았다. 인턴 임금이 1명에 월 100만∼120만 원 수준이니 생색도 내면서 참 싸게 막은 셈이다.

국내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다. 물론 공공기관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경영효율화 및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정원이 정해진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기존 직원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규 채용 ‘0’으로 구조조정을 피해가는 방법이 과연 제대로 된 경영 효율화일까. 지난해 신규 채용을 단 한 명도 하지 않은 64개 공공기관의 정원은 모두 3만8989명. 아무리 어려워도 세금으로 4만 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들이 단 한 명의 청년도 뽑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진구 사회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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