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빈 공항서 스파이 ‘10대4’ 맞교환

동아일보 입력 2010-07-10 03:00수정 2011-04-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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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플리바기닝 형식 통해차프만 등 10명 즉각석방러, 핵잠기술유출 등 4명대통령 사면후 추방조치 1980년대 동독과 서독의 국경에 위치한 안개 자욱한 다리. 초췌한 모습의 두 사내가 마주 보며 걷는다. 한 사람은 소련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다른 사내는 미국에서 복역하던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소속의 스파이. 다리 양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국과 소련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검은색 승용차에 서로 넘겨받은 요원을 태우고 유유히 사라진다.

첩보영화에서 흔히 보던 미국과 러시아 간 스파이 맞교환 장면이 실제 진행됐다. 냉전이 종결된 뒤 20년 만인 8일 스파이 교환이 이뤄졌다. 다만 이번에는 다리에서가 아니라 각각 스파이를 추방하는 형식으로 교환이 이뤄졌다.

미국과 러시아는 8일(현지 시간) 안나 차프만 등 미국에서 활동하다 지난달 27일 체포된 러시아 스파이 10명 전원과 러시아에서 미국 영국 등 서방 정보기관을 위해 활동한 죄로 수감돼 있던 러시아인 4명을 각각 풀어주기로 했다. 미-러 양국은 합의 이행을 위해 각각 ‘플리바기닝’(유죄 인정 조건 형량 감경)과 대통령 사면의 형식을 취했다.

미국 뉴욕 법원은 이날 러시아 스파이 10명이 플리바기닝에 동의하고 자신들의 유죄를 인정하자 이들이 체포된 이후 구금된 날짜만큼만 형을 선고한 뒤 즉각적인 추방 및 재입국 금지를 명령했다. 또 러시아 정부는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자국민 수감자 4명을 사면했다고 발표하면서 ‘스파이 맞교환’의 실무는 KGB의 후신(後身)인 러시아 대외첩보부(FIS)와 미국 CIA가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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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풀어준 4명은 핵잠수함 기술 등 군사기밀을 미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이고리 수티아긴 박사, 영국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은 세르게이 스크리팔, 1998년 CIA 요원과 접촉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2005년 불법 무기 거래 혐의로 다시 체포돼 수감된 겐나디 바실렌코 전 KGB 요원, 알렉산드르 자포로시스키 전 러시아 대외첩보부 요원 등이다.

이날 뉴욕법원에서 풀려난 러시아 스파이 10명은 곧바로 모스크바로 추방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녀 스파이’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차프만은 뉴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영국으로 가겠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양국의 스파이 맞교환은 9일 오전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서 이뤄졌다. 이날 오전 11시 15분경 뉴욕을 출발한 보잉 767-200 전세기가 빈 공항에 도착해 먼저 와 있던 러시아 비상사태부 소속 비행기 옆에 멈춰 섰다. 양국은 1시간 30분 후 스파이 맞교환을 마친 뒤 빈 공항을 떠났다. 미국에서 석방된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태운 러시아 여객기는 모스크바로 돌아갔으며 러시아로부터 4명의 정보요원을 인도받은 미국 전세기는 영국 잉글랜드 중부 옥스퍼드셔 브라이스 노턴에 있는 공군기지에 착륙했다고 영국 뉴스통신 PA가 전했다.

한편 이번 미-러 스파이 맞교환 합의는 양국이 장기적인 법정공방과 외교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태를 정치적으로 신속히 봉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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