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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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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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꺾은 네덜란드가 월드컵 결승에 진출해 모레 새벽 스페인과 우승을 다툰다. 한반도의 5분의 1밖에 안되는 좁은 국토에 인구 1600만 명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월드컵 결승 진출을 보면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대학생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이 학생은 당시 세계 수준이었던 한국의 섬유산업 발전상을 논문 주제로 잡고 6개월간의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그는 방문하고 싶은 한국 섬유회사의 명단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내게 넘겨주었다. 내심 놀라웠다.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지 않았던 필자는 낯이 뜨거웠다. 참고서적 몇 권 읽고 논문을 써내는 당시 우리 대학생 논문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제상인 키우는 어릴 적 체험교육

어떻게 대학생이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먼 한국까지 찾아올 생각을 했을까. 그때 품었던 의문은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서울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을 즈음에 실마리가 풀렸다. 1970년대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진출한 박영신 씨는 ‘히딩크를 키운 나라, 네덜란드’라는 책에서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훈련과 실습으로 국제상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운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받은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4월 말 여왕 탄신 기념 연휴에 모든 상점이 철시한다. 대신 길거리는 어린이들이 장사하는 공간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나와 흥정을 배우는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신문 배달을 하고 고등학생 때는 동네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고관리 상품관리 등을 몸으로 체험한다.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 활동 범위는 해외로 넓어진다. 방학이 되면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로 가서 일을 하니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최소한 3개 국어에 능통하다. 이러니 대학 졸업 논문을 쓰려 극동에까지 찾아오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세계 일류 기업들은 네덜란드 젊은이들을 대단히 선호한다고 한다.

10여 년 전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보험회사의 네덜란드 출신 사장을 만났을 때도 네덜란드는 역시 인재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갓 마흔을 넘은 그는 보험회사 사장치고는 대단히 젊은 편이다. “젊은 나이에 출세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부터 보험회사 일을 했기 때문에 벌써 경력이 20년이 넘는데 뭐가 젊으냐”고 했다.

경상도만 한 크기의 국토, 그것도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 많아 댐을 쌓아 사는 척박한 환경에서 변변한 자원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유복하게 사는 나라의 비결은 사람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4강에 올려놓고 100억 원을 벌어갔다는 히딩크 감독도 네덜란드인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리라.

척박한 환경 극복한 人材의 나라

이런 네덜란드를 한국의 미래 모델로 추천한 석학이 있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명저로 유명한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 작년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18세기 네덜란드와 같은 위상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의 선진 무역국가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니 최고의 덕담인 셈이다.

과연 네덜란드가 한국의 미래 모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하며 강대국에 둘러싸인 환경이 비슷하지만 산업구조와 경제발전의 역사에서는 상이한 점도 많다. 하지만 네덜란드로부터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게 있다. 월드컵 결승 진출보다 부러운 것은 어릴 적부터 체험으로 가르치는 그들의 경제교육과 직업교육이다. 우리는 부모 허리가 휘도록 교육시켜도 제대로 취업하지 못하는 형편이라서 더 그렇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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