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세계소믈리에대회 국내 출전 1호 정하봉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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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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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 日 1만명 韓 150명… 그래도 ‘국가대표’ 같은 기적 꿈꾸죠”

한국 1호 국가대표 소믈리에로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 참가한 정하봉 씨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있다.(위 사진) 정하봉 씨가 칠레에서 열린 제13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영국의 제라드 바셋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아래 사진) 사진 제공 JW메리어트호텔
한국 1호 국가대표 소믈리에로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 참가한 정하봉 씨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있다.(위 사진) 정하봉 씨가 칠레에서 열린 제13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영국의 제라드 바셋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아래 사진) 사진 제공 JW메리어트호텔
문제1: 화이트와인 1종류, 레드와인 2종류, 디저트와인 1종류를 모두 테이스팅하고 품종과 빈티지를 적으세요.(제한시간 12분).

문제2: 10개의 와인 리스트를 보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세요.(제한시간 3분)

문제3: 5개의 사진을 보고 어느 나라의 무슨 와이너리인지 적으세요.(제한시간 3분)

4월 6일부터 2주 동안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13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The World Best Sommelier)에서 최종 도전자 3인에게 주어진 문제들이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 1호 소믈리에로 선발된 JW메리어트호텔의 정하봉 씨(33)가 참가했지만, 정 씨는 마지막 3명에 끼지 못해 관객으로서 최종 선발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들이 겨루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점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최종 3명이 겨루는 장면은 보는 사람조차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된 순간이었어요. 정답을 하나하나 써 가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질러댔죠. 물론 3명 가운데 포함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너무 큰 욕심입니다.”

○ “소믈리에도 국가대표가 있어요”

분명하게 ‘욕심’이라고 말한 정 씨는 그 의미를 설명하려는 듯 “소믈리에 국가대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현재 한국소믈리에협회는 국제소믈리에협회(ASI)의 인정을 받아 국가대표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ASI는 1969년에 설립된 단체로 51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3년에 한 번씩 세계 대회를 연다.

한국소믈리에협회는 매년 소믈리에 대회를 치르고, 이 대회의 우승자 3명을 모아 다시 ‘왕중왕전’을 진행한다. 왕중왕전의 우승자가 국가대표가 되는 것.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3년마다 열리는 세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2006년 소믈리에대회 우승자인 정 씨는 2006, 2007, 2008년 우승자가 겨루는 왕중왕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돼 한국인으로는 처음 세계 와인대회에 참가했다. 이런 정 씨에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소믈리에협회 회원이 1만 명이 넘을 만큼 규모가 큽니다. 이번 대회 기간에도 와인 전문기자들과 NHK 기자가 일본 대표선수를 1주일 내내 동행하며 촬영하더군요.” 일본 대표로 나온 모리 씨는 1995년 세계 대회 우승자인 다사키 신야 씨가 직접 키운 수제자로, 프랑스와 호주에서 공부한 해외파다. 유학 비용을 일본소믈리에협회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뿐 아니라 와인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나라들이 즐비한 유럽의 경우 국가대표 소믈리에들은 해당국 소믈리에협회와 와이너리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유럽의 와이너리들은 세계 대회가 열리기 전 최소 1, 2년 동안 국가대표 소믈리에가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는 것이다.

○ 한국은 아직 ‘걸음마’


와인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소믈리에협회는 회원이 계속 늘고는 있지만 아직 150명 수준에 불과하다. 협회가 소믈리에를 지원하기에는 현실적 벽이 너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회 준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부터 JW메리어트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정 씨는 때때로 손님들이 먹다 남긴 와인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매번 새 와인을 사 마시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또 세계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소믈리에가 없었던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 씨는 “일본에서는 세계 대회 우승자까지 나올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제가 처음 출전한 것”이라며 “세계 대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어 준비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 와인에 푹 빠진 삼십대

세계 대회에서 높은 벽을 절감하긴 했지만 정 씨의 와인 사랑은 끝이 없다. 그는 와인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다양함과 깊이’라고 했다.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 200가지가 넘고, 같은 품종이라 해도 만드는 지역과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와인의 맛과 스타일이 결정된다는 점 때문이다.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이 ‘다양함과 깊이’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이런 점 때문에 대중에게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로 소믈리에가 존재하는 것이죠. 소믈리에뿐만 아니라 와인에 도전하는 마니아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정 씨는 현재 전주대 호텔문화관광대 겸임교수로 와인학개론과 조주학개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와인의 라벨이 고객의 와인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와 효과적인 와인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한 기준 마련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했다.

“1995년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일본인 다사키 씨가 우승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우승자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제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논문도 쓰고 좋은 책도 쓰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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