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살아있는 지금이 봄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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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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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종해 9년 만에 신작 ‘봄꿈을 꾸며’ 펴내

고희를 맞은 시인이 9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에는 황혼녘 노을빛이 잔잔히 어린 듯하다. 졸음이 채 떨어지지 않은 세면대 앞 거울에 어머니가 양치하는 모습이 비치고(‘세면대 앞에서’) 눈이 어두워져 금방 찾지 못하는 바늘귀는 절벽처럼 느껴진다.(‘바늘귀’) 먼저 떠난 지기들의 한때가 어른거리거나, 아득한 유년시절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날들.

시인 김종해 씨(69·사진)가 최근 신작 시집 ‘봄꿈을 꾸며’(문학세계사)를 펴냈다. 그는 “두어 달에 한 편 정도 고치고 다듬으며 써왔다. 10년은 걸려야 새 시집을 낼 거라 여겼으니 생각보다는 앞당겨 나온 셈”이라고 말했다. 어스름해진 일생의 저녁을 마주한 시인이 느끼는 회한과 그리움이 서정적이면서도 정제된 어조 속에 녹아들었다. ‘아버지가 먼저 가 계신 나라’ ‘동무들이 떠난 길 위’ ‘이승의 경계’ 등의 시어들은 시집에 흐르는 지배적인 정서가 어떤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리무진 꽁무니에 조그맣게 걸린 근조(謹弔) 화환…저 리무진 안에서 잠자듯 누워 있는 사람이 지금 가고 있는 곳, 한강을 거슬러 구리를 지나고 양평을 지나고 그리고 시간의 끝, 세상의 끝에 그 사람의 북망산이 있으리라. 가진 것 다 버리고, 북망산으로 가고 있는 저 분의 영원한 시간.”(‘길 위에서 문상’)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걷던 끝없는 황톳길, 용접공이었던 형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시뿐 아니라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문인들을 그리워하는 작품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생사의 서글픈 갈림을 은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 안는다. “일생의 옷을 벗으매/내 안에 마지막 남은 것이/비로소 보인다/구름 한 벌, 바람 한 벌,/하느님 말씀 한 벌!”(‘옷에 대하여-자화상을 보며’)에서는 삶에 대해 허허로우면서도 탈속한 긍정의 시선이 느껴진다. 시인은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 가면서 죽음이란 문제가 확대돼 보이기 시작했지만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봄날”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하나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저는 이월이요/…/한평생 살아온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기다리는 동안/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봄꿈을 꾸며’)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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