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커버스토리] 가요계 ‘악의 축’, 표절 덫에 걸린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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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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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표절 인정, '월드컵 물타기' 논란도
● '가수 이상의 가수' 꿈꾼 그녀의 굴욕
● 표절 수습보다 '배신당한' 이미지 회복이 우선


이효리가 4집 ‘에이치 로직’에 수록된 13곡 중 작곡가 집단 바누스바큠이 제작한 6곡이 표절곡이라고 인정했다. 표절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이효리가 4집 ‘에이치 로직’에 수록된 13곡 중 작곡가 집단 바누스바큠이 제작한 6곡이 표절곡이라고 인정했다. 표절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가수 이효리 덕에 한국 대중음악계는 또 다시 '표절 정국'으로 들어섰다. 물론 이효리는 본래 표절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06년에도 2집 '다크 엔젤' 타이틀곡 '겟차'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두 썸씽'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활동을 중단했었다.

보통 한 번 표절시비가 세게 붙으면 이후는 둘로 나뉜다. 이미지가 훼손돼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면 웬만한 표절시비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정도로 강철갑옷을 입게 되거나.

살아남을 정도로 대중적 매력이 있는 가수라면, 끈질기게 따라 붙는 표절시비도 그저 그의 '특성'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서태지가 처음 알려준 진실이다.

▶ 솔직한 고백? 월드컵 물타기?

그러나 이번 이효리 4집 '에이치 로직'의 표절 건은 불행히도 그런 통례에서 벗어나게 됐다. 앨범에 수록된 13곡 중 무려 6곡에 표절시비가 일었고, 지난 20일 마침내 이효리 본인마저 이를 시인했기 때문. 이로써 이효리는 한국 대중음악 사상 한 앨범에 가장 많은 표절곡을 수록한 가수로 남게 됐다. 뭐든지 역사에 남을만한 일을 벌이고 나면 그 여파는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효리는 지난 20일 인터넷 팬카페에 작곡가 집단 바누스바큠이 작곡한 수록곡 7곡 중 6곡이 바누스바큠의 창작곡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글을 올렸다. "애착을 많이 가졌던 앨범이니만큼 나도 많이 마음이 아프고 좀 더 완벽을 기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죄송하다",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에는 섣불리 활동할 수가 없고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해결하는데 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안타깝지만 후속곡 활동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감히 따라오기 힘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대중형' 가수 이상의 트렌드세터가 되길 원했던 이효리는 표절 사태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감히 따라오기 힘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대중형' 가수 이상의 트렌드세터가 되길 원했던 이효리는 표절 사태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이효리가 표절 사실을 이토록 분명하게 밝힌 데에는 물론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절곡 수가 상상을 초월하고, 표절의 정도 역시 거의 번안곡 수준인 점 등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깔려있다. 또한 확실한 인정으로 동정론을 일으키며 '솔직한 이효리'라는 식으로 이미지 갈아타기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의도들이 하나하나 대중과 미디어의 '전에 없이 예민한 촉각'에 의해 간파되고 바로바로 공격당하며 순식간에 '이효리에 대한 동정론은 금물'이라는 인식이 대세처럼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굳이 월드컵 기간에 표절 시인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월드컵 물타기'라는 음모론이 퍼져나가고 프로듀서 이효리 전적 책임론, 심지어 불량상품에 대한 음반 리콜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째서 이효리는 이처럼 만장일치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규모와 강도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을까. 왜 아무도 이효리를 '털끝만큼이라도' 감싸주려 하지 않을까. 단적으로 말해, 왜 이렇게들 이효리를 전폭적으로 미워하고 있을까. 어쩌면 상황이 분명한 표절 건보다 이쪽이 이효리 사건에 있어 더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에 대한 답은 간명하다. 이효리가 이번 4집 앨범과 관련해 보여준 행보는, 대중이 사랑하고 아끼던 이효리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풀면, 이효리이되 이효리가 아니었다.

대중은 음반 수록곡이 표절로 드러나자 배신당했다 느낀 게 아니라 4집 앨범 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배신당한 상태였다. 그런 배신감이 기저에 깔려있지 않았다면 비록 수록곡 중 절반 가까이가 번안곡 수준 표절이었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무차별 폭격은 없었다. 적어도 동정표 한둘은 나와 줬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대중은 이효리에게서 뭘 배신당한 걸까. 사실상 전부 다다. 이효리의 인기 비결은 단 한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서민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친근한 외모와 솔직하고 털털한 언어, 잘난 것 하나 없다는 듯 소탈한 태도가 점수를 땄다.

이효리가 핑클 멤버로 첫 등장한 IMF 외환위기 시점에는 그런 아이콘이 필요했다. 대중과 닮은, 대중의 외모와 언어와 태도를 지닌 살가운 아이콘만이 대중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이효리는 그런 살가운 아이콘의 대표격이 됐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이 서른을 넘겨도 여전히 대중은 이효리에게서 같은 것을 원한다. 딱히 음악적 신선함을 기대하지도, 더욱 완벽하게 가다듬어진 외모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동네 누나' 정도면 되는 것이다. 그게 이효리 스타덤의 핵심이자 전부다.

카리스마적 뮤지션이 되고픈 이효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이번 앨범은 그에게 여러가지 딜레마를 안겨주게 됐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카리스마적 뮤지션이 되고픈 이효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이번 앨범은 그에게 여러가지 딜레마를 안겨주게 됐다. 사진제공 엠넷미디어.


▶ 대중 배신감이 덧대진 표절 후폭풍

그런데 4집 앨범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효리는 이런 자기 핵심요소를 완전히 버렸다. 앨범 프로듀서로서 달라진 자기 위상을 한껏 과시했다. '가수 이상의 가수'라는 것이다. 무대 퍼포먼스도 대중 취향에 맞추기보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수준의 엽기 쇼였다. 곡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없는 대중 트렌드를 만들어내 선도하려는 인상이 강했다.

노래 가사들은 더 가관이었다.

"아무리 날 따라해 봐도 / 나는 매번 나는 매번 앞서가는 걸 / 비슷하게 날 따라해 / 허락도 없이". 표절로 인정된 '아이 앰 백' 가사 중 일부다.

"어설픈 건 재미없어 / 항상 널 앞서가지 / 애송이들 얌전하게 내 뒤로 다 follow me". 역시 표절로 인정된 '하이라이트' 가사 중 일부다.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중략) 사실 너도 나를 알잖아 / 나의 무대가 두렵잖아 / 퍽이나 위하는 척 / 내 걱정 해주는 척 / 차라리 그냥 지나가줘". 다행히 표절시비에선 벗어난 타이틀곡 '치티치티 뱅뱅' 가사 중 일부다.

이쯤 되면 이건 도발도 아니라, 자만심, 자아도취, 안하무인, 나아가 압제적 인상에 가깝다. 기껏해야 '10분이면 어느 남자건 유혹할 수 있다'는 정도였던 '잘 노는 동네 누나'의 허풍 수준이 아니다. 권위적이고 소통을 거부하며 굴종을 요구한다.

이런 건 이효리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이 가장 혐오하는 모습으로 등장한 셈이다. 연예계와 속성상 가장 유사한 정치계를 예로 들어보면 쉽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 그런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위에 오르고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갑자기 권위적인 모습으로 변모할 때 대중은 당연히 반발하게 된다. 오히려 본래 권위적이었던 이들보다 더욱 증오하게 된다. 계급적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효리는 사실상 표절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도 4집 활동과 함께 이미 커리어 상 패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표절 후폭풍은 대중의 분노와 염증이 모아져 가시화된 요식행위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효리가 지금 정작 위기감을 느껴야 할 부분은 표절 사건을 대체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한 번 최악의 방향으로 왜곡시킨 자기 이미지를 대체 어떻게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이런 커리어 대반전을 이효리가 해낼 수 있을까. 또 다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눈물 흘리고,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 하나 입고 밭일 거든다고 해서 예전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이효리 안에 언제나 흐르고 있는 듯 보이는 '디바욕(慾)', 트렌드 세터로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카리스마적 뮤지션이 되고파 하는 욕구를 과연 이효리가 앞으로도 계속 자제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날 따라오라'고 외치는 디바가 아니라 '나와 같이 놀자'고 유혹하는 동네 누나로 남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분명한 결정이 없다면, 이번 표절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습하고 난 뒤에라도, 이효리의 딜레마는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곡 표절에 대한 감각과 지식뿐만 아니라, 자기인식 자체도 그만큼 중히 여겨져야 할 시점이다.

이효리의 건투를 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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