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신드롬의 근원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4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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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차두리(30)는 12일 그리스전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나서 전후반 내내 폭풍 같은 드리블과 몸싸움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차두리가 로봇'이라며 열광했다. 한 인터넷 만화가 그 진원지다. 만화는 일본 선수가 덜덜 떨며 "그건 인간이 아니었어. 달려오는 차에 부딪힌 느낌이랄까"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차두리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고된 훈련에도 혼자 웃고 있다', '차두리가 공을 잡으면 아버지 차범근 해설위원이 (그를 원격 조종하느라) 조용해진다'라며 그가 로봇이라는 증거를 들이댄다. 등번호 11번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콘센트 구멍이고 차 위원이 수원 감독을 그만둔 것도 월드컵을 앞두고 아들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해석이 곁들여진다.

여기에 '현재 등번호 22는 220V로 업그레이드 됐다는 의미', '인공지능을 탑재해 이제 차범근 조종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 등 로봇설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차두리 로봇'을 증명(?)하는 설계도도 공개됐다.

차두리가 이처럼 국민적 화제를 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가 팬들에게 호감을 주기 때문이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차두리가 결혼 후 딸을 얻고 나서 안정된 심리가 표정으로 나타난다"며 "자조적인 '썩소'가 아니라 편안한 웃음이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한다"고 말했다.

실력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강 소장은 "차두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열심히 뛰었지만 찡그린 표정에 눈빛은 흔들렸다"며 "지금은 훨씬 여유 있는 눈빛에 미간 주름살도 8년 전보다 줄었다"고 분석했다.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도 한결 덜었다. '차범근 아들'이라는 후광이 아니라 '차두리'만으로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머리를 빡빡 밀고 귀걸이를 한 외모도 눈길을 끈다. 패션용어로 '크리에티브 룩(creative look)'이라 불리는 이런 스타일은 그가 축구 외에도 다방면에 끼가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한층 성숙해졌다. 차두리는 2002년 월드컵 때는 언론을 기피하는 선수로 악명이 높았다. 기자는 2005년 12월 독일 현지로 프랑크푸르트의 원정경기를 취재간 적이 있다. 당시 수비수로 포지션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차두리는 썩 좋은 움직임을 못 보여줬고 팀도 역전패했다. 경기 후 어렵게 그를 만났지만 그는 차가운 눈빛을 던지며 "수비수 포지션도 괜찮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도망치듯 사라졌다.

하지만 차두리는 더 이상 언론을 피하지 않는다. 취재진에게 먼저 농담도 건넬 정도로 마음을 열고 느긋한 모습이다.

이제 팬들은 로봇 태권V가 지구를 구하듯 '로봇 차두리'가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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