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커버스토리] 엄청난 수상 쾌거가 열애설만 못한 비, 왜?

  • Array
  • 입력 2010년 6월 14일 16시 02분


코멘트

● 'MTV 무비어워즈'의 성과는 열애설에 묻혀
● '배우 비'를 '가수 비'로 연계한 '묻어가기'는 독
● 웬만한 성과에는 둔감해진 대중 반응

배우 겸 가수 비(28)가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깁슨앰피시어터에서 열린 '2010 MTV 무비 어워즈'에서 그는 샘 워싱턴, 채닝 테이텀, 앤젤리나 졸리 등을 제치고 '최고의 액션스타상(Biggest BadAss Star)'을 수상했다. 비 이전에 아시아계 배우가 아시아 국적을 갖고 MTV 무비어워즈에서 수상한 사례는 성룡, 장쯔이, 쿠리야마 치아키 등 3명에 불과하다. 이연걸도 주윤발도 와나타베 켄도 못 가져갔던 상이다.

그러나 이 쾌거는 금세 잊혀졌다. 수상 직후 비와 배우 전지현 사이 열애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온통 비-전지현 이슈에만 매달려 'MTV 무비어워즈' 따윈 완전히 제쳐뒀고, 대중의 관심 또한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위선양은 늘 자랑스럽고 뿌듯하지만 자극적인 열애설만큼 휘발성이 높진 않다. 나아가 한류스타의 해외성과 하나보다 한 쌍의 한류커플이라는 이슈가 왠지 더 거대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루머가 정론을 압도하는 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 공연을 펼친 비. 해외 무대에서 '가수 비'와 '배우 비'의 존재감은 차이가 있다. 사진제공 제이튠엔터테인먼트.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 공연을 펼친 비. 해외 무대에서 '가수 비'와 '배우 비'의 존재감은 차이가 있다. 사진제공 제이튠엔터테인먼트.

▶ 'MTV 무비어워즈' 수상보다 열애설이 더 큰 뉴스, 왜?

그러나 'MTV 무비어워즈' 수상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국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폭발력이 약했을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카데미상보다도 더 강력한 광고탑이다. 2010년 시상식은 미국 내에서만 1640만 명이 지켜봤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터넷에서 160만 명이 더 봤다. 더군다나 이 상은 권위를 파는 아카데미상과 달리 영화 주 소비층인 젊은 층의 실질적 취향과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한다.

'터미네이터 2' '펄프 픽션' '세븐' '스크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매트릭스' 등 시대를 풍미한 상업영화들이 지난 'MTV 무비어워즈' 작품상 수상작들이다. 그래서 미디어와 대중이 그토록 주목하는 것이고, 따라서 비의 수상은 '할리우드 스타로의 탄탄대로'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보도자료 따위 날아오지 않아도 미디어가 알아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기사들을 수없이 내보냈어야 정상이다. 또 미디어가 나서지 않더라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알리는 포스트들이 물밀 듯이 쏟아지는 게 상례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저 선정적인 열애설 이슈로만 옮겨가기 바빴고 어차피 소모적인 이슈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 천착했다. 왜 그랬을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먼저 비의 고질적 문제인 '묻어가기' 포장 탓이 크다. 할리우드 진출 이전에도 비는 아시아권 대스타가 맞았다. 그에 필적할 만한 한류스타는 배용준, 이영애 정도밖에 없었다. 동남아권에서는 오히려 배용준, 이영애보다도 더 파괴력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비는 아시아권에서 '배우'로서 인지도를 얻고 인기를 끈 경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배우로서 비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그가 출연한 KBS2 '풀하우스'는 태국에서 시청률이 63%까지 치솟는 기염을 토했고, 필리핀에서는 최고시청률 42.3%를 기록해 역대 TV프로그램 시청률 39위에 랭크됐다. 이밖에 홍콩에서 52%, 인도네시아에서는 78%라는 상상을 초월한 시청률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수로서의 성과는 의외로 부진하다. 초기작도 아니라 바로 전작 앨범 '레이니즘'을 놓고 봤을 때도 그렇다. 2009년 2월 태국 채널V 카운트다운 아시안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되긴 했지만, 정작 2009년 통산 차트에선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동방신기, 빅뱅, 2PM, 샤이니 등에 밀려 28위에 랭크됐다.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채널V 인터내셔널 2009년 통산 차트, 각종 라디오 채널 통산 차트에서도 모두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원더걸스의 '노바디'와 2NE1의 곡들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그래도 아시아 투어 당시 공연장은 꽉 차지 않았냐고? 물론 그렇다. 그러나 위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이는 드라마 인기를 등에 업은 이벤트, 세칭 '묻어가기' 행사에 불과했다고 보는 게 옳다. 가수로서 거의 주목을 못 받았던 류시원, 박용하 등의 공연이 일본서 성황리에 치러지고, 배우 이병헌의 노래를 들으러 일본 팬들이 도쿄돔을 가득 채웠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 대열에 오른 비. 이미 많은 것을 이뤘고, 많은 것을 알린 그가 앞으로도 대중을 놀라게 할 비책은 뭘까.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 대열에 오른 비. 이미 많은 것을 이뤘고, 많은 것을 알린 그가 앞으로도 대중을 놀라게 할 비책은 뭘까.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실제 비 자신도 도쿄돔 투어 일본 현지PR 회견에서 "일본에서는 배우로 여러분에게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아시아가 사랑한 건 배우 비였고, 가수 비는 배우 비를 사랑한 아시아 대중 가운데 일부 열혈 팬층의 전유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가 자신의 해외 성과를 홍보하는 과정에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 가수 비 자체가 아시아를 제패한 것처럼 과시했다는데 있다. 나아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시어터 공연까지 감행해 가수 비가 미국시장조차 휘어잡은 듯 홍보되고, 미국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전미 투어를 개최하겠다는 기획까지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과대포장의 실체는 인터넷 시대에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시아에서의 '묻어가기' 포장은 금세 실체가 밝혀졌고,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시어터 공연은 사실상 '별관' 공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전미 투어는 아예 무산됐다.

이러니 비 측이 내미는 가수활동 홍보는 믿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이 같은 불신은 전염까지 된다. 곧 비의 실체 '전체'가 불신에 사로잡히고, 애초 '가수 비'를 포장하는 데 모체가 된 '배우 비'에게까지 그 불신이 전염됐다. 아시아 드라마 시청률을 휩쓸고, 아시아 스타 출신 배우로는 와타나베 켄과 더불어 할리우드 메인스트림급 영화('닌자 어쌔신')에서 톱 빌링, 즉 출연진 자막에서 제일 먼저 이름이 뜨는 성과를 거둔 단 두 명 중 하나인 대스타임에도 그 성과에 대해 으레 과대포장이려니 싶어지는 것이다.

이번 MTV 무비어워즈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상이고, 대단한 성과고, 할리우드 스타를 향한 대단한 발판이 맞다. 그럼에도 별반 반응이 없는 건, 비 측이 내미는 모든 성과 홍보에 불신과 환멸이 깊이 서려있기 때문이라 보는 게 옳다. 어차피 한국 대중에 알려진 상이 아니니, 별 것도 아닌 상 하나 받아놓고 또 과대 포장하는구나, 싶어진다는 것이다. 미디어도 그렇고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다. 결국 비 측의 무리한 홍보 전략, '가수 비'를 '배우 비'에 얹어 홍보하려는 '묻어가기' 포장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자승자박에 가깝다.

▶ 초장에 막장까지 간 홍보방식

한편 '최고의 액션스타상'이 '열애설' 따위에 그토록 쉽게 밀려버린 또 다른 원인으로는, 애초 해외 성과 홍보과정에서 '높낮이'를 조절하지 못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성과 홍보, 그 중에서도 대중적 파급력이 강한 해외 성과 홍보는 기본적으로 단계적 구성을 이뤄야 한다. 일정부분 '언더도그(underdog·약자)' 신화에 맞춰줄 필요도 있다. 가장 정교하게 구사된 것이 동방신기의 일본 커리어다. 동방신기는 일본에 입성하자마자 스타가 된 것이 아니다.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는 장소까지 찾아다니며 악전고투를 펼치는 모습이 알려졌다.

한국의 최고 아이돌이 일본서 겪는 서러움에 한국 팬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조금씩,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러면서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 연속 1위, 홍백가합전 출장, 판매량 확대, 앨범 1위 등 정상을 향해 다가서는 모습이 알려졌다. 대중에 설득력 강한 상승곡선이 그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할 '서러운 시절'도 충분히 소개돼있어 대중의 거부감을 줄였다.

반면 비는, '묻어가기' 포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단계적 성장과정 자체가 보이질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아시아 정도는 완전 정복한 절대적 한류스타로 포장됐다. 미국에서 제대로 앨범 한 번 낸 적이 없는데 초대형 스타들만 선다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시어터 공연을 벌였다. 일본에서 낸 싱글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이 1만6159장, 마지막 낸 싱글은 불과 9192장을 팔았지만, 그래도 도쿄돔에 섰다. 그러다 갑자기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다.

여기까지 가버리면, 사실상 해외 성과 홍보로서는 '막장'을 친 셈이다. 더 갈 곳이 없어진다. MTV 무비어워즈 정도로는 시시하고, 적어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정도는 받아야 그나마 체면이 선다. 그래미상은 5개 부문 그랜드슬램 정도 해주고, 영화제 참석 차 프랑스 칸에 도착하면 몰려드는 팬들로 인해 탑승한 비행기가 뒤집어지기라도 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도 못 들어가는 세계 영향력 100위 내에 들었는데, 앞으로 더 갈 곳이 어디 있을까?

한 마디로 '초장'에 너무 세게 밀어붙였다가 '뒷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홍보 방식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놓고 보면 '닌자 어쌔신'에 대한 한국 대중의 '지나치게 밋밋했던' 반응도 쉽게 이해가 간다. '묻어가기' 포장에 대한 불신과 염증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4000만 달러 예산의 '닌자 어쌔신' 정도 영화로는 외려 '상승'이 아닌 '하강'으로 여겨진 탓이 더 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캐머룬 급 감독들의 1억 달러짜리 여름용 블록버스터에는 출연해줘야 '격'이 맞는 상황이 돼버렸다.

▶ 기본으로 돌아온 그에게 거는 기대
6일(현지시간) 열린 MTV무비어워즈에서 최고의 액션스타상을 받은 비. 이 놀라운 '업적'은 전지현과의 열애설에 묻혀 곧바로 시들해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열린 MTV무비어워즈에서 최고의 액션스타상을 받은 비. 이 놀라운 '업적'은 전지현과의 열애설에 묻혀 곧바로 시들해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처럼 비는 여러모로 참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다. 할리우드 진출의 궤는 잡혔고, 착착 성장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정작 국내에선 이를 액면 그대로 믿지도, 대단하게 생각지도 않는다. 그럴수록 국내에서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고, '안에서 물이 끓어야 밖으로 넘친다'는 속성에 따라 해외에서의 인기 유지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더군다나 군 복무라는 커리어 공백기를 앞둔 상황이기에 이 같은 국내 시장에서의 문제는 더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행스런 점이 있다면, 비가 차기 행보로 KBS2 드라마 '도망자' 출연을 잠정 결정지었다는 점이다. 그의 최근 앨범 제목처럼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이다. TV드라마로 시작된 스타덤이니 다시 TV드라마로 돌아가 발판을 다진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껏 비의 행보 중 가장 현명한 결정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비가 지닌 모든 딜레마, '묻어가기' 포장의 딜레마, 지나친 해외 성과 홍보의 딜레마 등이 일제히 정리되고, 한국 대중을 처음부터 다시 설득하며 서로 간 신뢰를 새롭게 쌓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는 그 정도 역할은 해줄 필요가 있다. 4000만 달러도 채 안 되는 흥행수익을 거둔 '닌자 어쌔신'으로 무려 7억5000만 달러를 넘게 벌어들인 '아바타'의 샘 워싱턴을 제치고 미국 대중의 선택을 받은 배우라면, 그의 미래 행보는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미래 위상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의 현명한 커리어 관리, 훨씬 체계적인 홍보 역량을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