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격 방중] 美전문가 “김정일 - 中지도자 웃으며 건배한다면 한국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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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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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국 ‘정부는 침묵, 언론-학계는 시끌’

우려하는 美학계
“中이 방문 거절했어야”… ‘미묘한 시기’ 촉각 곤두세워


들썩이는 日언론
“김정일 지도력 과시 필요”… 이동경로 추적하며 관심


中은 조심조심
언론 침묵… 보도 통제한듯… “비핵화 진전 도움” 관측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3일 미국과 일본 중국 등 6자회담 당사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은 “방문 시점이 좋지 않다. 차라리 방문을 거절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중국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고 중국의 전문가들은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비핵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상반된 시각을 보였다.

○ 미국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지난해 핵실험 이후 강화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천안함 사건에 북한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북한을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 위원장이 중국 지도자와 웃는 얼굴로 악수하고 건배하는 사진이 나온다면 한국인들에게 불쾌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학석좌도 “김 위원장의 방중은 중국이 북한의 불안정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중국으로서는 천안함 사건이 해결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때까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거절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발(發) 보도에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인들이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의 배후로 북한에 대한 의심을 키워가고 있는 등 한반도 정세가 매우 ‘미묘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졌다”며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정은의 동행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 일본

일본 언론은 김 위원장의 방중 동선을 밀착 취재하면서 매시간 속보로 전하는 등 큰 관심을 나타냈다.

NHK방송은 7시 뉴스에서 김 위원장이 다롄(大連)의 한 호텔 앞에서 자동차에 타는 모습을 방영했고 니혼TV는 김 위원장이 다롄에서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호텔로 보이는 건물을 나갔다 들어오는 장면을 방영했다.

후지TV는 “중국은 6자회담, 북한은 경제지원을 필요로 한다.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지도력을 과시할 필요도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곁들였다. 후지TV는 김 위원장이 경호 문제 등으로 인해 상하이(上海) 엑스포 방문은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히라이와 슌지(平巖俊司) 간세이가쿠인(關西學院)대 교수는 “북한과 중국은 식량문제 등 경제협력과 6자회담 재개라는 공동 현안을 안고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한국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국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중국에서 정부 및 언론의 반응이나 보도는 일절 나오지 않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은 물론이고 다른 언론도 침묵하고 있다. 과거의 예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있고 ‘보도 통제’가 풀리면 취재해 두었던 내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인터넷판에서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방중 및 다롄 방문 가능성 등을 전했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류장융(劉江永)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류 교수는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과 금강산 관광 문제, 북한의 자산동결 조치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 회담 재개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러시아

러시아 국영 이타르타스통신과 리아노보스티통신도 한국과 일본 언론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 다롄에 도착한 사실을 전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 게오르기 톨레라야 박사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 지원 요청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전문가 진단 ▼


조명철 대외경제정책硏 소장
北 현안은 후계문제 통보… 천안함은 오리발 내밀것


이번 방중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은 북-중 회담의 공식 테이블에 오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침몰로 급하게 방중이 이뤄졌다는 일부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단지 중국은 사석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인지 물어볼 것이고, 북한은 “한국의 조작극”이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수준이 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조사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방중 일정을 지금 이 시점으로 잡았을 확률이 높다. 한국 정부의 조사와 대응책이 조만간 나오리라고 판단했다면 지금 중국을 방문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중 회담은 국가 중대사를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후계 문제를 중국에 통보하고 후계자가 어떤 직위를 맡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과정에 따라 후계체제가 이뤄질 것인지 알려줄 것이다. 후계문제는 중국에 허락받을 사안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과시한다는 측면에서 통보하는 것이다.

또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이 자신들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중국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중국의 대북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북한의 경제위기로 이 사안들이 긴급해졌다. 6자회담 복귀는 주로 중국이 얘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핵 문제는 나중에 하더라도 6자회담 자체는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중국의 회담 복귀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中, 수세몰린 김정일 살리기… 대규모 경제지원은 힘들듯


이번 방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 복귀에 따른 반대급부로 3대 세습에 대한 중국의 인정과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는데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으로서는 그 같은 요구가 다소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3대 세습을 용인하기 쉽지 않은 데다 북에 대한 경제지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방중이 애당초 예정돼 있었다고는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진 뒤이기 때문에 수락하기 거북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에서 식량문제가 심각하며 화폐개혁 이후 사회불안을 겪고 있는 터에 천안함 사태까지 터지자 중국으로선 더는 북한 정세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천안함 사태의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계속 미루기는 어려우므로 방중을 수용해 일단은 ‘김정일 살리기’에 방점을 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어떤 선물을 줄지는 미지수다. 경제지원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북 때 북한과 오간 정도의 내용이 다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북에 대한 큰 틀의 지원을 협의하는 수준이다. 진보진영에서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접수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북에 대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한된 수준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사흘전에 김영남이 胡 면담… 北, 정면돌파로 우군 챙기기


6자회담 재개 문제와 대북 경제지원 문제가 북-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회담의 모멘텀을 되살리는 데 적극적이다. 아마도 김 위원장은 평화체제 논의, 북-미 양자대화 등을 중국이 적극 주선하고 보장해줄 경우 6자회담에 참여하겠다고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천안함 진상 규명이 우선 돼야 한다는 견해이고, 미국도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6자회담 재개 여부는 불투명하다.

사실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은 한 달 전부터 제기됐다. 경제지원,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견해가 최종 정리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지연돼 온 김 위원장의 방중이 지난달 30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의 흐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더는 시기를 늦춰서는 안 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면돌파’의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최소한 중국이 한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사건 이전에는 김 위원장이 방중한다면 3남 김정은을 대동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대동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장롄구이 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中, 북핵 포기 논의가 우선… 천안함 해명기회 준것 아냐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금 시점에서 초청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한국에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방중과 천안함 사건을 직접 연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지난해부터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을 초청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났다. 중국과 북한 양측이 현 시점에서 중요하게 논의할 사안이 있어서 천안함 사건과는 무관하게 방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방중 시점에 대해 중국은 항상 북한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오도록 거듭 얘기해 왔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방중 시기를 지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방중이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해 해명할 기회만 제공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중국이 그런 의도로 김 위원장 방중을 추진할 리 없다. 김 위원장의 방중과 3남 김정은의 후계자 굳히기를 연결하는 어떤 설명에 대해서도 중국은 “후계자 문제는 북한 내부의 일”이라는 입장이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핵무기 포기 등에 대해 분명히 북한과 의견을 나눌 것으로 생각한다. 1995년 이후 줄곧 경제와 식량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원조를 얻고자 하는 것이 김 위원장의 주요 방중 목적 중의 하나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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