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위안화 절상 은근히 채근… 후진타오 묵묵부답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8일 03시 00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17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어느 때보다도 우호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민감한 문제, 이견이나 갈등이 있는 분야는 상대의 주문에 응수하지 않거나 아예 언급을 피했다. 또 미국 언론은 중국 언론이 정상회담 내용을 보도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내용만 ‘아전인수’식으로 보도했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두 정상 “우린 동반자”… 공동이익 추구 합의
후진타오 “이견 있는게 정상” 무역해법 안내놔
中언론, 오바마 ‘티베트는 中일부’ 발언만 부각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가 지금처럼 중요한 적은 없었다”며 중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거듭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도쿄(東京) 강연과 상하이(上海)에서의 대학생들과의 대화에 이어 세 번째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할 생각이 없으며 강하고 번영하는 성공적인 구성원이 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잡하고 심각한 변화는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발생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 “전면적 협력 관계로 나아가자”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의 17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관계가 사실상 ‘21세기 동반자 관계’로까지 격상됐다.

후 주석은 “양국은 21세기에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며 “국제사회의 도전에 양국은 동반자로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나 핵 확산에 대한 대처, 경제회복 등은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이는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을 환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다음 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회의에서는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새로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껄끄러운 문제는 두루뭉수리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며 “경제가 성장한 만큼 책임도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후 주석은 “에너지 환경 등에 대해 각국은 각자의 능력에 기초해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고 응수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책임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더 많이 저축해야 하고, 적게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장기 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정책 조정이 필요하며 국내 수요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남녀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는데 이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민과 민족, 종교 신앙을 가진 소수민족 등도 모두 가지는 보편적인 권리”라고 말했다. 내년 초 양국은 인권대화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이며 중국 정부와 달라이 라마 대표 간의 조속한 대화 회복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 첨예한 쟁점 피해 나가

양국 간 이해가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상대가 응수하지 않음으로써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양국 간 경제에서 가장 큰 현안인 위안화 환율 절상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과거에 시장 지향적 환율 체계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한 것을 언급한 것에 기쁨을 표시한다”며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후 주석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허야페이(何亞非)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양국 정상회담에 관한 설명회에서 “중국은 위안화 환율의 안정을 유지해 금융위기 대응에 큰 공헌을 했다”고 밝혀 위안화 환율의 인위적인 평가절상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반덤핑 관세와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 등으로 ‘무역전쟁’을 방불케 하는 통상 마찰이 계속되고 있으나 후 주석은 “평등한 협상을 통해 양국의 무역마찰 문제를 잘 처리하자”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을 개방하면 미중 양국의 공동 번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16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강조한 인터넷 검열이나 언론 자유 등은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후 주석은 “양국이 사정이 다르고,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은 정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강조했다”고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 美언론, “中언론, 아전인수 보도”

이날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의 기자회견 내용은 중국 국영 중국중앙(CC)TV를 통해 생중계됐다. 하지만 중국 관영 언론들은 중국 측이 민감하게 여기는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를 비롯해 티베트와의 대화 촉구, 보편적인 인권 개선 필요성 등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부분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채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같은 부분만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발언 취지를 왜곡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신화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보편적인 인권 발언 등을 생략한 채 “미국은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로 인정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다”고 전했다. ‘티베트=중국의 일부’ 발언은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기 위한 전제로 말한 것이다.

신문은 이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경제문제, 심지어 군사협력 등에 대한 상호협력 다짐이 나왔지만 미국이 중국의 협력을 기대했던 골치 아픈 세계문제 해결의 돌파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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